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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매달린 자들의 런던 - 18세기 영국 노동계급 공통장의 죽음과 삶 아우또노미아총서 90
피터 라인보우 지음, 권범철 옮김 / 갈무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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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판 서문


"배경은 런던, 시대는 18세기, 주제는 사형, 논제는 계급투쟁이다. 나는 이 책의 논제와 주제를, 산 노동에 대한 조직적인 살인인 사형과 산 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억압인 자본의 처벌 사이의 교차 대구법으로 요약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체계는 산 노동을 생산수단으로부터 그리고 어머니 지구에서 추출한 물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에 의존한다. ... 자본주의의 오백 년 역사는 늘 이주, 재정착, 이동, '중간 항로들'로 특징지어졌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속하며, 이는 노동력이 가치를 영으로, 즉 노예 상태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국가나 시장은 단독으로 또는 함께, 산 노동을 대상으로 조직된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그 과정을 강제했는데, 이 폭력은 [교수형당하는 자들이] 참회하는 과정으로 은폐되고 형벌로 부과되며 본보기적 죽음으로 진행되었다."(8쪽)


"나는 이 책을 자본주의의 네 단계--금융, 상업, 매뉴팩처, 기계--로 나누었고, 이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빼앗긴 자, 노예라는 계급으로 이루어진 몇 가지 다양한 행성적 계급 구성을 다루었다. 전쟁, 교수대, 전염병, 기아는 관리 전략이 될 수 있었다."(9쪽)


"이 교수형 체제와 '공통장'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것은 재산의 의미와 관련이 있었다. ... 지하 공통장(undercommons) ... 아래로부터의 힘 ... 맑스는 자신이 정치경제학에 독창적으로 기여한 세 가지가 구체 노동과 추상 노동의 구별, 임금의 비합리성, 그리고 이윤, 이자, 지대의 잉여가치로의 통일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중 처음 두 가지[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의 구별, 임금의 비합리성]가 런던에서 교수형당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10쪽)


* 서론


"자본이 이전 시기에 일어난 식민지 해방, 전례 없는 임금 요구, 문화 혁명에 대응하면서 수명을 연장했던 바로 그 시기, 즉 1970년대 중반 이후 사형의 강화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15)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교수형]이 연극적인 진실이었다는 점이다. 연극은 갈등에 의존하며, 이 점에서 오성을 제외한 모든 감각에 호소하는 스펙터클과 대비되어야 한다. ... 교수형이 주는 극도의 고통은 다양한 감정들--분노, 환희, 연민, 두려움, 공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각각 고유한 행동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 만일 교수형을 연극으로 여긴다면 그 연극이 재현한 갈등은 약자와 빈자 대 권력자와 유산자의 갈등이었다."(20-21) 


"이 목[매달기]의 역사는 빈자로부터의 생산수단의 수탈(이로 인한 "도시화")뿐 아니라 빈자에 의한 생활수단의 전유(이로 인한 "도시 범죄")를 포함하는 18세기 계급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핵심논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적 관계와 연관된 착취 형태들이 범죄 활동 형태들을 유발하거나 변형했다는 것, 둘째, 그 역도 사실이라는 것, 즉 범죄 형태들이 자본주의에 중대한 변화를 유발했다. ... 마지막으로 교수형당한 사람들의 투쟁은 그들 계급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통치자들이 나름의 선제적 조치를 행사하도록 자극했다."(22)


"법이 단지 계급이익을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은 보편성을 가장하는 법을 위선적이라고 경멸할 것이다. 노동계급은 율법폐기론적 관점--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냉소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유물론을 채택한다. 어느 경우든 노동계급은 악질 범죄를 저지르고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품위는 걸리버에서 배설을 하던 원숭이 야후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다른 한편 법이 실제로 사회 지배자들의 부패를 초월하여 그것을 무너뜨리는 정의의 이상을 표현한다면, 노동계급은 예언자적 분노로 세계를 뒤엎고, 자신의 사회적 범죄를 합리적이고 자비로운 사회...를 향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23-24)


