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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과 횡단성
펠릭스 가타리 지음, 윤수종 옮김 / 울력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들뢰즈의 서문 '집단에 관한 세 가지 문제' 내용정리


* 집단적 주체성과 좋은 집단: "'우리는 모두 소집단이다'라는 가타리의 말은 새로운 주체성, 즉 ... 전체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분할도 증식도 가능하며, 상통하고 또 항상 취소도 가능한 상태로 여러 집단에 널리 퍼져 있는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잘 보여준다."(9쪽) "좋은 집단[은] ... '정말 다른 집단들에 열려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자신의 존재를 무의미나 사멸이나 파열의 가능성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하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 이제 개인도 그러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10쪽)


* 가타리의 이 책은 정신분석가와 활동가의 만남을 보여주는데 이는 3가지 문제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1) 정치를 어떤 형태로 정신분석 이론 및 실천에 도입하는가? (2) 정신분석을 혁명활동가 집단 속에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3) 정치 집단들에 그리고 정신의학 구조와 정신분석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정신 치료집단을 어떻게 구상하고 형성할 것인가?"(10쪽)


* (1) 정신분석에 정치를 도입하기: "리비도는 사회적 장을 흐르는 모든 종류의 흐름에 자신을 투여함과 동시에 철수시키며 그러한 흐름을 차단하고 막고 누출시키거나 정체시키기도 한다. ... 리비도는 사회적 장의 공통적인 잠재적 욕망을 드러낸다." "정신분석은 치유라 부르는 사회적 적응의 이상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절대적 나르시시즘(사물Das Ding)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항상 하나의 특이한 사회적 성좌를 어둠 속에 방치하게 되는데, 이 사회적 성좌야말로 추상적인 상징적 무의식을 날조하는 데 희생시키는 대신 반대로 자세히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사물(Das Ding)은 개별적 인간을 허위로 근거짓는 반복적인 지평이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의 기준이 되는 하나의 사회적 신체이다."(11쪽) 빌헬름 라이히는 리비도 경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억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가타리가 말하는 "리비도로서의 욕망은 이미 어디에나 존재하며, 섹슈얼리티는 사회적 장 전체를 관통하고 결합하며, 한 집단이 자신의 모습이나 구성까지 의존하는 대상, 인물 그리고 상징을 관통하는 흐름과 일치한다. ... 따라서 바로 흐름의 경제로서의 정치경제는 무의식적으로 리비도적이다. 즉 두 가지 경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욕망이나 리비도는 정치경제의 주체성일 뿐이다. ... 바로 여기에서 집단의 객관적 형태 속에서의 흐름과 흐름 단절의 주체성에 의해 정의되는 제도 관념이 표명된다."(13-14쪽)


* (2) 정신분석을 혁명가집단에 도입하기: 러시아 혁명의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각국의 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국가에 통합하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이것은 가타리가 '레닌의 위대한 절단'이라 부른 것을 놓친 것이다. "이러한 절단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궤멸을 대중의 승리로 '해석함'으로써, 역사적 인과성과의 진정한 단절[파열]이 작동"(15쪽)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절단을 레닌 자신을 포함해 트로츠키조차 그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건전한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가타리가 예속집단과 주체집단을 구별한 것이 참고될 수 있다. "예속집단을 특징짓는 위계제, 수직적 또는 피라미드적 조직은 집단이 무의미나 죽음 혹은 해체와 접할 모든 가능성을 피하고, 창조적 단절의 발전을 방해하고, 다른 집단의 배제에 근거하는 자기-보존 메커니즘을 확보하도록 만들어진다. 예속집단의 중앙집권주의는 구조화, 전체화, 통합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참된 집단적 '언표행위'의 조건을 현실 및 주체성에서 절단된 상투화된 언표 배치로 대체한다. (바로 여기서 오이디푸스화, 초자아화, 집단거세라는 상상적 현상이 생긴다.) 반대로 주체집단은, 총체성과 위계제를 피하는 횡단성 계수에 의해 정의된다. 주체집단은 언표행위의 행위자이며, 욕망의 지주이고, 제도적인 창조의 요소이다. 주체집단은 자신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무의미나 자신의 고유한 죽음이나 단절의 한계와 계속 대면한다."(17쪽) 결국 문제는 욕망 그리고 무의식적 주체성에 달려 있다. "즉 하나의 집단이 어떻게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지니고, 그것을 다른 집단의 욕망이나 대중의 욕망과 연결하고, 상응하는 창조적 언표를 생산하고, 스스로의 통합 조건뿐만 아니라 단절의 언표에 적합한 증식조건을 구성할 수 있는가? ... 혁명적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즉 전위와 프롤레타리아트, 프롤레타리아트와 하위-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구별을 없애고, 초탈, 고양, 찌꺼기 선별 등의 모든 조작에 대항하는 유효한 싸움을 조직하여, 횡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특이한 입장을 해방하는 것이다."(18-19쪽) 그런 점에서 집단 안에서 욕망을 분석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탈주선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결정론과 역사적 인과성의 한복판에 단절을 일으켜 절단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욕망의 새로운 언표를 형성할 수 있는 언표행위의 집합적 행위자를 해방하는 것이 중요하다."(20쪽)


