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구원 -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
김남준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손에 들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첫 걸음’이다. 이것은 고흐가 1890년 생레미 요양원에서 정신치료를 받는 동안 그린 밀레의 모작이다. 생레미 요양원에 갖혀 지내는 동안 고흐는 창살 아래서 과거를 회상하며 그림을 그렸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농촌 풍경과 농부들의 모습을 보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이 표지 그림은 저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아픈 이름이라 부른 ‘가정’을 묘사하는 것으로써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거기 하나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가정을 누구나 꿈꾸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는 것. 그래서 아픈 이름으로 가슴에 새겨지게 된 것이 바로 가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들에게 있어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해서 주 안에서 하나를 이룬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가정은 늘 뼈아픈 마음의 응어리로 인식되는 곳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와 형제가 있지만 그들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에게 대해서는 무정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때론 무관심이 아닌 핍박과 조롱으로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이웃보다 거리가 먼 사람들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리라.

  이런 아픔과 고통 속에서 나 홀로 교회에 발걸음을 옮기는 가련한 신자들에게 이 책은 다시금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가족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특히 그들의 영혼 구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개인적인 신앙생활만 영위해 나가는 신자들에게도 경고의 나팔소리와 같은 책이기도 하다. 내 신앙에 대한 가족의 무관심만이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불신앙에 대한 나의 무관심도 큰 문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신자의 무관심에 대해 매우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구원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해일 것이며, 그 문제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구원 문제 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이 살아가는 신앙적 개인주의를 뜻한다. 현대적인 가족제도와 가정의 형태 속에서 이런 개인주의는 점점 다른 가족들을 행한 영적 책임의식을 낮추게 하며, 편안히 공존할 수 없는 신앙과 불신앙의 타협 아닌 타협을 유도하게 한다. 그래서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나아가기 어려운 신자에게 자신만을 바라봄으로써 그들의 가슴앓이를 풀어주게 말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과 한 이불을 덮고, 한 솥 밥을 먹는 가족들의 구원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동이 없는데 먼 나라, 타 민족, 다른 문화권에 속한 영혼들의 구원 문제에는 눈시울을 붉히며 기도하고 그들을 위한 복음의 전령으로 선 듯 자원하여 헌신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가장 가까운 곳에, 손만 닿으면 만질 곳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얼어붙은 입술이 그렇지 않는 곳에서는 열려진다니...

  거기에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면 가족전도에 있어 그들은 내가 말로 전하는 복음을 듣기 전에 이미 내 삶으로 드러나는 복음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내가 말로 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달리 가정에서의 내 모습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사랑의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지 입술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다. 가족들의 육신적이 필요가 있다면 그것도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복음은 복음으로써 전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선행인 빛나도 복음의 광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과 사랑의 행위 자체가 가족구원 문제의 핵심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행과 사랑의 행위는 복음을 담는 그릇이다. 복음의 다이아몬드처럼 귀한 것이라면 그런 보배를 건낼 때, 어찌 쓰레기 봉투에 담아 줄 수 있겠는가? 복음의 보배에 걸맞는 아름다운 그릇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늘 보여주어야 할 선행과 사랑의 행위의 그릇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기도다. 저자는 죄로 멸망당할 이스라엘 백성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생사를 건 기도를 하는 모세를 통해 우리가 불신 가족들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누구나 불신가족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형식적인 중보기도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거룩한 슬픔과 간절한 열망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의미없는 소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런 진심어린 간절한 기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사를 건 기도가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 가족은 제 생명과 결탁되어 있습니다. 함께 죽이시든지, 함께 살려 주셔야 합니다”라고 울부짖는 기도가 있습니까? 밥 먹다 문득 생각 나서 습관적으로 “우리 가족 모두 구원해 주세요”하는 기도 말고 진지하게 구원받지 못한 가족, 교회는 나오지만 회심하지 않은 가족이 있는 것이 가슴에 한이 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자신의 가슴에 박힌 못을 빼내어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기도의 여인이었다. 그는 아직 회심하지 않은 아들의 영혼구원의 문제를 끌어안고 밤이면 밤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더 곁길로만 나가는 방탕한 자식을 보며 그녀도 실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모니카는 그런 고통어린 마음과 낙담 가운데 암브로시우스를 찾아갔고, 그에게 아들에 대한 자신의 고통과 낙담을 마했다. 그때 암브로시우스는 이런 말로 그녀를 위로했다.

“눈물의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 눈물의 자식, 눈물로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 눈물로 간구하는 형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꿈은 이루어 진다는 말처럼 가족구원에 대한 우리의 꿈도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비록 얼마간의 인내와 가슴앓이가 있겠지만...

  이제 이 책을 읽고 가족구원 문제를 두고 다시금 진지하게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조카 롯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불신 가족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기에...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지금껏 소망없이 살아왔던 내 가족,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이 나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