"취하기(taking)의 역사와 제작(making)의 역사는 함께 어우러져, 사회적 생산관계들의 모순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거침없이 몰고 간다. 이 모순에 대한 해답은 세기말의 두 경향에 의해 제시된다. 첫째는 지배의 무기고에서 공개 교수형의 중심적 위치를 제거하는 경향이었다. 이 경향은 1783년 타이번으로 향하는 행렬의 폐지와 함께 시작된다. 둘째는 노동계급의 가장 끈질긴 요구 중 하나를 수용함과 동시에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가변적이고 역동적인 수단으로서 임금 관계를 도입하는 경향이었다. 이 경향은 1790년대의 탄압 시기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26-27)



1부 만마전과 금융 자본주의, 1690-1720


1장 "온 나라의 공통 화제" : 잭 셰퍼드와 탈출의 기예


"첫 번째 장은 1640년 혁명과 연속성을 가진 해방의 중요한 의미 하나를 제시한다. 즉 런던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가두어 훈육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된 제도들로부터 탈출하려는 성향이 점점 늘어났으며 그에 필요한 기량과 성공하는 경우 역시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 경향을 '탈감금'이라고 명명했는데, ... 나는 그 활동을 미셸 푸코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최근의 역사학적 동향에 대항하는 경향으로 이해한다. 푸코는 '대감금'에서 감금을 강조하며 정부와 사회의 지배자들을 전능한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30)


"아이들 중 몇몇은 여왕의 이름은 물론 웰링턴, 넬슨, 보나파르트라는 이름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성 바울이나 모세, 솔로몬 등의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아이들이 노상강도 딕 터핀, 특히 강도이자 탈옥범인 잭 셰퍼드의 생애와 활동, 성격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재인용 "가택 침입 강도이자 탈옥수인 잭 셰퍼드는 한때 18세기 잉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의 명성은 대양을 건너 수 세기에 걸쳐 퍼졌다."(33)


"뉴게이트의 교회사 웨그스태프 씨는 그에게 탈출할 궁리를 하기보다 내세에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셰퍼드는 프롤레타리아 유물론 철학으로 답했다. '손톱 줄 하나가 세계의 모든 성경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 ... 잭은 자신의 잦은 도둑질이 '어떤 면에서는 나쁘지만 다른 면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자신은 일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 특히 자신이 부순 것을 늘 수리하는 자신의 옛 직종[목수]에 종사하는 이들은 일이 없어 놀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곤 했다."(64)


"해부학자들은 그의 시신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는 품위 있게 매장되었다. 그를 영원으로 이끈 교수형을 탈출로 보지 않는다면, 이 매장이 그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탈출이 될 것이다. 75년전 로버트 로키어의 장례식--이날 수천 명의 남성과 여성이 수평파의 녹색을 입고 아일랜드에서의 복무에 반대하는 이 비숍게이트 반란 지도자 처형에 참석했다-- 이후로 그렇게 많은 런던 인구가 모인 적은 없었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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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글 못 쓰는 지식인" 가운데 하나로도 선정되었다던 주디스 버틀러의 저서가 새로 번역되었다기에 궁금해서 미리보기를 클릭해 보았다. 나귀님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의 연속이지만, 그나마 눈에 익은 고유명사가 등장한 몇 구절을 구글북스 원문과 대조해 보았더니 역시나 오역이었다. 공짜 알바를 할 의향은 없으니 하나만 지적하자.

 

"문제가 되는 것은 '떠맡음'의 의미이며, 이때 '떠맡겨진다는 것'은 '처녀성을 떠맡은 자'라는 말에서와 같이 더 고양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29쪽) 역주에는 "'처녀성을 떠맡은 자', 즉 '성모[동정녀] 마리아'는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을 번역한 것이며, 이는 뒤이은 말인 "더 고양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진다"와 의미상 연결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오역이다.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은 "성모 승천"이라는 뜻이니까. 즉 성모 마리아가 죽지 않고 하늘로 들려올라갔다는 가톨릭 전승을 말하며, 신성을 지닌 예수의 '자력 승천'(ascension)과 달리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인간이 하느님에게 "들려올라갔다"고 하는 '타력 승천'(assumption)이라 몽소승천(蒙召昇天), 피승천(被昇天)이라고도 한다.


