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창 나남창작선 141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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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 | 나남 창작선 141

이병주(지음) | 나남출판 | 2017-07-05

 

 

등장인물

구인상(역사철학교수, 이미숙 남편, 한문수와 서창희 친아들, 구만택의 의붓아들, 한경주로 개명함), 이미숙(음대출신-피아노전공, 구인상 아내, 순아 모친, 자살함), 순아(구인상과 이미숙의 딸), 서창희(구인상 친모, 한문수 애인, 구만택과 결혼), 유모(순아 유모), 고진숙(고제봉 딸, 애인에게 실연당함, 구인상이 거주한 하숙집 딸), 방상기(이미숙과 불륜설, 이미숙 대학 은사), 계향(기생, 구인상에게 뿌리를 찾아줌), 방화(본명은 최귀련, 기생출신, 한문수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영천 술도가집 사장의 첩), 할아버지(구인상 조부, 의성 거주), 백부(구인상 큰아버지, 의성 거주), 명국희(살롱 청마 마담, 기생의 딸, 구인상 애인), 기병열(음대출신, 진숙영 남편, 이미숙과 외도, 사기죄 구속), 진숙영(기병열 아내, 구인상과 외도), 고제봉(하숙집 주인 영감, 구인상이 뿌리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한문수(한갑순이란 필명 사용, 좌익운동 10월 폭동으로 사망, 서창희와 사랑한 사이, 구인상 친부), 구만택(=구영화, 서창희 남편, 구인상 의붓아버지, 한문수 밀고자),

 

 

 

 

뜬금없다. 삶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그것들 하나하나를 외따로 해석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발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를 결박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고집스럽게 하나의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말이다. 이쯤 되면, '운명'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된 의미가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과연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운명의 범주는 어디쯤 일까? 또 한 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은 그가 속한 국가의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이병주의 장편소설 <비창>(나남, 2017)은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비창’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3대 피아노 소나타(비창, 월광, 열정) 중 한 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이병주(李炳注, 1921~1992년 4월 3일)의 소설 ‘비창’이 베토벤의 음악과 관련하여 특별히 언급한 대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르크너의 교양곡 7번’을 비롯하여 작품 속에 서양고전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출현한다. 또 주인공 ‘구인상의 아내 이미숙’과 ‘진숙영의 남편 기병열’은 피아노를 전공한 음대 출신이며, ‘살롱 청마의 마담 명국희’ 역시 고전음악에 심취해 있다. 그런가하면 ‘음대 교수 방상기’의 피아노 연주 장면도 등장한다. 따라서 소설 ‘비창’의 기저에 깔린 이미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Piano Sonata No.8) ‘비창’을 충분히 연상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사랑과 미움’, ‘이별과 기다림’, ‘사회문화현상과 역사인식’, ‘순수와 열정’을 하나의 텍스트로 묶어 ‘애증의 관계’로 안착 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어느 누구의 사랑도 온전하지 않은 이 소설의 플롯은 등장인물들에게 서러움과 한스러움을 안긴다. 그야말로 비창(悲愴)이 아나고서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비창>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깊고 슬픈 선율에서 탄생한다. 스케일이 크고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관전 포인트를 하나로 꼬집어서 해석하기엔 적잖은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애잔하고 가슴 뭉클한 운명적인 사랑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한문수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신뢰와 존중’ 그리고 구인상을 중심으로 모여든 여성들의 ‘나약함과 현실도피’라는 두 집단이다. 그렇다고 이들 두 집단이 서로 대결을 한다거나 어떤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 이 소설의 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가르마 타듯 ‘한문수의 러브라인’과 ‘구인상의 러브라인’을 구분해 보았을 뿐이다. 이렇게 분리해서 읽고 나니, 공교롭게도 이 두 집단이 추구한 사랑은 어느 쪽도 완벽한 객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드러낸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소설 속에서 독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구만택’과 ‘기병열’까지도 한 호흡만 멈춰 서서 되짚어보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 눅진한 애증의 고뇌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둘의 말로(末路)는 처참한 몰락을 맞는다.

