열하일기 첫걸음 - 조선 최고의 고전을 만나는 법
박수밀 지음 / 돌베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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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연암의 열하일기를 대하는 독자의 읽는 방법과 작품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방법에 대해 언급한 작품으로 본 작품을 비롯한 고전을 접하는 방법론을 언급한 작품으로 이해하고 싶지만 

저자께서 십 수 년간 연암 박지원을 연구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너무도 연암을 불세출의 인물로 내세우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선각자적인 인물로 극대화해 평가하고 있는 면이 약간은 아쉬운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을 비롯한 고전을 접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일반론에 있어서는 훌륭한 

고전의 길라잡이역할을 하는 작품이라는 점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아래 내용은 일반적인 사실과 함께 저자의 개인적인 주장이고, 해석이기 때문에 작품을 접하는 각자가 

저자의 이런 주장을 절대 절명의 기준점으로 세울 필요는 없다고 보며 각자의 시각과 판단으로 각 내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 이 작품을 비롯한 일반적인 고전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저자는 열하일기에 대해

  “형식으로 보면 특별 장르 복합서, 문학적 성취로는 삶과 제도를 성찰한 특별한 여행기이며사상의 깊이로

   는 심오한 사상서이고, 문제의식으로 보면 성리학의 틀을 뛰어넘어 사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상을 말해 주고 싶었던 한 경계인의 발분저서(發奮著書)’이다.


- 열하일기는 연암의 친척 박명원이 최고 책임자가 되어 총 270여명이 사행 갈 때 연암을 개인 수행원 

  자격(‘반당이라 했으며 이들은 자신의 개인비용으로 갔다)으로 데리고 갔는데 청의 건륭제가 자신의 생일

  축하연을 예정에 없던 북경이 아닌 북경에서 400리 떨어진 열하라는 곳에서 치르게 되는데 사행단이 

  이곳을 찾아가는 여정을 글로서 적은 것이다.


- 열하일기는 사행 당시 아무 벼슬도 없던 일개 야인이 쓴 글을 국왕까지 읽어 보았을 정도로 숱한 화제를 

  뿌린 작품이며 그 파격적 문체와 새로움, 아슬아슬한 내용 때문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일으킨 작품으로 

  추후 문체반정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 작품은 출발지점인 한양에서부터 기록되지 않았고, 출발 날짜보다 한 달 뒤인 압록강을 건너는 시점부터 

  시작되고 있다.


- 명나라 시절에는 천자(天子)에게 조회를 간다는 의미로 조천록(朝天錄)이라고 불렀고, 청나라 때는 

  연경으로 사행 간다는 의미로 연행록(燕行錄)’이라 했다.


- 열하일기는 여행 감상문처럼 읽어서는 안 되며 어떤 장면, 어떤 시간에 사건 연암의 숨은 의도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작품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 올 것이다

  또한 열하일기의 형식적인 구성을 보면, 맨 처음엔 날짜를 적고 다음에는 날씨다음에 들르는 공간과 

  거리를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 연암은 북학의서(北學議序)’에서 조선 선비들은 좁은 땅에서 태어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고 들은 것이 

  적은 탓에 선입견과 편견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기에 마음으로 보고 듣는 자다. 기존의 지식에 갇히지 않았으니 선입견과 편견이 

  없다. 소경은 은유의 일종이며 연암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핵심어다.


- 열하일기에는 현상에 숨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간, 새로운 질서에 대한 경계인의 갈망이 담겨져 있다.

   * ‘경계인이란 복수의 이질적인 집단에 동시에 속하거나 어떤 집단에도 명확하게 속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어서 두 사회나 집단 사이에서 얼치기가 되는 자.(크루트 레빈, 미국)


- ‘이용후생(利用厚生)이라는 단어는 북학파(북학派)’의 핵심단어로 당시 조선의 선비는 실제의 삶보다 

   형식에 집착했고, 백성의 가난한 삶은 방치했으나 연암은 먹고 사는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이용과 후생이 이루어져야 정덕(正德)’이 바로 선다고 생각했다.


- 열하일기의 3분의 1 가량이 필담의 결과물로 필담을 쓴 종이를 담초(談草)’라 했다.


- 남에게 보고 들은 것을 가지 생각 없이 그대로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배움을 

  ‘구이지학(口耳之學)’이라고 한다.


- ‘춘추는 공자가 엮은 책으로, 본래 춘추는 노나라 사관이 자기 나라 240년 역사를 기록한 궁정 연대기

  였다. 공자가 여기에 자신의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담아 필삭(筆削)하여 춘추를 지었다.

  '춘추에서 공자는 주()나라를 높였는데 이러한 존주(尊周)정신을 담은 공자의 정신이 불변의 의리를 

  담은 책으로 조선에서 받들어져 왔다.


- 연암은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그 제도가 오랑캐에서 나왔더라도 백성의 삶을 나아지게 하고 부국강병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똥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조선, 똥을 소중한 자원으로 이용하는 중국, 연암은 여기에서 문명의 차이를 

  확인하였고, 똥을 이용하는 중국으로부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 백이와 숙제가 같은 발자취로 살다 갔음에도 백이만 호명할 때가 많은 이유는 백이가 맏이이다 보니 

   대표해서 거론하는 것일 뿐, 백이와 숙제가 다른 위상을 지닌 것은 아니다.