* (3) 정신치료집단의 구상 및 형성: 정신분석을 분열분석으로 변형할 때 중요한 것은 광기의 특정성을 평가하는 일이다.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은 광기(와 그 특정성)을 없애버리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지, 그러한 광기가 어떻게 혁명적 단절을 만들어낼 잠재성이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혁명활동가는 교육자나 개혁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색다른 얼굴을 그 거울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비행, 일탈 그리고 광기에 밀접하게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22쪽) 제도적 정신요법은 억압적인 법과 규범을 비판하지만, 또한 주체집단을 형성하는 데 그 초점이 있다. "주체집단을 형성한다는 것은, 제도로부터 광기와 혁명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그 차이가 나는 얼굴을 욕망하는 주체성의 특이한 위치에 정확하게 서로 마주하게 하는, 참된 창조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25쪽) 그런 점에서 라보르드 병원의 UTB(기층 치료 단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욕망기계, 혁명기계를 만들어내는 제련소였다. 그런 점에서 가타리의 이 책에서 두 가지 텍스트가 중요하다. "하나는 기계의 원리 자체가 구조의 가설에서 해방되고 구조적 속박에서 풀려나게 되는 이론적 텍스트(<기계와 구조>)이고, 또 하나는 '점-기호' 개념과 '기호-물들임' 개념이 기표의 담보에서 해방되는 분열-텍스트이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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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페미니즘 - 소외를 위한 정치학
라보리아 큐보닉스 지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옮김 / 미디어버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 "제노페미니즘은 인종과 장애와 경제적 지위와 지리적 구속을 횡단하여 모든 인간의 요구에 따라 구성된 보편주의적 정치에 공헌하는 젠더 정의와 페미니즘 해방이 실현되는 미래이다."

- "우리는 모두 소외되어 있다. ... 자유의 구축은 다름 아닌 소외를 포함한다. 그리고 소외는 자유를 구축하는 노동이다."(설명: 이 말은 어떤 본질적 성격(성, 섹슈얼리티)이 미리 주어져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낯설어지는 것을 소외라고 한다면 페미니즘은 바로 그러한 소외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

- "자연의 찬미가 우리(우리 가운데 퀴어나 트랜스와 각기 다른 가능성을 지닌 이들은 물론, 가임의 의무나 양육의 의무로 인한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제노페미니즘은 맹렬한 반자연주의자들이다. 본질주의적 자연주의는 신학의 악취를 풍긴다."

- 현존하는 기술과 도구들에는 "심각한 위험이 장착되어 있다. .. 제노페미니즘은 위험을 피하기보다는, 이러한 위험에 반응하는 테크노-정치적 인터페이스 조립의 필요성을 옹호한다."