  

이 소설의 스토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면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남성을 몇몇의 여성이 흠모(欽慕)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극히 적극적이거나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이거나 자기애가 지나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을 향해 적극적인 성향을 드러낸 여성들의 경우, 자기 자신에게는 혹독한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끝까지 상대 남성의 인격을 존중한다. 반면, 상대 남성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여성과 자기애가 지나친 여성들의 경우에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거나 제자리걸음만 걷다가 주저앉게 된다. 이들의 성향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문수의 러브라인에는 ‘서창희, 계향, 방화’가 있다. 이들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며 매사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다. 이는 한문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변함없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면서 끝까지 한문수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려 애쓴다. 이러한 적극성은 구인상이 뿌리를 찾는데 일조한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문에 충실하며, 주체적인 삶에 방점을 찍고 있다. 비록 삶의 과정은 험난하고 아픈 세월이었지만 결과는 찬란한 빛을 발한다. 대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강한 여성상을 드러낸다. 헌신적이되 비굴하지 않고, 적극적이되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저 진득하게, 아픈 현실이지만 울지 않고, 슬픈 사랑이지만 이기적이지 않다. 다음, 구인상의 러브라인에는 ‘이미숙, 고진숙, 명국희, 진숙영’ 등이 있다.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한 이미숙과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인 고진숙은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다. 진숙영 역시 끊임없이 자살을 예보하며 불안한 삶을 연명한다. 이 세 여성의 인생은 불행한 종말을 가져온다. 하지만 명국희는 다르다. 굉장히 적극적인이면서도 끝내 이기적이지 않다. 구인상의 삶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살롱 청마의 마담’을 그만 두고 출판사 개업을 추진하는 명국희의 모습은 오히려 한문수의 러브라인 여성들과 닮은꼴이다. 

 

이처럼 한문수를 둘러싼 여성들은 진정한 플라토닉 사랑의 숭고함으로 한문수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인다. 즉 겉으로 드러난 외모 중심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내면에 무르익은 그림자 사랑을 추구한다. 대신 구인상 주변의 여성들은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으로 양쪽 모두의 몰락을 초래한다. 최고의 사랑은 결코 외형만을 추구하는 열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정반대의 사랑을 꿈꾸었던 두 집단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초월하여 슬픈 사랑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플라토닉 사랑에 중점을 둔 한문수의 러브라인이 성공을 거둔다. 설령,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라도 말이다. 이렇듯 거룩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시간을 대신 경험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인상이 되어보거나 이미숙이 되어 보고, 계향이나 방화의 입장이 되어서 이 소설 읽기에 빠진다면 그 재미는 더없이 쏠쏠할 것이다. 구만택처럼 비열한 인물은 비열한 대로, 한문수처럼 소신 있는 인물은 소신이 있는 대로, 이미숙이나 고진숙 그리고 진숙영처럼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까지도 말이다. 딱히 어느 한 인물의 노선을 응원하면서 읽더라도 결코 중앙선을 침범할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 소설이 하나의 텍스트에서 출발하여 유기적으로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강한 흡인력으로 유혹한다. 스토리와 플롯이 모두 좋은 소설을 만나기 어렵다는 금기어까지도 시원하게 날려버릴 정도이다. 이는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님을 방증한 셈이다.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아무에게도 용서를 빌고 싶지 않은, 자기가 자기를 벌하는 행위로서만 겨우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지경에 말려든 거야. 나는 순아 어미의 마음이 꼭 안나 카레니나의 그때 마음일 것 같아…. (본문 412쪽)