- 조선의 사신이 북경으로 들어가는 문은 조양문이다. ‘유리창은 본래 각종 유리와 벽돌을 굽는 가마공장

  이었는데,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심지이자 서적 출판과 유통의 중심지로

  변한다. 조선 선비들이 바라본 유리창은 서적의 메카, 물품을 사고파는 시장, 지식교류의 장, 연회의 

  공간이었다.


- 연암은 이별할 때 물가를 배경으로 하면 그 정서가 극대화 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장소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터인데, 공간을 추상적인 배경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정서와 

  긴밀하게 연결된 체험의 장소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을 공간의 장소화라 부른다.


- 일상의 지식도 왜곡된 진실을 담은 경우가 많으므로 따져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주체적으로 판단할 때 실체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연암은 이를 명심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 연암은 중국의 땅을 새로운 배움의 기회로 생각하고 새로운 장소 경험을 했다.

  중국이라는 공간을 거대한 문명 체험의 장소로 바라보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새로운 체험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생뚱맞게도 작금의 시대에서 중국과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현상과 나름대로의 

해법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는데,


- 먼저 중국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면,

  작품 속에 중국인들의 과거부터 가자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그것은 바로 

  ‘청심환이다.

  연암이 활동하던 시기에 중국인들이 조선의 사신단들을 환대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진짜 청심환을 얻을 

  요량이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 이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이야기도 연암의 시대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추사 역시 중국인들에게 호감을 살 때 조선의 청심환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 데 

  중국인들이 조선의 청심환 효과가 우수해 그런 것도 있겠으나 중국산에는 가짜가 너무 많아 믿을 수가 

  없어 조선의 청심환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작품을 떠나 과거나 

  지금이나 중국인들의 위조 상품’ 제조 능력이 아주 뛰어났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하여간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고래로부터 생활 습성이 그리 형성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공자와 맹자, 법가와 한비자 등등의 도덕적 인물이 태어나면 뭐하는가 후손들이 도덕이 출장 가고 사기성 

  특질이 보초를 서는 저 모양이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상한 국민이 아닌가?

  요사이 집 값이 최근 미친년 널 뛰듯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특정 지역에는 손바닥 만한 작은 평수가 

  ‘억대를 넘는다고 합니다. 

  집을 가진 주인은 집 값이 올라 좋을지는 몰라도 그 가격의 폐해는 반드시 언젠가 자신의 자식과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가진 자들의 담합투기로 집 값을 올려놓고서는 정부 정책이 잘못되어 그러니 못살겠다 난리를 치고 

  있지만 웃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맨날 하는 이야기지만 남 탓하지 말고 인간의 입은 왜 한 개이고, 귀가 왜 두 개인지를 정확히 그 의미를 

  알고, 가장 훌륭한 리더와 구성원간의 통치 및 관리 도구는 소통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살아야 하는 데 

  그것을 잊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나는 십 여 년 전부터 집이 두 채 이상이거나 소위 땅값 급등지역에 사는 공무원은 절대 부동산 정책을 

  검토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었는데, 그게 최근에 이야기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가지를 더 첨언하면 강남쪽 부동산 정책은 강북에 사는 공무원이, 강북의 부동산 정책은 강남에 사는 

  공무원이 주관하게 하고 적당한 인물이 없으면 외부 용역을 주어서라도 – 현직에서 해당 기획을 맡은 

  공무원은 해당 업무를 떠나도 10년 이내에 자신이 부동산 관련 업무를 기획한 지역으로 이사는 물론 

  투자도 못하게 만드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별, 업무별 상피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이면서 확실한 돈벌이 아이템이 없는 시대에 단시간 안에 돈 버는 방법은 아주 아주 

  간단합니다.

  ‘작전세력과 결탁해 주가를 조작하거나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카더라 프로젝트를 내세워 금융권을 

  상대로 화이낸싱을 추진하거나, ‘인천공항에 배만 들어오면 항구가 대규모 카지노 단지가 만들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대본으로 만든 부동산 기획이렇게 3가지 일 것입니다

  굳이 하나를 더 추가하라면 요새 뜨고 있는 백신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일 겁니다

  이 중에서 머리에 든 것 없이 입으로만 단 시간에 돈 버는 매력적인 방법은 부동산이기 때문에 너도 나도 

  ‘기획 부동산에 몰려드는 것이고 돈 싸 들고 찾아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자유 민주국가이니 부동산으로 돈을 벌든, 허황된 백신으로 돈을 벌던 투자하는 인간들은 스스로의 책임

  으로 투자를 할 것이고 이익을 보던 손해를 보던 자신의 책임 아래 일어난 일이니 국가가 그런 사업이 

  아주 부도덕한 방식이 아닌 이상 뭐를 하던 그런 상업적 행위를 터치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이유가 뭘까요?

  세금을 많이 내기 위해서, 국가 발전을 위해서 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일단은 자신이 더 잘살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남는 돈 자식에게 물려줄 요량으로 그리 했을 

  것이니 결국 조세정의를 위해, 결과가 공평하기 위해 출구를 틀어 쥐면 됩니다.  

  다시 말해 부의 세습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집 값 잡는 방법의 출발은 부의 세습을 막는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한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재벌들의 자식들이 수 조 원씩의 재산을 상속받으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하이에나들이 수 억 원씩 

  버는 부동산 갑부들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던 할 이야기가 무지하게 많지만 이렇게 글을 맺으려 합니다.