- "제노페미니즘은 합리주의다. 이성이나 합리성이 자연적으로 가부장적 활동임을 주장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 합리성에는 여성적인 것도, 남성적인 것도 없다. 과학은 젠더의 표현이 아니라 젠더의 유예다. ... 제노페미니즘은 이성을 페미니즘 해방의 엔진으로 명명하고, 누구나 보편자로서 말할 권리를 선언한다,"

- "제노페미니즘은 다중적 차원의 정치적, 물질적, 개념적 조직들 사이를 이행하는 능력을 가진 집합적 에이전트[행위자]로서 전력을 다해 이러한 의무를 직시하고자 한다."(설명: 이때 '의무'는 오늘날 전 지구적 복잡성으로 제기되는 여러가지 인식적 윤리적 요구를 말하는데, 기후위기에 응답하는 것, 낯선 이방인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환대(그들은 이것을 '의무적 환대'라고 말함)하는 것, 자유를 억압하는 젠더를 폐지하는 것, 여성혐오와 여성건강에의 위협에 맞서 기술-약물-젠더전환수술-낙태를위한의료를 개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등)

- "우리는 깨끗한 손도, 아름다운 영혼도, 미덕도, 공포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오염의 탁월한 형식을 원한다."

- "100가지 성들이며 피어나라!" 젠더 폐지, 인종 폐지, 노동 폐지 등 "모든 해방적 폐지론은 계급 폐지의 지평을 향한다."

- "우리의 욕망이 사실의 야만성과 맞닥뜨리고, 아름다움이 진리와 분간되지 않는 수많은 빈틈들이 있다. 시, 섹스, 기술 그리고 고통은 우리가 좇았던 이러한 긴장들로 눈부시게 빛나는 백열등이다."

- "제노페미니즘은 물질보다 가상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거나 가상이 물질보다 우선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물질과 가상이 함께 구성된 우리의 현실에 이러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개입시키기 위해 권력과 권력없음이라는 두 지점을 모두 확보한다."

- "어떻게 우리는 더 나은 기호학적 기생충을 만들어낼 것인가? 우리가 욕망하기 원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기생충, 굴욕이나 격렬한 분노로 자기소모적인 잔치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연대와 집단적인 자기극복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버팀목으로 삼아 해방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커뮤니티를 조직하는 그런 기생충을."

- 인터뷰 중 "개별적 정체성을 멀리하는 한편, 제노페미니즘 선언이 말하는 '누구도 특별하지 않은(보편자)와 '이질적 미래를 구축하려는 욕망' ... 유동적 지도 위에서 계속해서 움직이는 X .. 이질적 미래는 .. 계속해서 변이하는 노동을,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정보와 입력에 대해 언제나 열련있는 미래를 주장합니다"

- 제노페미니즘의 '제노'는 그리스어 제노스(Xenos)로부터 유래하는데, 그 뜻은 다음 3가지다. "1) 제노스는 우선 외국의 것 또는 이질적임을 의미하면서.. 어떤 공동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온 누군가, 또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관계, 또는 친숙한 정체성의 양식이나 인식론적 분류 바깥의 어떤 것을 뜻합니다." "2) 제노스는 적이나 이방인, 또는 잠재적으로 징후를 보이는 위협적인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을 뜻합니다.""3) 제노스는 (철학의 어원이 되며 '현지의' 또는 '알고 있는' 친구라는 뜻의 필로스와 반대로) 손님으로서의 우정, 또는 알려지지 않은 사물이나 생각에 관해 객으로서의 관계를 뜻합니다."

- "제노페미니즘은 언제든 변성의 상태와 과정, 즉 이행과 변형이라는, VNS 매트릭스 식으로 하면 '점액 정치학'에 근거한 페미니즘을 지향하면서, 트랜스페미니즘에 근본적으로 몰두하여, 정체성의 범주에 정초한 젠더 정치학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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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이야기 - 성장은 정말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했을까? ㅣ 너는 나다 - 십대 15
남미자 지음 / 철수와영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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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술술 읽히는 책으로, 청소년을 비롯해 오늘날의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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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매달린 자들의 런던 - 18세기 영국 노동계급 공통장의 죽음과 삶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90
피터 라인보우 지음, 권범철 옮김 / 갈무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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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판 서문