버틀러가 페미니스트 이론가이고, 책에서 젠더/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다는 사실 때문에 "virgin = 처녀(성)"라고 번역자의 생각 자체가 굳어버린 탓일까? 하지만 원래의 문맥에서 버틀러의 발언 맥락은 "처녀성을 떠맡은 자"가 아니라 "성모 승천"일 뿐이다. 즉 그 대목에서 연거푸 나오는 영어 단어 assumption의 여러 뜻 중에 "승천"도 있다고 덧붙인 것뿐이다.


즉 제대로 옮기면 이렇다: "문제가 되는 것은 '떠맡음'(assumption)의 의미인데, 이때 '떠맡겨진다'(assumed)에는 "성모 승천"(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의 사례에서처럼 더 고양된 영역으로 들려올라간다는 뜻도 있다." 결국 번역자/편집자/감수자 중 누구 하나도 가톨릭을 몰라서 벌어진 실수이고, 역주 7도 그런 무지를 변명하느라고 설명이 길어졌을 뿐이다.


이건 "식자우환"의 사례일 수도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엘리아데 대담집을 번역하면서 "바흐"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더 유명한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대신 덜 유명한 종교학자 "요아힘 바흐"라고 오역했고, 또 교수 둘이 공역한 아리엘 도르프만 회고록에서 "라이너스의 담요"가 나오자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의 담요"라고 오역했듯 말이다.


또는 앤 카슨의 책에서 토라를 "narrow sex"에 비유한 표현이 나오자 "좁은 음문" 대신 "한정된 교미"라는 번역어가 나온 것과도 유사하다고 해야 하겠다. 쉽게 말해 '에이 설마 그거겠어?' 하는 생각에 뭔가 그럴싸한 해석을 복잡하게 고안해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설마 그거'가 정답이었던 거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쉬운 답을 놓친 격이라 할까.


문제는 책 자체가 워낙 아리까리한 내용이다 보니, 독자는 오역조차 모르고 넘어가 버린다는 거다. 피천득의 저서에서 '에어리엘'이란 단어를 샘터 편집부가 '에머리엘'로 오입력하자, 저자의 제자인 한 교수가 이걸 또 의미심장한 뜻으로 굳이 해석하는 글을 썼던 것처럼, 저자의 권위가 높다 보면 독자 역시 무비판적으로 동조하여 오역과 오타조차 맞다고 여긴다.


버틀러의 이번 신간에서는 오역을 저질러놓고 무슨 뜻인지 다시 검토하긴커녕, 문맥과 동떨어진 역주를 길게 달아서 '꿈보다 해몽'을 도모한 번역자의 태도를 비판할 만하다. 이해가 안 되면 혹시 내가 잘못 옮겼는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살펴봐야지, 말이 안 되게 번역해놓고 그걸 말 되게 한답시고 역시나 말이 안 되는 역주를 달아놓는 게 말이 되는가!


나귀님이 주디스 버틀러 같은 현대 철학자들을 불신하는 까닭은 그 논의 자체가 이렇게 번역조차 어려울 만큼 각자의 모국어에 '속박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그들의 모국어인 영어나 프랑스어와 호환되지 않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리 정교한 논의라도 번역이라는 검증을 견뎌내지 못할 만큼 허약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래도 다들 떠받드는 것을 보면 뭔가 있긴 있나보다 싶어서 알아보려 해도 막상 나오는 책마다 오역본이니, 설령 '모든 것의 이론'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자기는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설명도 역시 모호할 따름이니, 결국 다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야바위판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간행된 버틀러의 번역서는 하나같이 오역 논란이 따라붙었으니, 이쯤 되면 이 저자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오역을 "떠맡는"(assumed) 운명이라도 된 듯하다. 그렇다면 오역을 지적하는 비판자들은 저 난해한 문장을 제대로 옮길 수 있는가? 아무래도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이번에 나온 책 역시 북펀드 단계부터 '새롭고 정확한 번역'을 장담했었으니까.