  용인 에버랜드 뒤편에 가면 삼성그룹 창업주의 묘소가 있는데 몇 평인지 확인해 보시고 

  죽은 자의 수의에 왜 주머니가 없는지 생각해 보시고

  여러 방송에서 나오는 각종 살인사건 프로그램을 유심히, 찬찬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은 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한 짓이던 좋은 짓이던 간에 돈 많이 벌면 행복하고 오래갈 것 같나요?

  분명한 것은 돈이 적으면 약간은 불편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불행하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돈이 없어 불행하고 돈이 있어 행복한 세상이라면 세상 살 맛 나지 않지요 비록 개천에서 용이 사라져가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은 절대 불편부당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에게 모든 것 권력, 명예, 부귀, 건강 등 - 을 주지 않습니다

  굳이 이 자리에서 있는 자들의 불행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있는 자들에게도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우리 같은 서민들은 분명 갖고 있을 것이니 너무 상대적인 평가를 통해 자신을

  환경을, 부모를, 세상을 탓하지 맙시다죽어도 짊어지고 가지 못할 땅이고 돈인데……


  마지막으로 돈이 없어 세상이 힘들어 자살을 예정한 사람들 자살하신 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에게 

  한마디 합니다. 절대 자살하지 맙시다.

  자살하면 정말로 있는 자, 가진 자, 돈 많은 자들에게 진짜로 패배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복만 생각하시고 줄기차게 뛰어다닙시다. 미친 놈처럼 말입니다.

  나도 그렇지만 아직도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용기를 내서 살아봅시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이 연경을 다녀오면 기존의 조선 사회를 지배하던 이념을 뒤집는 새로운 관점을 던져 

  주었듯이 나는 본 작품을 통해 위와 같은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답답한 마음에 몇 줄 적어 

  보았습니다.

 


책에서 주워들은 이야기


- 양반들이 말의 고삐를 잡고 앞장서 가는 이를 견마잡이라고 했는데, 고삐는 거덜이라고도 했다

  견마를 치장하는 데 많은 돈을 쓰다 살림이 기울어지는 일이 생기자 거덜 나다라는 관용어까지 생겨났다.


- 우리나라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작(酬酌) 문화다. 수작이란 술잔을 주고 받는다는 뜻이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말을 주고 받다가 농을 하기도 한다. ‘수작 부리다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


- 사람의 성품이나 능력을 잘 알아보는 식견을 지인지감(知人之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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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 - 처지와 상황을 이기고 열정과 담대함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
안호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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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이라면 또 종교적 신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종교적 거듭남의 이야기 

내지는 그 개인들이 경험하고 체득했을 종교적 관점과 성찰을 언급한 내용에 대해 한번쯤은

관심을 갖고 접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나의 견해로는

우리가 차를 몰고 다닐 때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자신이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주행 중인 차량에 이상은 없는지 여부를 간략하게나마 확인하기 위해 계기판을 들여다 보면서 

운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독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신앙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섬김의 자세는 맞는지 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기도의 방식과 내용에는 문제가 없는지, 혹시 하나님이 주셨을 사명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를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점검을 위해서라도 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 고루하지 않은지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을 항상 up date하고 또 점검할 때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끔 종교적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외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는데 읽을 적마다 항상 새로움과 경이로운 관점으로 인해 놀라고는 한다.

요번에도 그런 결과를 얻었다.


- 부모의 기도가 멈추지 않는 한 반드시 자녀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결단코 망하는 법이 없다.


- 포용의 범위를 넓혀 사고와 이해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것은 기회주의나 비굴한  타협과는 

  다르다. 진정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내려놓음이며 본질과 핵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본질과 핵심을 견고하게 붙들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 포용은 본질을 붙들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핵심을 붙잡고 그 외에는 자유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포용의 정신이다. 이해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통로이다.


- 신앙생활을 하면서 빠질 수 있는 착각 중 하나가 내 잘못과 실수로 벌어진 죄의 책임과 

  하나님의 책망, 진노의 징벌을 핍박과 환난이라 착각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징벌을 핍박과 고난이라 착각하면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회복은 회개에서 시작.


-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구원해주신 이유는 없지만 구원해 주신 목적은 있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시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목적대로 살아갈 때만 진정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 당신에게 지금 원치 않는 상황과 고난, 문제와 질병, 실패와 고독이 찾아왔다면 이 아픔과 

  어려움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여 지금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기를 소망

  한다


- 사명은 내가 선포해서가 아니라 내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이양하고 나의 익숙함과 안락함도 

  포기하고 내 경험도 꺽을 때 시작된다.


- 하나님 수준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순종을 막는 이성의 개입과 자아의 벽을 깨고 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 내 이성과 경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나에게 주신 사명의 삶을 

  살려 할 때, 그때부터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책임져 주신다


- 설교란 내가 먼저 받고 누린 은혜를 나누는 것이지, 누군가를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 전도는 교회의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는 하나님 아버지의

  피맺힌 소원이다.


-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그 

  분의 뜻과 마음을 알고 헤아리는 것이다.


- 우리 인생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음이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우리

  보다 훨씬 더 큰 계획과 위대한 목적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 나를 드리는 것이 예배라면 나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내 생각을 드리고 내 계획을 드리고 

  내 자존심과 감정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


- 기도는 최후의 방법이 아닌 최선의 방법이다.