"배경은 런던, 시대는 18세기, 주제는 사형, 논제는 계급투쟁이다. 나는 이 책의 논제와 주제를, 산 노동에 대한 조직적인 살인인 사형과 산 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억압인 자본의 처벌 사이의 교차 대구법으로 요약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체계는 산 노동을 생산수단으로부터 그리고 어머니 지구에서 추출한 물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에 의존한다. ... 자본주의의 오백 년 역사는 늘 이주, 재정착, 이동, '중간 항로들'로 특징지어졌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속하며, 이는 노동력이 가치를 영으로, 즉 노예 상태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국가나 시장은 단독으로 또는 함께, 산 노동을 대상으로 조직된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그 과정을 강제했는데, 이 폭력은 [교수형당하는 자들이] 참회하는 과정으로 은폐되고 형벌로 부과되며 본보기적 죽음으로 진행되었다."(8쪽)


"나는 이 책을 자본주의의 네 단계--금융, 상업, 매뉴팩처, 기계--로 나누었고, 이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빼앗긴 자, 노예라는 계급으로 이루어진 몇 가지 다양한 행성적 계급 구성을 다루었다. 전쟁, 교수대, 전염병, 기아는 관리 전략이 될 수 있었다."(9쪽)


"이 교수형 체제와 '공통장'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것은 재산의 의미와 관련이 있었다. ... 지하 공통장(undercommons) ... 아래로부터의 힘 ... 맑스는 자신이 정치경제학에 독창적으로 기여한 세 가지가 구체 노동과 추상 노동의 구별, 임금의 비합리성, 그리고 이윤, 이자, 지대의 잉여가치로의 통일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중 처음 두 가지[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의 구별, 임금의 비합리성]가 런던에서 교수형당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10쪽)


* 서론


"자본이 이전 시기에 일어난 식민지 해방, 전례 없는 임금 요구, 문화 혁명에 대응하면서 수명을 연장했던 바로 그 시기, 즉 1970년대 중반 이후 사형의 강화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15)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교수형]이 연극적인 진실이었다는 점이다. 연극은 갈등에 의존하며, 이 점에서 오성을 제외한 모든 감각에 호소하는 스펙터클과 대비되어야 한다. ... 교수형이 주는 극도의 고통은 다양한 감정들--분노, 환희, 연민, 두려움, 공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각각 고유한 행동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 만일 교수형을 연극으로 여긴다면 그 연극이 재현한 갈등은 약자와 빈자 대 권력자와 유산자의 갈등이었다."(20-21) 


"이 목[매달기]의 역사는 빈자로부터의 생산수단의 수탈(이로 인한 "도시화")뿐 아니라 빈자에 의한 생활수단의 전유(이로 인한 "도시 범죄")를 포함하는 18세기 계급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핵심논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적 관계와 연관된 착취 형태들이 범죄 활동 형태들을 유발하거나 변형했다는 것, 둘째, 그 역도 사실이라는 것, 즉 범죄 형태들이 자본주의에 중대한 변화를 유발했다. ... 마지막으로 교수형당한 사람들의 투쟁은 그들 계급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통치자들이 나름의 선제적 조치를 행사하도록 자극했다."(22)


"법이 단지 계급이익을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은 보편성을 가장하는 법을 위선적이라고 경멸할 것이다. 노동계급은 율법폐기론적 관점--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냉소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유물론을 채택한다. 어느 경우든 노동계급은 악질 범죄를 저지르고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품위는 걸리버에서 배설을 하던 원숭이 야후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다른 한편 법이 실제로 사회 지배자들의 부패를 초월하여 그것을 무너뜨리는 정의의 이상을 표현한다면, 노동계급은 예언자적 분노로 세계를 뒤엎고, 자신의 사회적 범죄를 합리적이고 자비로운 사회...를 향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23-24)


"취하기(taking)의 역사와 제작(making)의 역사는 함께 어우러져, 사회적 생산관계들의 모순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거침없이 몰고 간다. 이 모순에 대한 해답은 세기말의 두 경향에 의해 제시된다. 첫째는 지배의 무기고에서 공개 교수형의 중심적 위치를 제거하는 경향이었다. 이 경향은 1783년 타이번으로 향하는 행렬의 폐지와 함께 시작된다. 둘째는 노동계급의 가장 끈질긴 요구 중 하나를 수용함과 동시에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가변적이고 역동적인 수단으로서 임금 관계를 도입하는 경향이었다. 이 경향은 1790년대의 탄압 시기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26-27)