구인상이 여자를 사랑하기에는 정말 이기적인 남자였을까? 아내 이미숙의 잦은 외도를 핑계로 정녕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바람기를 공표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 이미숙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정녕 그것뿐이었을까?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 그뿐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순간순간의 짧은 만남을 그저 즐길 요량은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불리한 흔적들을 감쪽같이 지우고 또 지우면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구인상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 짜여진 각본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작 바람을 피우고 가족을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한 원인은 전적으로 구인상의 책임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아내 이미숙을 향한 뒤늦은 회한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미숙에게만은 그토록 냉정했던 구인상이 왜 참담하기 그지없는 슬픈 곡조의 사랑노래를 피토하듯 쏟아내는가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누구 한 사람 완전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지 못한 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수만 갈래의 생각이 우우, 비바람처럼 불어 온다. 언제고 다시 읽어보리라 스스로 굳은 약속을 한다. <비창>은 몇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다. 소설 마니아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전혀 새로운 소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17. 8. 7(월). Ⓒ 심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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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가시라기 히로키의 <절망 독서>(다산초당, 2017)는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절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이란 쓰러진 상태에서 어떻게 일어서서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일단 쓰러져버리면 빨리 일어서지 못 할 때도 있다. 그 일어서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결국은 절망을 극복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자신이 겪은 13년간의 절망 체험을 바탕으로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쓰고 있다. 신동욱(배우)은 추천사를 통해 "이 책에서 저자는 그저 절망에 빠졌던 자신이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차분하게 자신만의 방법을 제시(15)"하고 있으며, "시련과 절망의 순간에 놓인 사람들이 공감하기 위한 책(16)"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었다. '왜 절망의 책이 필요할까?'로 시작된 1부에서는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설명하고, 절망에도 종류가 있다고 주장한 2부에서는 절망했을 때 곁에 다가와주는 이야기들을 책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31쪽의 이야기는 현실을 알려준다에서, 우리는 전혀 모르는 거리를 걸을 때 헤매이지 않을까 불안을 느끼며, 꽤 오랫동안 돌아다닌다고 해도 거리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파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길을 걷기 전에 먼저 그 거리의 모형을 살펴보면 대략적인 모습을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모형은 실제의 거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거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낯선 거리를 걷다가 이정표를 잃고 당황했던 적이 꽤 많다. 이제부터라도 길 떠나기 전에 모형을 활용해봐야겠다. 사람은 절망했을 때 되도록 빨리 극복하려 한다. 그야말로 절망한 순간부터 바로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아이젠이라는 학자는 이러한 심리에 대해 '부정적 감정의 수복 경향'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절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면, 사람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 감정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었던 대목이다.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즐길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연 절망했을 때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까? 아무래도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지 않을까? 독서 같은 건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 절망에 빠졌을 때 선뜻 독서를 하겠다고 나설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의 기간이 길어질 때, 그 기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를 들어 고통을 느끼는 격통의 순간에는 책 같은 건 못 읽지만, 고통이 계속 지속되어 오래도록 견뎌야 할 때 아무것도 없다면 너무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망의 밑바닥에 꼼짝 않고 가라앉아 있을 때, 함께 있어주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네덜란드인으로, 저항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나치스에게 체포되어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이 되었을 때, 수용소 안에서 '니코 로스트'가 쓴 <다하우 수용소의 괴테>라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가능한 한 가지 책을 집중해서 읽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을 저자는 '절망의 순간 빛나는 책의 가치'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준 독서는 '인생에 짓눌릴 때 우리를 지탱해 줄 뿐만 아니라, 독서의 진짜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절망에 빠졌을 때, 책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고, 책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책 속에서 무엇보다 반짝거리는 자기 믿음을 건져냈던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모든 절망의 순간에도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책 속에서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가 인생 각본을 수정해야만 할 때, 부디 자신의 인생이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고통스럽거나, 패배했거나, 실연했거나, 배신당하거나, 기타 등등 우리를 고난의 늪으로 빠뜨리는 모든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독서'라는 것이다. 그에 알맞은 책을 가까이 함으로써 그런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독서뿐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처음에 <절망 독서>라는 책명만 접했을 때는 그에 대한 본질을 쉽게 짐작하지 못 했다. 그래서 '도대체 '절망 독서'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문답을 요구해 봤지만 허사였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쳐서 한 줄 한 줄 읽다보면, '아하! 바로 이 뜻이었구나!'하고 '절망 독서'의 상징성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흔히들 경험만큼 값지고 소중한 공부는 없다고들 한다. 이 책의 탄생 비화 역시 다년간에 걸쳐서 터득하고 도출해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절망의 시기, 곁에 다가와 위로를 건네는 공감의 문장들(책 뒤표지)"​을 <절망 독서>에서 만나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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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다. 이 책의 전체적인 감상평을 가장 짧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그 동안 ‘꼰대’하면 ‘저급한 은어’ 정도로만 인지했었다. 여기서 굳이 저급한 은어로 표현한 까닭은 그 말을 사용하는 쪽은 대체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정철<꼰대 김철수>(허밍버드, 2017)를 통해서 참으로 귀한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감성의 엽서 같은 것이었다.