- 설교의 완성은 성도의 몫이다. 설교자는 목숨 걸고 말씀을 준비하여 선포하고, 말씀을 듣는

  이는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삶이 거룩하게,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해야 한다.


- 죽을 때까지 잃지 말아야 할 신앙의 가치는 바로 감사이다.



[작품에서 인용된 성경문구]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7:1~2)


2.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리라.( 41:10)


3.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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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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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나는 독서를 마치면 무거운 주제이거나 내가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용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몇 날 며칠을 읽은 작품을 갖고 혼자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는 했다

일종의 병이 아닐까?

이유는 하나다.

작품 내용과 주제를 되씹어 보면서 왜 그랬을까?”, “그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을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반복되는 점은 없는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등등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이런 쓸데 없는 주제를 갖고 고민하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본 작품을 갖고 이야기하기 전에, 위와 같은 관점으로 작품을 분석해 보고 음미해 보았을 때

순전히 개인적인 소견이다 -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전문가들의 편협함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크게 든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나라 건국일의 기준을 갖고 내노라 

하는 학자(?)에서부터 얼치기 역사학자까지 총망라해서 정치권과 벌이는 이전투구를 보면

내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알 것이다.

단언컨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이런 현상은 반드시 또 반복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과 접근 방식은 십인십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좌도 우도 아닌 입장에서 정의를 분명히 세워놓고 이를 

달리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정권을 잡은 기득권층에 의해 근본부터 다시 평가하려는 모습을 보면

역사학계가 예산이 남아 보도 블럭을 다시 까는 구청 수준도 아니고 국가의 뿌리가 되는 사항을 

완전 통째로 들고 엎어버리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재 편집을 해 버리니 정말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될수록 또 해석하고 평가하는 잣대가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사회라면 누구도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상한 역사 논리를 들고나와 사회와 나라는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

에서도 분란을 일으키게 하는 삼류 학자들과 거기에 편승해 발광하는 정치 모리배들은 정말 

정신차려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지는 작품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의 다툼 속에서 최명길 선생이 보여주신 행동은 사건의 중심부에 있었던 인조

인정하듯 결코 폄하될 수 없을 만큼 큰 업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서는 대세를 저버린 

희대의 간웅으로, 죽어서도 평가조차 제대로 못 받는 사항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그 분이 활동

했던 시기는 물론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진정한 평가를 방해하고 있는 노론을 추종하는 

학자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접하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저명한 인물임에도 후세에 알려진 게 거의 없거나 

기록이 전무한 분들은 대체적으로 당시의 주류층이 아니었기에 전해지거나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게 현실로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해당 작품 역시 최명길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500여 페이지에 달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 거의 비슷한 이야기와 사례가 매 장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어 최명길 선생 개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주변부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참으로 아쉬운 작품이었다고 생각되는 바이다.

이유는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분의 치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극히 부실했거나

아니면 오랑캐 청과 은혜를 베푼 명나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닥경(닥치고 공경해라)’’

하려는 주류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해 그와 관련된 자료가 폄하되고 훼손되어 그러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보다는 편향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 주류학자들의 방임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국심이 더 든다.

역사를 연구하는 후손들이라면 양이던 음이던 모든 것을 수렴해 연구해야 진정한 학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자료가 적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는 외눈박이 역사적 사실에 목을 매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지난 2019 6월경 화살맞은 새 인조대왕”(김인숙/서경문화)라는 작품을 읽은 후 서평을

통해 인조대왕의 재임기간 동안의 문제점에 대해 열거한 적이 있는데 해당 작품은 인조를

중심으로 한 정치 권력의 문제점을 분석한 내용으로 생각하였으며 여기에 다시 당시 요약을

정리해 보면

 1왕권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 아버지 정원군에 대한 추증 문제로 신하들과의 날 선 대립이연일 

     이어졌고

 2) 반정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위한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선조의 딸)에 배려와 사위에 대한 불신

 3) 청나라의 압박과 조선 출신 통역관들의 안하무인격 횡포로 인한 스트레스

 4)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궁궐 내 저주사건과 잦은 병치레로 인한 스트레스

 5) 왕과 세자의 혼사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왕의 권위에 대한 추락과 도전

 6) 송시열과 치열하게 다투었을 ’예송문제‘

등으로 조선의 역대 그 어떤 왕보다 더 많은 골치 아픈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판단된 게 나의 

소감인데,

작품은 청나라(실리)’명나라’(명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로가 옳다고 주장만 하는 

권력층의 이면과 함께 전쟁으로 인한 조선 사회의 정치, 사회적 혼란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는 평을 하고 싶다.

저자께서는 권력층의 탁상공론적 분열 속에서 오로지 국가와 종사의 안위, 백성을 헤아리려는

최명길 선생에 대해

 1) 책임과 희생정신

 2) 유연함과 포용력 냉철한 현실 인식과 전략 마인드 

 3) 현실에 발을 디디고 대안을 제시했던 경세가

로 평가하신 점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하는 바이다.