1부 만마전과 금융 자본주의, 1690-1720


1장 "온 나라의 공통 화제" : 잭 셰퍼드와 탈출의 기예


"첫 번째 장은 1640년 혁명과 연속성을 가진 해방의 중요한 의미 하나를 제시한다. 즉 런던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가두어 훈육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된 제도들로부터 탈출하려는 성향이 점점 늘어났으며 그에 필요한 기량과 성공하는 경우 역시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 경향을 '탈감금'이라고 명명했는데, ... 나는 그 활동을 미셸 푸코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최근의 역사학적 동향에 대항하는 경향으로 이해한다. 푸코는 '대감금'에서 감금을 강조하며 정부와 사회의 지배자들을 전능한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30)


"아이들 중 몇몇은 여왕의 이름은 물론 웰링턴, 넬슨, 보나파르트라는 이름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성 바울이나 모세, 솔로몬 등의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아이들이 노상강도 딕 터핀, 특히 강도이자 탈옥범인 잭 셰퍼드의 생애와 활동, 성격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재인용 "가택 침입 강도이자 탈옥수인 잭 셰퍼드는 한때 18세기 잉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의 명성은 대양을 건너 수 세기에 걸쳐 퍼졌다."(33)


"뉴게이트의 교회사 웨그스태프 씨는 그에게 탈출할 궁리를 하기보다 내세에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셰퍼드는 프롤레타리아 유물론 철학으로 답했다. '손톱 줄 하나가 세계의 모든 성경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 ... 잭은 자신의 잦은 도둑질이 '어떤 면에서는 나쁘지만 다른 면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자신은 일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 특히 자신이 부순 것을 늘 수리하는 자신의 옛 직종[목수]에 종사하는 이들은 일이 없어 놀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곤 했다."(64)


"해부학자들은 그의 시신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는 품위 있게 매장되었다. 그를 영원으로 이끈 교수형을 탈출로 보지 않는다면, 이 매장이 그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탈출이 될 것이다. 75년전 로버트 로키어의 장례식--이날 수천 명의 남성과 여성이 수평파의 녹색을 입고 아일랜드에서의 복무에 반대하는 이 비숍게이트 반란 지도자 처형에 참석했다-- 이후로 그렇게 많은 런던 인구가 모인 적은 없었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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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글 못 쓰는 지식인" 가운데 하나로도 선정되었다던 주디스 버틀러의 저서가 새로 번역되었다기에 궁금해서 미리보기를 클릭해 보았다. 나귀님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의 연속이지만, 그나마 눈에 익은 고유명사가 등장한 몇 구절을 구글북스 원문과 대조해 보았더니 역시나 오역이었다. 공짜 알바를 할 의향은 없으니 하나만 지적하자.

 

"문제가 되는 것은 '떠맡음'의 의미이며, 이때 '떠맡겨진다는 것'은 '처녀성을 떠맡은 자'라는 말에서와 같이 더 고양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29쪽) 역주에는 "'처녀성을 떠맡은 자', 즉 '성모[동정녀] 마리아'는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을 번역한 것이며, 이는 뒤이은 말인 "더 고양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진다"와 의미상 연결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오역이다.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은 "성모 승천"이라는 뜻이니까. 즉 성모 마리아가 죽지 않고 하늘로 들려올라갔다는 가톨릭 전승을 말하며, 신성을 지닌 예수의 '자력 승천'(ascension)과 달리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인간이 하느님에게 "들려올라갔다"고 하는 '타력 승천'(assumption)이라 몽소승천(蒙召昇天), 피승천(被昇天)이라고도 한다.


버틀러가 페미니스트 이론가이고, 책에서 젠더/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다는 사실 때문에 "virgin = 처녀(성)"라고 번역자의 생각 자체가 굳어버린 탓일까? 하지만 원래의 문맥에서 버틀러의 발언 맥락은 "처녀성을 떠맡은 자"가 아니라 "성모 승천"일 뿐이다. 즉 그 대목에서 연거푸 나오는 영어 단어 assumption의 여러 뜻 중에 "승천"도 있다고 덧붙인 것뿐이다.


