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하의 만화토피아 - 마니아가 추천하는 일본 망가 베스트 50
오은하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편하게 느껴질 책이다. 아무리 만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들어 보았을 법한 만화가 상당수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이 때문에 이 책의 존재 의의가 어설퍼지는 효과 또한 생긴다.

우선 만화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그리고 만화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개론서 내지는 입문서라고 해도, 특별히 체계적으로 (공을 들여) 정리해 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주위에 있는 만화광에게 '뭐 읽으면 좋을까?'라고 묻기만 해도 술술술 나올 대답 이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만화의 평을 한 권에 담으려다 보니 하나 하나의 평이 너무 깊지 않다는 점도 걸린다. 서론을 풀고 이제 본론이 나오나 싶으면 글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개된 만화를 다시 생각하면서, '맞아, 정말 이렇지'하고 새록새록 느끼게 되는 잔재미를 주는 점이 장점이다. 만화맹에게는 괜찮은 입문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효풍 - 염상섭 선집 2
염상섭 지음 / 실천문학사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읽기 전의 예상과는 달리,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지루함과 기대감 모두에서 비껴나 있다. 연애담이 대부분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내용 또한 단순하여 매우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역사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내면적인 통찰은 그다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눈에 우선 들어오는 것은 비현실적인 연애 묘사였다. 상당수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因)이 애정(이성애)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의 동인은 단지 박병직과 김혜란이 선남선녀(善男善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통속적인 발상, 하이틴 로맨스 소설 같은 구도가 아닌가.

또한 거듭되는 김혜란의 외모 묘사는 젊은 여성의 육체를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훑어보는 것으로 또한 상당히 상투적이다. 미국인 베커의 눈에 비친 혜란의 육체를 동양적인 정취라고 표현한 점에서,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의 이미지를 또다시 받아들이는 염상섭의 역(逆)오리엔탈리즘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영어선생이기도 했던 장만춘은 학교를 그만두고 해방바람에 여기 저기 쫓아다니다가 결국 통역 일을 하면서 고물상 거간꾼이나 형사끄나풀, 객원, 잡다한 일에 대한 고문 같은 일을 하게 된 인물이다. 이진석은 미국에서 살다가 조선으로 들어와서 미국과의 교역을 통해 한몫 잡겠다는 생각을 하는 남한 천민 자본주의의 대부같은 인물이다. 가네코는 본래 일본인이나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일제 시대에는 내지인으로 편히 살고 해방 후에는 조선인으로 행세하며 적산을 받아서 또한 편하게 사는 인물이다.

베커는 교양있고 조선과 김혜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 미국인으로 나오는데, 작가는 그에 대해서 너그러운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집되는 조선의 문화재는, 실은 그 문화재가 전통적으로 생산되고 보존되던 지역에서 폭력적으로 약탈당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베커가 적절한 가격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를 구입한다 해도 말이다.
박병직의 아버지 박종렬은 양조회사 사장으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력도 손에 넣으려는 인물이다. 수하에 김혜란의 오빠인 김태환을 수뇌로 하는 우익 청년단을 두고 있다. 한 집안 안에서 이처럼 분열되는 것은 이후의 피비린내 나는 한국전쟁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박병직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주요 인물인 박병직, 김혜란, 최화순 중에서 자의식을 가지고 세계와의 대립을 인식하는 대자(對自)는 박병직 뿐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내 머리 속에는 '무정', '광장', '에코토피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소설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모두 선형-형식-영채, 은혜-명준-은애, 마리사-윌리엄-프랜신 등으로 두 세계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남성 지식인의 움직임과 그 두 세계를 각각 상징하는 여성들과의 연애가 등치되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한편, 박병직과 김혜란은 며칠 형무소에서 고생하다 나온 것을 엄청난 시련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한데, 열흘 갇혀 있다가 풀려난 이후에 빨갱이라고 찍혀서 먹고 살 걱정이 막막해진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파탄난 것도 아니며, 월북한 동료들과 떨어졌다는 자괴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아니다. 너무나 평온하고 순조롭게 방황하던 지식인은 안전한 구조 속으로 귀환한다. 그런 그들이 공부를 계속한다고 해서 계급문제를 넘어선,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소설의 구성상, '효풍'은 '완결'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우유부단하던 박병직이 선뜻 결혼을 결심하고 당장이라도 유학을 갈 것 같던 김혜란은 청혼에 응한다. 또한 박병직에게 누가 왜 테러를 가했는지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 어영부영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왜 제목이 '효풍'인지도 전혀 알 수가 없는데, 여기에도 연재가 서둘러 끝난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자의 이름으로 죽은 여인들 동양문화산책 6
전여강 지음, 이재정 옮김 / 예문서원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공자와 그의 가르침을 따른 유교.. 이것이 오랜 세월 동안 여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죽음까지도 저당잡았다는 사실에는, 유교를 비난하는 쪽이나 옹호하는 쪽 모두 일정 부분 동의하는 듯 하다. 하지만, 유교의 여성억압적 측면을 일단 인정한다면, 논쟁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림들에게 '공자도 그런 소리 안 했어. 너희가 왜곡되게 이해하고 있는 거야'라고 주장한다면, 저들의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싸우게 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이름으로 죽은 여인들'도 사실은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죽은 여인들이 아니라, 유교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왜곡되게 해석하고 강요한 지배층과 남성지식인들 때문에 죽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성을 천시하고 과부가 된 후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 조건과, 자살한 후에 유령이 되어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게 복수할 수 있으리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한 민간 신앙의 유행도 그들의 죽음에 한몫 했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본주의적인 유교'를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무기로 삼은 여성(집단)이 역사적으로 발견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남성우월주의에서 유교 구출해내기'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유교가 그러한 역할에 일조했다면, 그것이 유교 그 자체인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현실 사회주의와 진정한 맑스주의 구분하기, 나치즘 등의 '나쁜 민족주의'와 '좋은 민족주의' 구분하기 등과 같이 그 실효성이 믿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보기 드물게 실제적 자료에 입각해서 과부들의 자살과 기타 사건들을 분석해 놓은 책이다.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는가, 역사의 진보라고 했을 때 그것이 누구의 진보인가(명-청대에 타살적인 여성 자살이 급증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보편적 인간의 삶이 나아진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순결이나 정숙 같은 개념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 등의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명료하고 알기 쉬운 문체로 되어 있으므로 전혀 기초 지식이 없던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유교가 처음의 혁신적인 성격을 잃고 어떻게 지배계급의 논리로 전용되었는지를 알기 위한 구체적인 역사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는 아무나 하나. 작가는 반복해서,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처음부터 일기 쓰듯 펜을 쥔 손이 흘러가게 내버려두었단 말인가?