원문 자체도 이해하기 힘든데, 번역자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을 독자더러 이해하라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과연 번역자는 "성모 승천"을 "처녀성을 떠맡은 자"로 옮기면서 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참고로 구판에서는 "하늘나라에 받아들여진 동정녀 마리아"라고 옮겼다. 구판도 오역이 많다고 들었지만, 이쯤 되면 신판 역시 믿을 수 없는 수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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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6-02-15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왜 삭제당해야 합니까?

redsboy 2026-09-07 00:29   좋아요 0 | URL
삭제당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혹시 작성자가 삭제할 수도 있어서 저장해놓겠다는 말입니다. 삭제되길 바랬다면 왜 굳이 글을 공개적으로 올려놓았겠으며 Comandante님은 어떻게 댓글을 달 수 있었겠습니까?
 
중요한 몸 - 성의 담론적 한계에 관하여
주디스 버틀러 지음, 이승준 옮김, 김은주 감수, 김은주 해제 / 알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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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이승준입니다. 나귀님의 말에 다음 3가지 답변을 드립니다.


나귀 : <(1) 이건 오역이다.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은 "성모 승천"이라는 뜻이니까. ... (2) 제대로 옮기면 이렇다: "문제가 되는 것은 '떠맡음'(assumption)의 의미인데, 이때 '떠맡겨진다'(assumed)에는 "성모 승천"(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의 사례에서처럼 더 고양된 영역으로 들려올라간다는 뜻도 있다. (3) 번역자/편집자/감수자 중 누구 하나도 가톨릭을 몰라서 벌어진 실수이고, 역주 7도 그런 무지를 변명하느라고 설명이 길어졌을 뿐이다.> 


(1) "The Assumption of the Virgin"가 '성모승천'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사전에 있는 말을 옮긴 것이지, 즉 그러한 한국어로 옮기는 해석의 습관이 있는 것이지, 그것이 Assumption을 곧 '승천'으로 해석해야 되는 것이 필연적이고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은 성서에는 없는 말이자 권위있는 근거를 갖추지 못한 말, 즉 교황청이 공식적인 교의로 승인하기 전인 20세기(1950년) 이전에는 어떠한 신학자나 철학자의 텍스트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던 말입니다. 그런데 왜 영어에서는 그 표현이 등장하고 우리의 영한사전들은 그것을 '성모승천'으로 번역하게 된 것일까? 옮긴이 주석에서 밝혔듯이, '승천'은 루가복음 24장 51절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했다'(he was taken up into heaven)에 등장하는 말이며, 라틴어 assūmptiō가 통상 영어 take up으로 번역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assumption이 '승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될 수는 있다고 옮긴이주에 밝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 즉 승천은 아무 대상에나 붙는 말일 수 없으며, 성서(신약성서) 상에는 신과 동일시되는 존재인 '그리스도'에게만 배타적으로 허용되는 말입니다. 즉 신학적 해석이 필요한 말이며, 그것은 assūmptiō(assumption)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 때문인데, 떠맡는다, 받아들이다, 수용하다와 같은 의미를 신들의 세계, 신의 왕국인 천국(heaven)에게 부과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아주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면 절대 assūmptiō을 하지 않는 세계, 아니 그런 동사를 감히 붙일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신은 복종한다,' '천국이 습격당한다'라는 말이 신학의 논리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성모 마리아께서도 승천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존재니 승천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성서를 인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시대, 즉 16세기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유비를 성령들, 천사들(혹은 성모 마리아)에게 허용하는 맥락에서 부과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책에서 Assumption을 '승천'과 같은 신학적 의미나, '하늘로 오른다'라는 주체적 작용으로 번역하기보다 '떠맡음'으로 일관되게 번역하는 것이 글의 맥락상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성모승천'으로 번역되는 맥락이 있음은 본문이 아니라 옮긴이주에서 설명되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혹시 좀 더 친절하고 쉬운 이해를 위해, 재판을 출판할 때는 말 그대로 <동정녀를 떠맡음(혹은 동정녀의 떠맡음)>으로 중립화시키고, 옮긴이주에는 통상 <'성모승천'으로 번역되는 'Assumption of the Virgin'을 버틀러가 'assumption'에 부과하는 특별한 의미를 고려해 의도적으로 '동정녀를 떠맡음'으로 옮겼다.">라는 말을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2) 나귀님은 "제대로 옮기면 이렇다. "문제가 되는 것은 '떠맡음'의 의미인데, 이때 '떠맡겨진다'에는 "성모 승천"의 사례에서처럼 더 고양된 영역으로 들려올라간다는 뜻도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제대로 옮기지 못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을 뜻하는 '승천'이 의미상 '떠맡음', '떠맡겨진다'는 말과 잘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귀님처럼 "더 고양된 영역으로 들려올라간다는 뜻도 있다"로 옮기는 것은 'to be taken up into a more elevated sphere'(저는 "더 고양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로 옮겼습니다)에는 없는 영어를 자기의 머리 속으로 말을 만들어서 붙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그건 나귀님의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죽지 않고 하늘로 들려올라갔다는 가톨릭 전승을 말하며, 신성을 지닌 예수의 '자력 승천'(ascension)과 달리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인간이 하느님에게 "들려올라갔다"고 하는 '타력 승천'(assumption)이라 몽소승천(蒙召昇天), 피승천(被昇天)이라고도 한다." 즉 나귀님은 버틀러가 쓴 글의 맥락에 맞게 번역을 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상식에 따라 assumption을 '타력승천'이라는 말에 부합하는 형태로 해석(성서에는 근거가 없으며 오로지 인간주의적 이미지에 따라서 그려진 특정한 해석)해야 했기에 '타력승천'과 연결되는 '들려올라간다는 뜻도 있다'는 말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죠. 


