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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 인간에게 흥미를 잃었다는 것은 '쇠약'해졌음을 뜻한다."(2권 p300)
책에는 나의 어설픈 글솜씨로는 흉내조차내기 힘든 시적이고, 감상적이고, 그러면서도 감정의 과잉이란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는 명문장들이 참 많다. 그런데 그 많은 문장들 속에서 왜 이 한 문장이 더 도드라져보이는 것일까?
가을이다. 가을의 분위기만으로도, 그리고 감당해내기 힘든 짐들로 약간은 힘든 가을이다. 그래서일까...? 나도 어디론가 떠나야 할 때일까..? 글쓴이가 여행을 떠날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 역시 많이 쇠약해졌다. 하지만 "현실"이란 핑계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 글쓴이의 자유로운 영혼이, 그리고 그렇게 떠날 수 있음이 너무너무 부러워서 스스로가 더욱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동양기행]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정의하기 힘들까봐 옮긴이가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기행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진집도 아니다. 후지와라 신야로 불리는 인간이 동양의 여러 거리에서, 그 길 위에서 자신의 실체를 찾아 헤매는 방랑의 기록이다."(2권 p303)라고.. 내 손에 쥐어진 아담한 사이즈의 두 권의 책이 한 인간의 "방랑의 기록"이었단다. 누구의 방랑은 누군가에게 이렇게 부러움의 기억으로 전달될 수도 있음이 새삼스럽다.
책에는 사진이 여럿 실려 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어둡다. 그리고 무겁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흐릿하고, 지저분하고, 칙칙한 냄새가 날 것 같고, 덕지덕지 때자국이 묻어날 것만 같은 풍경들이다. 책을 읽어나가는 내 기분이 그랬기 때문일까 때로는 몽환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만약 이 책의 글쓴이가, 그러니까 동양의 "누추한" 거리를 두 발로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글쓴이가 서양인이었다면, 나는 몇번이고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의 글과 사진을 통해 보여진 동양의 풍경이 나의 치부로 생각되었나...동양인의 하나일뿐 동양인의 대표는 아니건만 나는 과대망상 환자인가보다..
눅눅함. 습기. 비린내. 그런 것들이 배어나오는 동양의 풍경..? 하지만 그것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 냄새. 그 사람냄새 때문인지 참을 수 없을만큼 역하지는 않았다.
내가 글쓴이가 되어 여행이라도 하는 듯이 어떤 곳에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기도 했고, 어떤 곳에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기도 했다.
터키의 "먹어치우는 여자"(1권 p65)들, 그녀들이 먹어치우는 이상한 음식들, 그리고 글쓴이가 "양이라는 동물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게"(p73) 된 사건. 그리고 그가 한장의 사진을 통해 추적(?)해 나가는 트랜스젠더 창녀의 이야기 때문에 터키는 우울했다. 히말라야의 외딴 사원에서 글쓴이가 보낸 스무날 하고도 하루의 날, 음식이라 불리우기 힘든 음식들로 허기를 메우는 승려들. 글쓴이에겐 채 한달이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그렇게 생을 이어나갈 그 사원의 승려들의 삶은 "왜? 무엇 때문에..?"라는 속된 질문을 자꾸 던지게 했다. 인도의 거지들에겐 애증이 교차한다. 홍콩에서 만난 어느 형제의 이야기는, 그리고 서울에서 만난 늙은 창녀의 이야기는 삶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힘든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케 한다.
참.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다. 글쓴이가 그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근 30년 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여러 나라의 모습은 현재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은 여행보다는 좀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공감할 부분이 많다. 글쓴이의 글이, 사진이, 그리고 여행이 마냥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