아, 처음에 잠깐 그런 듯 싶었다. 하지만 이내 소설 전체에 새로운 의미를 계속 덧붙이면서 일관성을 형성하는 촘촘한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물에 빠뜨린 쇠스랑, 외사촌이 찍고 싶어했던 숲의 백로들. 제주의 작은 서점에서 자신이 쓴 책을 발견했을 때와 그 책을 식당 아주머니에게 선물할 때. 끊임없이 상기하는 옛 친구의 전화. 과거의 선생님과 현재
의 선생님. 상경하신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먹이려고 산 채로 들고 온 닭이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과 따뜻함을 선사했을 때와 그 잠깐의 행복함이 참혹한 삶의 배신으로 변해버렸을 때.

문신이 있는 가게 아저씨가 불 붙은 연탄을 '나'와 '외사촌'에게 가장 먼저 빼내 주던 이야기와,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뒤집힌 참혹한 이야기. '외딴 방'에서 보이던 풍경과 그 풍경이 건물 신축 공사로 점차 막혀가는 상황.... 작가는 모든 소재와 배경들을 무심히 놓아 둔 듯, 그냥 생각나는 대로 서술한 듯 쓰고 있지만, 어느 하나 동떨어져서 맥락 없이 쓰인 것이 없었다. 아주 치밀하게 모든 부분이 연결되어 있고, 중첩되면서 계속 새롭게 고통스러운 의문을 제시한다.

제 몸의 모든 부분을 얇게 저며내어 낱낱이 종이 위에 펼쳐 놓은 듯. 단순히 기억을 대면
하고 끄집어내어 두서없이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나 하나 다시 들여다보고 제 자리에 놓아 씨실과 날실로 낱낱이 엮는 일이란.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혼 하나로 세계 전체와 대결하고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다른 이들에게 펼쳐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살을 새끼들에게 먹이는 어미새의 모습과 닮지 않았는지. '그래서 나 또한 나의 말을 통하여 그들의 의젓한 자리를 세상에 새로이 낳아주어야 함을'.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외딴 방'은 이렇게 작가의 핏줄을 들어내어 촘촘히 짠 그물처럼 인물과 사건들을 배치해
놓아, 읽는 이에게 끝끝내 자신의 내면과 기억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몇 번이고 눈물을 쏟게 만들고 가슴이 저린 상태로 몰아간다. 과거가 될 수 없는 과거,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는 과거, 말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노력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나오는 것이 말줄임표라는 생각이 드는데, 읽고 있던 나도 쓰여질 수 없으나 생략할 수도 없는 말이 말줄임표 사이에 남아 있는 것 같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 특이하게도 과거는 현재형으로, 현재는 과거형으로 서술하여 과거는 박제된 현재성으로 남아 있고 현재는 오히려 담담한 상태로 과거를 들여다보는 상황임을 말해 준다. 이 박제된 과거를 이제 해방된 과거로 만들기 위한 노력, 자기와의 싸움의 결과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단지 개인사로 그치지 않는 것은 시대의 슬픔과 고통과 억압과 착취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것도 아주 호소력 있게 (작가 본인은 의식있는 노동 소설을 쓰고 싶지 않다고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하고, 단지 재생할 뿐 아니라 쓰는 과정과 읽는 과정에서 '변화'까지 이끌어냈다고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회창 대통령은 없다 - 월간말 인물비평 시리즈 1
이태준 지음 / 월간말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이회창의 행적을 보면 볼수록 코미디라고 생각은 하는데, -부모님과 설전을 벌일 때- 막상 '대쪽'의 이미지를 깨뜨리려고 생각하면, 그다지 논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이제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면 조목조목 따질 수 있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비판의 강도가 약했다. 특히나 아들들의 병역기피 문제는, (물론 비판의 논점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누구나 평등하게 군대에 가야 한다. 다같이 고생해서 이 나라의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어조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징병제 자체가 타당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회창 아버지의 친일 문제는 연좌제와 타당한 비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이야기했다는 느낌이 든다. 왜 본인이 아닌 아버지의 친일 문제가 중요한지 논리적으로 밝혔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책이 발간된다는 사실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 항상 잊고만 살고, 과거를 각색하는 짓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다수에게, 잊지 말라고 쪼아 대고 부지런히 자료들을 정리해서 제시해 주는 이 책의 저자 같은 사람이 고맙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