작품에 대해서는 요약을 하는 것은 작품의 가치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정리하는

것은 지양을 하고 독자들에게 한번쯤 읽어 보기를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감추어진 몇 가지 주변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는데


첫째, 최명길이 청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만들어낸 배경에 관한 것으로 그가 

       내세운 청과 화친하지 않으면 종사와 백성을 보전할 수 없다는 배경의 출발점을 엿보는 

       대목인데,

       “최명길을 통해 우계 성혼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데, 성혼은 최기남(최명길의 부친)

        존경하는 스승이었다. 성혼은 전란 중에 임금을 내팽개친 불충한 인물로 당대에 비난받는 

        인물로 주화파의 길을 걸었던 최명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명길에게 큰 영향을 준 

        최기남이 성혼의 제자였다는 사실과 성혼 또한 최명길처럼 임진왜란 당시 시의를

        거스르면서 일본과의 화친을 주장했다가 곤욕을 치뤘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점이다. (* 성혼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여 더 이상의 언급 없이 인용해 보았다)


둘째, ‘적폐청산도 좋지만 우선적으로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는지를 생각하라

        평안도 관찰사 박엽구명 운동을 했는데

        해당 인물은 광해군 정권에서 수많은 구설에 올랐던 인물로 정사야사에 기록된 내용

        만으로도 삼뜩하고 부정적인 내용이 낭자하다는 인물이었지만 당시 최명길은 장수의 지략

        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그를 평가하면서 박엽을 살려 두어야만 후금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그를 살리는 것이 나라의 장성을 보전하는 것이자 후금의 침략을 막는 

        길이라 여겼다.

        박엽은 장기간 평안도에 머물면서 후금과의 교섭 능력과 경험, 그리고 그가 확보하고 있던 

        후금과의 외교 통로가 상당했었던 인물로 최명길은 그의 능력을 중시했는데

        병자호란 당시 청인들이 박엽이 만약 있었다면 우리가 조선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

        이라고 할 정도의 오랑캐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고 한다.

        또 다른 예는 장인 장만의 집사 출신이었던 정충신(이괄의 난 당시 공로자)’과 관련된

        이야기로, 최명길은 일단 사람의 능력과 재주를 인정하면 그의 다른 측면들을 별로 괘념치 

        않는 스타일이었다. 비록 전 정권의 인물일지라도 그의 경험과 능력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등용했다고 한다.

        (* 이 부분은 정권이 바뀔 적마다 구시대 적폐청산만을 외치는 우리의 위정자들이 새겨 

            보고 본 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셋째, 열불나게만 하는 ‘탁상공론에 집중하는 위정자들의 작태

        골수 척화신들이 보기에 인조는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임금의 자격을 이미 

        상실한 더럽혀진 군주였다. 인조는 신료들이 자신을 오군으로 여기는 데 빌미를 제공한

        원흉으로 김상헌을 지목했다.”

        상기 내용은 저자의 관점으로 당시 집권층에 만연된 분위기와 리더가 부하를 바라보는 

        관점을 표현한 내용으로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하거나 현장에 있지 않았어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든 내용으로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 정치현실을

        목격하고 기록한 듯한 내용이다.

        거기다 인조까지 자신의 부하를 부정적 시각 김상헌은 인조가 청에게 항복을 결심하고

        남한산성에서 내려왔을 때 죽음으로 항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조를 호종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 전력이 있다 - 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하여간 나라가 온전히 운영되거나

        외세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정신전력과 단합력이 거의 바닥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에, 최명길만은 인조를 다독이면서 임금의 권위를 회복하는 문제, 조정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출사를 기피하는 풍조를 불식하고 인재 등용 문제, 전란으로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민생을 안정시키는 문제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넷째 위정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정말 중요하다.

        좌의정 이성구는 청으로 끌려간 자신의 자식을 빼내기 위해 속환값(몸값)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가격이 아닌 터무니 없이 크게 지불해 속환값 폭등의 단초를 제공해 이를 감당

        할 수 없었던 다수의 서민들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어 사회적 공분을 초래하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조정에서도 크게 꾸짖는데,

        해당 사건을 보면서 1620년대에 일어난 정묘호란에서 가진 자들이 보여 준 모습과

        1340년대 영불간에 벌어진 백년전쟁당시 칼레의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대비해 

        볼 때 시간적으로 300년 가까이 벌어져 있고, 도덕과 양심이 그래도 서양보다는 많이

        고양되었을 동양, 그것도 조선에서 배우고 가진 자라고 여겨지던 인간들에 의해 그런

        저급한 행동이 나왔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한심한 것은 그 이후 5백 년 가까이 흐른 작금의 시기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우리의 위정자들 사이에서 주택 소유 문제, 갑질 문제, 음주운전

        문제, 비대면 종교모임의 권유 무시, 내로남불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정치권 문제가

        코로나로 인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범부들을 더욱 더 서글프게

        하고 있다.  


        현대판 최명길 선생이 북악의 하늘 아래서 번민과 고뇌 속에서 진정으로 사람이 먼저다

        라고 외칠 그날을 학수고대해 본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는데, 최초로 실패한 리더(위정자)는 단순히 실패한 리더로 기록

       되지만 역사의 실패 속에서 교훈을 찾지 못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한다면 혼군()’ 

      혹은 무능한 리더 기록할 있음을 기억해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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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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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추사 김정희하면 정상적인 학업을 마친 사람들이라면 한국의 대표적 서예가 신라 김생

고려 탄연조선 안평대군추사 김정희를 4대 명필로 꼽고 있는데추사 김정희하면 

세한도추사체의 창시자였으며 금석학의 최고봉이셨다라는 기본적인 상식만을 

이야기할 것이고 또 그런 게 정상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위와 같이 우리 역사를 학교에서 배운 상식에 기반을 두고 누군가 역사적 인물에 대해 그분은 이런 점과 

저런 점이 훌륭한 분이라고 주장하면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알고 있는 지식이 일천한 상태

에서는 그에 동조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기가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작품을 열기 전까지 ’추사‘라고 하면 그냥 단순하게 ’세한도‘와 서예에 대한 지식도 부족한 

상태에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추사체‘를 만드신 분이라는 수준 정도로만 알았지 그분이 어떤 분이었고

무엇을 남긴 족적은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나 역시 전혀 알지 못하였다

해당 작품은 나의 그 분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한 몫에 해결해 준 작품이다.