 

기분 좋게 뒤통수 한 대 가격당한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랬다. 이 책은 내게 그런 감흥을 안겼다. 늘 마음에 품었던 시조 한 수를 불쑥 꺼내들고 되뇌게 하였다. 조선조 개국공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직(李稷, 1362~1431)’은 고려조 유신들을 향해서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희고 속검은이는 너뿐인가 하노라”고, 의미심장한 시조 한 수를 읊었다. 과연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꼰대’라는 말은 일방통행에 비유해도 무방할 만큼 불통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독서 전 나의 예측을 보기 좋게 따돌렸다. ‘꼰대’라는 명사가 책 제목으로 등장한 것은 내게 당혹감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호기심을 불러냈다. 그것들은 서로 충돌할 틈도 없이 곧 조화로움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꼰대는 나이와 상관이 없음을 이 책에서는 확실하게 보여준다. 누구라도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일방통행을 고집한다면 ‘꼰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학식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묵직한 금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인격의 문제인 것이다. 즉 상대를 향한 배려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할 줄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자신이 상대보다 조금 우월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려는 일방통행식 대화가 ‘꼰대’를 양성하는 가장 근본 요소였던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때,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머릿속에 ‘꼰대’라는 명사를 또박또박한 필체로 새겨 넣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그러니까 꼰대라는 말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잘못 인식된 채 널리 통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터득하게 만들어준 contents를 살펴보면 “1부 ‘아니오’는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동입니다/ 2부 두 가지 생각을 저울 하나에 올려놓고/ 3부 꼰대 시선은 늘 내가 아니라 남을 향하고 있지요/ 41n 꼰대어 사전/ 5부 마음이 따뜻한 꼰대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등 모두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목차만 훑어봐서는 이 책에 숨겨진 보석을 쉽게 발견할 수가 없다. 전혀 엉뚱한 이야기들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텅 빈 가슴은 꿈으로 채우고

텅 빈 곳간은 땀으로 채우고

텅 빈 인생은 친구로 채우고

텅 빈 머리는 그대로 두시게.

 

가슴도

곳간도

인생도

 

머리를 비워야 채울 수 있으니.

 

―「비움과 채움」전문(본문 122~123쪽)

 

<꼰대 김철수>는 그림과 수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림에세이집이다.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본문을 장식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짤막하고 섬세하다. 따라서 핸드북처럼 시간 날 때마다 후루룩 펼쳐들고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 순간 작가의 다른 작품집을 찾아서 읽게 되는 놀라운 독서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유쾌한 충격에 감염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2017. 03. 07. ⓒ 심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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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a 2017-03-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가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동어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3월 초에 읽은 책!

 

1. 당신에게 말을 건다/김영건/alma

2. 꼰대 김철수/정철/허밍버드

3. 나의 인생 계획/혼다 세이로쿠/창해

4. 냉정한 이타주의자/윌리엄 맥어스킬​/부키

5. 삐딱하고 경이로운 명작들 1/김헌/제인하우스

​6. 달팽이가 사랑할 때 1/딩모/현암사

7. 달팽이가 사랑할 때 2/딩모/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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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 2017-03-0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다독하셨네요!

pada 2017-03-0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1일 1권이상 읽으시네요. 대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