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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몸 - 성의 담론적 한계에 관하여
주디스 버틀러 지음, 이승준 옮김, 김은주 감수, 김은주 해제 / 알렙 / 2026년 2월
평점 :
번역자 이승준입니다. 나귀님의 지적은 Assumption에 대한 좋은 토론을 가져오는 말로 해석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생각한 말(혹은 자신이 사전에서 본 말)이 반드시 그 말의 '정확한' 해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역자 후기에 자세한 설명을 붙여으니 참고하면 될 듯 하고, 여기에는 assumption과 관련된 의미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통상 성모승천으로 번역되는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은 성서에는 없는 말이자 권위있는 근거를 갖추지 못한 말, 즉 교황청이 공식적인 교의로 승인하기 전인 20세기(1950년) 이전에는 어떠한 신학자나 철학자의 텍스트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던 말입니다. 그런데 왜 영어에서는 그 표현이 등장하고 우리의 영한사전들은 그것을 '성모승천'으로 번역하게 된 것일까?
옮긴이 주석에서 밝혔듯이, '승천'이라는 말은 루가복음 24장 51절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했다'(he was taken up into heaven)에 등장하는 말이며, 라틴어 assūmptiō가 통상 영어 take up으로 번역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assumption이 '승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 즉 승천은 아무에게나 붙는 말일 수 없으며, 성서상에는 오로지 신과 동일시되는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배타적으로 허용되는 말입니다. 그것은 assūmptiō(assumption)이라는 말이 갖는 특수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데, 받아들인다, 떠맡는다, 수용하다와 같은 의미를 신들의 세계, 신의 왕국인 천국(heaven)에게 부과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천국은 assūmptiō을 하지 않는 세계, 아니 그런 동사를 감히 붙일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신은 복종한다, 천국은 혼란에 휩싸인다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성모 마리아께서도 승천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존재니 승천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성서를 인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시대, 즉 16세기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유비를 성령들, 천사들(혹은 성모 마리아)에게 허용하는 맥락에서 부과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점에서 assumption은 바로 그 처녀(the virgin)인 마리아가 하늘(천국, 신)의 뜻에 따라 부과한 어떤 존재를 잉태하는 일을 떠맡는 것으로, 즉 "처녀성의 떠맡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한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천국이 그 처녀(마리아)를 떠맡을 수는 없으며, 떠맡음의 의미가 발현되려면 오로지 그 처녀(마리아)의 떠맡음만 있을 수 있고,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처녀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며 신의 자녀를 탄생시키는 과업을 떠맡는 상황을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해석은 주디스 버틀러가 자신의 글에서 사용한 말 assumption이 중요하게 사용할 때 우리가 이해해야 할 말입니다. 즉 우리는 gender를 assumption한다는 것, 자세히 말하자면 젠더는 한편으로는 누군가 의식을 가진 존재가 옷장에서 옷을 꺼내입을 때처럼 주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규범체제 속에서 우리에게 떠맡아지도록 강제되는 것이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떠맡겨지는 것을 우리는 그 형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어떤 행위의 반복을 행해야 하는데, 그 행위의 반복은 늘 동일한 형태로 반복될 수 없다는 것, 우리에게 떠맡겨진 것을 우리는 최대한 그에 가까이 근사치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려 하지만 그러한 이상은 완벽하게 실현될 수는 없다는 것을 함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