그렇다고 내가 역사를 공부하거나 서예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도 그런 분야에 평소 관심이 많아 도전한 

  것은 아니다 -


’추사‘는 글씨는 물론 차()와 역사역사 지리학은 물론 서화문장 등 다방면에 뛰어난 한 마디로 

’다재다능한 능력을 소유한 능력자‘이셨다.

따라서 추사 선생에 관해 작품에서 얻어 들은 정보를 근거로 그 분의 삶과 업적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려 

노력하였지만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문화사적 업적에 대해서는 예술적 지식이나 미학적 시각이 

일천한 내가 무엇을 파악할 수 있었겠으며 느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술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일반적인 사실에 근거한 분석에 집중하며 나름정리해 보려 노력하였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은 네이버나 다른 검색 도구를 이용하면 더욱 더 많은 그 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나는 겨우 작품을 통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으로 주마간산식 정리를 했을 뿐이다.

작품을 통해 나름 추사 김정희 선생을 파악해 보니

1) ‘있는 집 자손이었다, ‘금수저였다.

34세에 대과에 합격해 출세의 길에 들어선 이유도 있지만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추사의 12촌 

대고모가 된다추사의 증조 할아버지(김한신)가 영조대왕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와 혼인한 가문의 

음덕에 힘입어 출세 가도를 걸으나암행어사로 활동하던 시기에 잘못된 인연으로(비인현감 ‘김우명’의 

비리 보고그와의 끈질긴 악연으로 노년까지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참고로 외가 쪽도 노론의 대가(大家) '기계 유씨집안으로 석파(이하응대원군)는 영조의 현손으로 

남연군의 아들인데남연군의 양어머니 남양 홍씨가 추사 양어머니 (김노영의 아내)의 친동생으로 

남연군(대원군의 아버지)과는 이종사촌, 석파 이하응에게 추사는 5촌 아저씨다.

 

2) 출생이 남달랐다모친이 임신한지 24개월만바로 밑 동생은 18개월만에막내 동생은 12개월 만에 

    태어났다고 한다.

     ---> 해당 인물을 영웅내지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그런 전설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약간은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항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을 읽어보면 안다)

 

3) 성격으로 인해 상당히 힘든 삶을 살았을 것으로 보이며

   * 나의 견해로는 이 분의 이런 성격으로 인해 후세에 세세히 그 분의 업적에 대한 대중적인 지명도가 

      낮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바이다.


위에서 언급한 끈질긴 악연의 김우명의 상소에 언급되고 있지만 추사를 ‘요사스런 자식’이라고 하면서 

  ‘항상 반론을 가지고서’ 세상을 살아간다고 표현하고 있는데말끝마다 ‘그건 그렇지 않다’라며 남을 사갈시

  하고 궁지로 몰아붙였던 추사에게는 독선적인 태도가 있었다고 한다


추사의 열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젊은 시절에는 관용의 미덕이 부족했고 매사에 시시비비를 

  확실히 따져야 했고 ‘알면 말하지 않을 수 없다’성미 때문에 결국 수많은 적을 만들어 끝내는 남쪽으로 

  귀양을 가고 북쪽으로 유배가는 고초를 겪어야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추사의 남다른 개성과 자신감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자신의 부친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임금 행차 길에 격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그의 그런 행동도 어떤 댓가도 없이 무위가 되었는데 그런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면 추사의 대인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4) 재능은 주어진 것보다 갈고 닦은 자에게 부여된 신의 선물이다

추사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였는데젊은 시절 써 놓았던 글이 완벽하지 않다고 하여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이

  쓴 글을 모아 불질렀다고 하며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서신들은 운 좋게 남아 있어 전해지고 있는 평범한 

  글들이라도 한다.

 

위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항을 차치하고 개인적인 발자취를 찾아보는 것이 인간 김정희의 속내를 더 쉽게 

알 수 있는 사항이라는 생각을 갖고 정리해 본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추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추사가 활동하던 

  시대의 조선의 시대 환경적인 분위기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1) 조선시대 성리학은 주로 송나라 성리학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발전했다

   명나라 양명학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들이 받아들였을 뿐 적극 수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배격했다.

2) 조선의 지식인들은 외부 정보에 어두웠고 청조 문화는 18세기 크게 발전했고 고증학이라는 신사조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다.

   일례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캐치플레이즈로 내걸고 고증학을 일으킨 청조학의 개조 고염무의 '일지록

   (日知錄)'이 출간된 지 80년이 지나도록 이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 실사구시란 구호는 ‘한서(漢書)’에 나오는 ‘사실에 의거하여 사물의 진리를 찾는다’가 연원이다

     추사는 ‘학문하는 방도는 굳이 한나라송나라로 나눌 필요 없이심기를 고르게 하고 널리 배우고 독실

     하게 실천하면서 사실에 의거하여 진리를 찾는 자세로 나아감이 옳다’ 하면서 오직 이 실사구시 하나로 

     학문이 길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추사가 활동할 당시 조선은 성리학의 매너리즘에 빠져 공리공론으로 겉돌고 있었다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곧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실학사상의 한 줄기였다.

