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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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국의 제45·47대 대통령이다. 공화당 소속인 그는 한 차례 재선 실패 후 당선됐고, 2025120일부터 2번째 임기를 맡고 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지점에 쓰인 책이다. 저자들은 트럼프의 재선 실패를 보고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결국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19)고 적었다.

 

정치인이라면 선거가 만들어 내는 (……) 예상치 못한 결과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28)

민주주의는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시스템이다.”(29)

 

첫 문장은 아르헨티나 페론당 후보인 이탈로 루데코가 압승을 낙관했다가 패배한 후 한 말이고, 두 번째 문장은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가 한 말이다. 패배한 정치인이 할 일은 선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다수의 민심을 연구해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인에게 다음은 없(어야 한). 저자들의 말처럼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는 규범은 오늘날 민주주의 근간이다.

 

21세기 초 공화당 정치인들은 선거 패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많은 공화당 지지자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나라였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 나라 안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였다. (165)

 

내가 보기에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인 그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자리가 흔들릴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들을 뺏길 위험에 놓일 때 눈을 감고 외면함으로써 반민주적 태도를 보인다. 그들이 대변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이다.

 

민주적인 정당은 승패를 떠나 공정한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차지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방안을 분명하게 거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175)

 

저자들은 꼽은 민주적인 정당이 따라야 할 세 가지 기본 원칙이다. 이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 극단적 소수주의자들은 다수를 지배하게 된다. 국민이 뽑지 않은 종신제가 보장된 소수의 대법관이 의회 내 양당의 다수에 의해 여러 차례에 걸쳐 통과된 투표권법을 없애버리는 상황은 비민주적이다. 미국인들에게는 헌법이나 법률이 보장하는 투표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권자가 아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는 나라이다. 선거구가 인구 기준으로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소수를 대표하는 정당이 의회를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자들은 위의 사례를 들며 미국의 성문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지만, 내재적 결함이 있었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의지가 소수의 권리를 짓밟는 건 위험하지만, 정치적 다수가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고 선거에 이기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요지다. 소수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보존하는 제도, 그리고 특권을 가진 소수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고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도록 허용하는 제도는 분명히 구분(212)’해야 한다.

 

저자들은 투표를 더 쉽게 만들고, 게리맨더링을 없애고, 선거인단 제도를 상원들보다 비례적으로 만들고, 대법원 종신제를 폐지하고, 헌법 수정을 좀 더 쉽게 만드는(341)’ 것으로 미국의 민주주의을 개혁할 수 있다고 했지만, 딱히 기대가 되지 않는다. 지난 시간 동안 행해지지 않은 것도 방법을 몰라서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재선 실패 후 저자들은 트럼프가 주도하는 공화당이 미국에서 다시는 다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받을 수 있다(192)’고 했다. 그들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했다.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불명예 퇴임 등 정치적 위기를 겪었던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대표적인 것은 강력한 경제 정책과 자국 우선주의, 유색인종의 지지층 확대였다. 경제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정치인보다는 경영할 줄 아는 사람을 뽑는 경향이 있다. 저자들은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민주주의 과제 중 하나로 뽑았지만, 트럼프 정부가 해낼지는 의문이다. 유색인종들도 이민 문제엔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100일이 지났다. 취임 100일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제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까.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겪었고 대선을 앞두고 있다. 경제 위기 속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될까. 일단은 투표를 잘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며 통치자를 포함한 정치인들의 행동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방심하는 사이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이다.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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