즉 제대로 옮기면 이렇다: "문제가 되는 것은 '떠맡음'(assumption)의 의미인데, 이때 '떠맡겨진다'(assumed)에는 "성모 승천"(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의 사례에서처럼 더 고양된 영역으로 들려올라간다는 뜻도 있다." 결국 번역자/편집자/감수자 중 누구 하나도 가톨릭을 몰라서 벌어진 실수이고, 역주 7도 그런 무지를 변명하느라고 설명이 길어졌을 뿐이다.


이건 "식자우환"의 사례일 수도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엘리아데 대담집을 번역하면서 "바흐"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더 유명한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대신 덜 유명한 종교학자 "요아힘 바흐"라고 오역했고, 또 교수 둘이 공역한 아리엘 도르프만 회고록에서 "라이너스의 담요"가 나오자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의 담요"라고 오역했듯 말이다.


또는 앤 카슨의 책에서 토라를 "narrow sex"에 비유한 표현이 나오자 "좁은 음문" 대신 "한정된 교미"라는 번역어가 나온 것과도 유사하다고 해야 하겠다. 쉽게 말해 '에이 설마 그거겠어?' 하는 생각에 뭔가 그럴싸한 해석을 복잡하게 고안해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설마 그거'가 정답이었던 거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쉬운 답을 놓친 격이라 할까.


문제는 책 자체가 워낙 아리까리한 내용이다 보니, 독자는 오역조차 모르고 넘어가 버린다는 거다. 피천득의 저서에서 '에어리엘'이란 단어를 샘터 편집부가 '에머리엘'로 오입력하자, 저자의 제자인 한 교수가 이걸 또 의미심장한 뜻으로 굳이 해석하는 글을 썼던 것처럼, 저자의 권위가 높다 보면 독자 역시 무비판적으로 동조하여 오역과 오타조차 맞다고 여긴다.


버틀러의 이번 신간에서는 오역을 저질러놓고 무슨 뜻인지 다시 검토하긴커녕, 문맥과 동떨어진 역주를 길게 달아서 '꿈보다 해몽'을 도모한 번역자의 태도를 비판할 만하다. 이해가 안 되면 혹시 내가 잘못 옮겼는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살펴봐야지, 말이 안 되게 번역해놓고 그걸 말 되게 한답시고 역시나 말이 안 되는 역주를 달아놓는 게 말이 되는가!


나귀님이 주디스 버틀러 같은 현대 철학자들을 불신하는 까닭은 그 논의 자체가 이렇게 번역조차 어려울 만큼 각자의 모국어에 '속박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그들의 모국어인 영어나 프랑스어와 호환되지 않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리 정교한 논의라도 번역이라는 검증을 견뎌내지 못할 만큼 허약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래도 다들 떠받드는 것을 보면 뭔가 있긴 있나보다 싶어서 알아보려 해도 막상 나오는 책마다 오역본이니, 설령 '모든 것의 이론'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자기는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설명도 역시 모호할 따름이니, 결국 다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야바위판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간행된 버틀러의 번역서는 하나같이 오역 논란이 따라붙었으니, 이쯤 되면 이 저자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오역을 "떠맡는"(assumed) 운명이라도 된 듯하다. 그렇다면 오역을 지적하는 비판자들은 저 난해한 문장을 제대로 옮길 수 있는가? 아무래도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이번에 나온 책 역시 북펀드 단계부터 '새롭고 정확한 번역'을 장담했었으니까.


원문 자체도 이해하기 힘든데, 번역자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을 독자더러 이해하라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과연 번역자는 "성모 승천"을 "처녀성을 떠맡은 자"로 옮기면서 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참고로 구판에서는 "하늘나라에 받아들여진 동정녀 마리아"라고 옮겼다. 구판도 오역이 많다고 들었지만, 이쯤 되면 신판 역시 믿을 수 없는 수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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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6-02-15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왜 삭제당해야 합니까?

redsboy 2026-09-07 00:29   좋아요 0 | URL
삭제당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혹시 작성자가 삭제할 수도 있어서 저장해놓겠다는 말입니다. 삭제되길 바랬다면 왜 굳이 글을 공개적으로 올려놓았겠으며 Comandante님은 어떻게 댓글을 달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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