4) 조선 후기 실학은 반계 유형원성호 이익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

    厚生)의 대단히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으로 중국과 관계 없이 자생적으로 일어난 학문의 신경향

    이었다그런데 그런 사상적 기류가 청나라에서도 똑같이 일어나 '고증학'이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체계화

    되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5) 이덕무를 비롯한 조선의 실학자들은 청나라 고증학에서 사상적 동질성으로 발견하고 깊은 자극을 

    받았다박제가는 이런 사상적 경향을 스스로 북학(北學)이라고 했는데, '북학’이란 '맹자'에 나오는 

    표현으로 이상보다는 현실관념보다는 사실을 더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6) 북학파의 선봉은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 그 뒤를 이어 초정 박제가가 이어가고 있었으며 청나라와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높은 차원으로 완성한 사람이 추사다.

추사의 일생은 보통 5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한다고 한다.

   1) 1786~1809(1~24) : 출생에서 연경에 다녀오기까지 청년 수업기

   2) 1809~1819(24~34) : 대과에 합격되기까지 10년간의 학예 연찬기

   3) 1819~1840(34~55) : 관직에 있는 21년간의 중년기

   4) 1840~1849(55~64) : 8 3개월간의 제주 유배기

   5) 1849~1856(64~71) : 유배 해제 후 서거까지 8년간의 만년기

추사가 청조학의 대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제가의 힘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중국을 왕래하며 사귄 지인들을 추사에게 소개하면서 중국의 저명한 인물들(조강서송, 완원옹방강

  등)과의 교류에 물꼬를 트게하고 있다.

  추사(24)가 연경에서 청조 문화를 완성하고 선양함에 있어 절대적 공로자이다 당시 제일인자인 '완원'

  (46)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 중의 행운으로 완원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세워 자신의 아호를

  완당(阮堂)이라 할 정도였다.

  '옹방강역시 당대의 금석학자이자 서예가이며 스스로 경학의 대가로 자부하는 연경 학계의 대가로 자부

  하는 연경학계의 원로로 건륭 당시 4대 명필로 불리울 정도로 명필이었으며 그의 문하에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특히 직접 운영하는 '석문석루'는 희귀 금석문과 진적이 많아 추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옹방강의 아들(옹수곤)까지 연결된 인연을 갖기도 한다

  추사를 좋아했던 헌종이 기거하던 창덕궁 낙선재에 ‘옹방강’ 글씨의 주련과 ‘섭지선’  그는 추사가 연경 

  학계와 교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채널이었다 - 이 쓴 현판이 걸린 데에는 이런 인연이 있다.

 

연경에서 돌아온 추사는 자신이 앞으로 추구할 학예의 길이 경학과 더불어 고증학’ 금석학에 있다는 

  확신을 세우고 고증학의 정신과 방법을 우리 현실에 적용거기서 이룩한 성과를 연경 학계에 전하는 등 

  조선 학계는 물론 중국 학계에도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조선 서화계에 새 바람을 불어 넣었고 한편으론 고증학과 금석학에 

  기반을 둔 신선한 학품과 예술사조를 불어 넣었는데 이를 ‘완당바람’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추사는 안동 김씨(김홍근)이 대사헌이 되지만 10년 전 사건인 ‘윤상도 사건’이 빌미가 되어 안동 김씨의 

  집요한 공격으로 유배(제주도)를 가나그 곳에서 여전히 연경 학계의 새로운 동향과 신간서적을 접하고 

  있었다. ‘세한도(歲寒圖)는 추사가  제주에서 귀양살이하는 동안 정성으로 중국에서 책들을 구해준 ’우선 

  이상적‘에게 보답으로 그련 준 그림이다.

  1차 제주도 유배가 끝나고 또다시 헌종의 급사로 정치권이 정쟁에 휩쓸리면서 추사의 절친인 ’권돈인‘이 

  유배되면서 그 배후에 ’추사‘가 있다는 안동 김씨의 모함을 받아 또다시 유배의 길을 떠나는데 그 당시의  

  나이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예순여섯이었으며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 <세한도>는 추사 마음 속 이미지를 그린 것으로그림에 서려 있는 격조와 문기 (文氣)가 생명으로 화법

  만이 아니라 필법과 묵법의 서법까지 보아야 제 가치를 알 수 있다.

  즉그림 그 자체보다도 그림에 붙은 아름답고 강인한 추사체의 발문과 소산한 그림의 어울림에 있으며 

  순수한 조형미보다도 그 제작 과정에 서린 추서의 처연한 심경이 생생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그때그때의 상황과 심정서정에 따라 새로 아호를 짓고 그것으로 낙관하곤 했는데 그 숫자는 

  무려 200개나 된다고 하며 어떤 아호로 낙관하였느냐에 따라 추사 작품의 편년에 근거가 되고 있다.