(3) "번역자/편집자/감수자 중 누구 하나도 가톨릭을 몰라서 벌어진 실수이고, 역주 7도 그런 무지를 변명하느라고 설명이 길어졌을 뿐이다." '가톨릭을 몰라서 벌어진 실수'라고 단정짓는 말을 쓰는 나귀님은 인간(번역자/편집자/감수자)의 지성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초월자'의 수준으로 자신을 격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옮긴이주에는 assumption이 이미 '승천'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성서를 인용해 언급하고 있고, 또 그런 의미로 읽을 여지가 있다는 내용을 적어놓았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신학에 대한 책이 아니라 버틀러가 쓴 '젠더와 퀴어이론'에 관한 책이기에, 그러한 맥락을 연상시킬 수 있는 더 좋은 번역어인 '떠맡음'을 택한 것입니다. 나귀님은 그런 번역어(승천)를 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것이 어떤 번역의 진위를 판단할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 왜 번역자는 '승천'이라는 쉬운 번역어를 택하지 않고 '떠맡음'이라는 어려운 말을 택해야 했을까? 그것은 주디스 버틀러의 말을 사용하는 맥락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 버틀러는 Assumption을 다음의 맥락에서 사용합니다. 즉 우리는 젠더(gender)를 떠맡는다는 것(assumption)[젠더를 '(타력)승천'한다고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젠더는 한편으로는 누군가 의식을 가진 존재가 옷장에서 옷을 꺼내입을 때처럼 주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규범체제 속에서 우리에게 떠맡아지도록 강제되는 것이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떠맡겨지는 것을 우리는 그 형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어떤 행위의 반복을 행해야 하는데, 그 행위의 반복은 늘 동일한 형태로 반복될 수 없다는 것, 우리에게 떠맡겨진 것을 우리는 최대한 그에 가까이 근사치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려 하지만 그러한 이상은 완벽하게 실현될 수는 없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했을 때, assumption을 '승천'으로 옮기는 관행을 옮긴이주에서만 설명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본문에서는 '떠맡음'을 살리는 번역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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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 -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 아우또노미아총서 15
마커스 레디커.피터 라인보우 지음, 손지태.정남영 옮김 / 갈무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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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롤레타리아는 괴물이 아니었으며 통일된 문화적 계급도 아니었고 인종이 아니었다. 이 계급은 익명, 무명이었다. .. 이 프롤레타리아트는 땅이 없고 수탈을 당한 계급이었다. .. 이들은 이동적이었으며, 대서양을 가로질러 존재했다. .. 이들은 여성과 남성을 포함했으며 모든 연령대를 포함했다. .. 이들은 다수였고 여럿이었으며 그 수가 점점 증가하였다. .. 이들은 협동적이었으며 노동을 담당하였다. 일자의 숙련노동이 아니라 다수의 집단적 힘이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산출하였다. 이들은 잡색이었는데, 누더기를 입고 있었기도 하고 외모가 각양각색이기도 하였다. .. 이들은 광대들 혹은 촌뜨기들을 포함하였다. 이들은 계보학적 통일성이 없었다. 이들은 서민적이었다. 이들은 속어, 변말, 은어, 혼합어에서 온 독특한 발음, 어휘, 문법으로 자신의 말을 하였다. 일터, 거리, 감옥, 무리, 부두에서 온 말이었다. 이들은 그 기원, 움직임, 의식에 있어서 행성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프롤레타리아는 자기활동적이며 창조적이었다. 이들은 살아있었고 현재도 살아있다. 이들은 늘 움직인다.-514-516쪽

