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다. 이 책의 전체적인 감상평을 가장 짧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그 동안 ‘꼰대’하면 ‘저급한 은어’ 정도로만 인지했었다. 여기서 굳이 저급한 은어로 표현한 까닭은 그 말을 사용하는 쪽은 대체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정철의 <꼰대 김철수>(허밍버드, 2017)를 통해서 참으로 귀한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감성의 엽서 같은 것이었다.
기분 좋게 뒤통수 한 대 가격당한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랬다. 이 책은 내게 그런 감흥을 안겼다. 늘 마음에 품었던 시조 한 수를 불쑥 꺼내들고 되뇌게 하였다. 조선조 개국공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직(李稷, 1362~1431)’은 고려조 유신들을 향해서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희고 속검은이는 너뿐인가 하노라”고, 의미심장한 시조 한 수를 읊었다. 과연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꼰대’라는 말은 일방통행에 비유해도 무방할 만큼 불통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독서 전 나의 예측을 보기 좋게 따돌렸다. ‘꼰대’라는 명사가 책 제목으로 등장한 것은 내게 당혹감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호기심을 불러냈다. 그것들은 서로 충돌할 틈도 없이 곧 조화로움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꼰대는 나이와 상관이 없음을 이 책에서는 확실하게 보여준다. 누구라도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일방통행을 고집한다면 ‘꼰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학식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묵직한 금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인격의 문제인 것이다. 즉 상대를 향한 배려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할 줄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자신이 상대보다 조금 우월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려는 일방통행식 대화가 ‘꼰대’를 양성하는 가장 근본 요소였던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때,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머릿속에 ‘꼰대’라는 명사를 또박또박한 필체로 새겨 넣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그러니까 꼰대라는 말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잘못 인식된 채 널리 통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터득하게 만들어준 contents를 살펴보면 “1부 ‘아니오’는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동입니다/ 2부 두 가지 생각을 저울 하나에 올려놓고/ 3부 꼰대 시선은 늘 내가 아니라 남을 향하고 있지요/ 41n 꼰대어 사전/ 5부 마음이 따뜻한 꼰대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등 모두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목차만 훑어봐서는 이 책에 숨겨진 보석을 쉽게 발견할 수가 없다. 전혀 엉뚱한 이야기들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텅 빈 가슴은 꿈으로 채우고
텅 빈 곳간은 땀으로 채우고
텅 빈 인생은 친구로 채우고
텅 빈 머리는 그대로 두시게.
가슴도
곳간도
인생도
머리를 비워야 채울 수 있으니.
―「비움과 채움」전문(본문 122~123쪽)
<꼰대 김철수>는 그림과 수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림에세이집이다.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본문을 장식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짤막하고 섬세하다. 따라서 핸드북처럼 시간 날 때마다 후루룩 펼쳐들고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 순간 작가의 다른 작품집을 찾아서 읽게 되는 놀라운 독서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유쾌한 충격에 감염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2017. 03. 07. ⓒ 심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