  

작품을 정리하며 드는 생각은 유명인물이든, 영웅이든 간에 한 위대한 인물이 성공하기까지는 반드시 주위에

그 사람을 만드는데 크게 조력한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표적인 예로 과거에 출판되어 적어도 3번 이상은 읽었던 짧은 갈채 긴 험로”(이덕희 著, 학고재, 학부형이라면 추천 권유도 9, 직장인 상사 추천 권유도 8, 부하는 7 )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

뒷 이야기를 살펴보면

구스타프 말러(카리스마적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타고난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세기적 

쇼맨), 프란츠 리스트(피아니스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 (작곡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피아니스), 니콜로 파가니니(바이올린), 예후디 메뉴인(바이올린, 엔리코 카루소(테너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배우, 예술가), 마리아 칼라스(소프라노)” 등 총 12분의 예술적 업적이 뛰어나 유명 

예술인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스승, 친구부모등과 같은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본 작품도 추사에게 그런 조력자가 두드러지게 많이 있었다는 점이 

나타나고 있다결과론적으로 혼자 똑똑하다고 해서 어떤 분야의 반열에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작품에서 얻은 잡지식

조선시대 행형제도에서 유형(流刑)은 죄인을 먼 곳에 유배하여 격리 수용하는

형벌로 죄질과 죄인의 신분유배 장소에 따라 배(), (귀향갈 적), (숨을 ), (), 

(), (옮길 사등 이름도형식도 다양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시행된 것은 천사(遷徙), 부처(付處), 안치(安置세 가지였다.

1) 천사(遷徙) : 고향에서 천 리 밖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형벌

2) 부처(付處) : 중도부처의 준말로 유배에 처한 죄인을 정상을 참작하여 귀양지로 가는 도중의 

                    한 곳에서 지내게 하는 형벌

3) 안치(安置) : 주거를 제한하는 형벌

본향 안치 : 죄질이 가벼운 자를 고향에 안치하는 것

주군 안치 : 일정한 지역을 지정하는 안치하는 것

사장 안치 : 개인 별장에 안치하는 것

자원처안치스스로 유배지를 택하는 안치

절도안치 :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안치

위리안치 : 천극(죄인이라고 해서 집 주위에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서 살게 하는 안치

      - ’구륵본‘이란 비문의 글씨를 탁본하는 대신 글자의 테두리를 정확히 옮겨 그리고 바탕을 먹으로 

        칠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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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리커버) - 대한민국 경제독립 액션 플랜
존 리 지음 / 지식노마드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7


작품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나는 한 참 전에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이다.

아쉬움이 너무 짙게 배어 나온 작품이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이 인간이 되는 게 먼저지 너무 돈만 밝히는 거 아니냐?’는 

어린 시절이면 누구나 들었음직한 유교적 교육의 영향이 크게 작용해 아마도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반백을 훌쩍 넘긴 지금, 여기다 대고 구구절절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다짐을 

하면 무엇하겠는가 또 내가 뭔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희망찬 계획을 나열한다고 해서 금방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니 긴 호흡으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계획을 나의

실생활에 맞게 세워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찌되었던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부자는 아니더라도 추하게 자식이나 주변에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실전 연습을 지금부터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축이 아니다 투자다

- 공부만 열심히 하면 풍요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 착각하며 엄청난 돈을 사교육비로 낭비하고

그 결과 자녀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갖지 못함은 물론 경제독립도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이

만들어 진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할 수 밖에 없다.

- 자녀가 공부에 관심이 없다면 사교육비를 아껴 투자로 전환하고 미래의 창업자금으로 쓰는

편이 좋다

- 미국 부자들의 특징

   1) 도덕성이 높았다

   2) 호기심이 많았다

   3) 학창시절 돈 벌어본 경험이 있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질서와 돈의 흐름을 익혔다

   4) 어려서부터 투자를 해 왔다

- 부자가 되지 못하는 3가지 이유

   1) 사교육비      2) 자가용       3) 부자처럼 보이려는 라이프 스타일

-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

- 시간이 갈수록 돈의 가치는 하락하지만 투자 가치는 상승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다

-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반드시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라

- 부자가 되는 것을 운에만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부를 형성하는 최고의 방법은 돈이 스스로 일하게 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다.

- 주식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소는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이다

주식투자는 재테크가 아니다. '테크닉'이 아니라는 뜻이다주식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모으는 것이다. 주식을 자주 사고파는 것은 현명한 투자방법이 아니다, 모든 것을 

  정확히 예측하여 살 때와 팔 때를 판단하고 이익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도박에 가깝다

- 시간이 없을 때는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대안이다.

-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곧 노동자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 주식투자는 아이들의 부를 창출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아이들에게 훌륭한 창업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 빚을 내서 주식하지 마라, 주식투자는 정보의 싸움이 아니라 참을성과 철학의 싸움이다

- 장기투자 대신 단기투자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멀리하라

- 경제독립을 위한 10단계

  1) 자신의 자산, 부채 현황표를 만들어라

  2) 수입, 지출 현황표를 만들어라

  3) 부채를 줄여라

  4) 매일 1만원의 여유자금을 만들어 투자하라

  5) 퇴직연금제도를 활용하라

  6) 연금저축펀드를 꼭 가입하라

  7) 온 가족이 함께하라

  8)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라

  9) 당신이 전문가임을 깨달아라

 10)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당장 시작해라

 

작품을 다 읽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그리 신선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실천해 보지 않고서 이 작품에 대한 진가(眞價)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더러 작품에서 수정을 가하거나 추가할 것을 하나 제시해 보라고 한다면

자신의 자산을 10년 주기로 한 번 재평가해 보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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