전 인류의 세 친구 : 올로다 에퀴아노, 리디아 하디, 토머스 하디는 1790년 8월에서부터 1792년 2월까지 런던, 커벤트 가든..에서 함께 살았다. .. 이 세 친구들은 흙냄새나는 공유지로부터의 분리의 경험을 공유하였으며 그래서 시장에서 상품을 사거나 아니면 찌꺼기음식을 찾아야 했다. 그들 중 누구도 돈을 많이 벌지 못했으며, 물가는 상승하고 있었다. 그들은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리를 이동하기도 했지만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에드먼드 버크가 그 얼마전에 프랑스혁명에 대한 그의 비방에서 민중에서 붙였던 이름인 "돼지 같은 다중"에 속했다. 그들은 상류층의 눈에는 돼지들이었으며 게다가 잡색이었다. 올로다는 아프리카인이고 리디아는 영국인이며 토머스는 스코틀랜드인이었기 때문이다. .. 올로다는 농장노예였기도 하고 선원으로도 일했다. 리디아의 사회적 역할은 출산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프롤레타리아였고 어머니였으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토머스는 장인, 제화공이었다. 노예/선원, 프롤레타리아와 장인은-그들에게 경제적 유형들에 따라 거칠게 정체성을 부여하자면-친구들이었으며 1792년에 같이 자유를 찾으려 하였다.-518-519쪽

셋 모두는 공유지를 잃고 나서 그들의 노동의 가치가 감소되는 것을 보았다. 올로다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를 수송하는 노예수송선을 타고가면서 상인자본주의가 가하는 끔찍한 테러를 경험했다. 리디아는 런던에서 6번 임신을 하였는데, 런던에서는 모든 아이들의 74퍼센트가 5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토머스는 캐런 무기제작소에서 벽돌공으로 일했다. 캐런함포는 불꽃이 튀고 석탄이 빨갛게타고 쇠가 녹는 화산같은 조건에서 생산되었다. ... 이렇게 수탈과 착취라는 공통의 경험에 기반을 둔 세 친구들은 방과 생각을 공유했다. 올로다는 영국 혁명의 반율법주의적 노예제폐지론으로 거슬러 올라가 밀턴의 [실낙원]을 통해 아메리카 노예제에 대한 그 자신의 경험을 표현했다. .. 리디아 하디는 다른 여성들처럼 노예제폐지운동에서 열심이었는데, 의회의 의원들에게 로비를 한다거나 노예제폐지론자들의 전국적 위원회의 회의들에 참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구의 공동우물이나 부엌 아궁이 앞에서 활약을 했다. .. 토머스 하디는 전개되고 있는 아메리카 혁명이 모든 정치적 논의의 주제인 때에 런던에 도착했다. -519-523쪽

잡색부대의 조직적`지적혁신에 영향을 받은 토머스는 '그의 마음은 항상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이글거렸으며 그의 동포들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류 전체의 미래의 행복'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다. .. 1792년 1월 <런던교신협회> 첫 모임 이후에 하디와 다른 창립자들은 스트랜드에 있는 벨이라는 선술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으며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어떤 동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듯 토론들이 처음 시작되던 때부터 <런던교신협회>는 공유지와 노예제를, 전자의 이상과 후자의 악행을 숙고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 4월에 하디는 이렇게 썼다. "한데 모이고 서로 소통하여 우리의 생각들과 결의들이 한 점에 모이도록, 즉 인간의 권리가 특히 이 나라에서 다시 수립되도록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이 작은 섬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흑과 백, 높고 낮음, 빈과 부를 막론하고 전 인류를 향해 확대된다."-523-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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