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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s Summer 1926 (Paperback)
Boris Leonidovich Pasternak / New York Review of Books / 2001년 10월
평점 :
손택의 짧은 에세이 하나를 읽었다. 『Letters : Summer 1926』라는 책을 읽고 쓴 손택의 리뷰다. 제목은 <1926년…>이고 부제는 ‘파스테르나크와 츠베타예바 그리고 릴케’다. 두 사람이야 신화적인 인물인데, 츠베타예바?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이렇다.
“그녀의 작품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들 가운데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경험하며 글을 썼으며 혁명의 결과로 인한 모스크바 기근을 겪었다.”
간략하게나마 알고 나니, 그제야 세 사람의 조합이 어울려 보인다. 여전히 궁금증은 남았다. 편지는 통상 두 명이 주고받기 마련이니까. 손택은 짧은 문장으로 셋의 관계를 단박에 정리했다. “참가자는 셋이다. 신과 두 숭배자. 두 숭배자는 서로를 숭배하기도 했다.”(p.41)
신은 당연히(!) 릴케다. 러시아의 두 문호는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 아니 독일 문학을 사랑했다. 그들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은 괴테와 횔덜린의 언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릴케는 당대 문학의 대표자였다.
“파스테르나크는 츠베타예바가 자기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했고 자기가 쓴 글은 츠베타예바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었다.”
손택은 세 시인이 모순적인 욕구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썼다. “절대적인 고독을 원했고 동시에 비슷한 정신을 지닌 사람과 강렬한 교감을 나누길 원했다.”(p.43)
이 서신집에 대한 손택의 평가는 높지 않다. 그녀는 감정적이고 들뜬 문체로 “세 시인들이 사랑의 감정이 솟구친다고 털어놓는 걸 듣는 것”이 꽤 불편하다고 썼다. 감정 절제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수사적 표현의 흐름은 고결함이라는 절벽 꼭대기까지 다다랐고 곧 히스테리, 번민, 두려움의 나락으로 떨어진다.”(p.45)
실제로 그들은 아슬아슬한 지경까지 갔나 보다. 츠베타예바는 에로틱한 관계를 꿈꾸며 릴케에게 만나자고 간청했으나 릴케는 “달아났다”(손택의 표현이다).
손택은 릴케가 쓴 다른 서신과도 비교한다. “릴케의 위엄 있고 때로 거만하기까지 한 편지 투를 아는 사람이라면 릴케가 자기를 숭배하는 두 러시아 시인과 마찬가지로 열렬하고 달뜬 문체로 쓴 편지를 보면 놀랄 것이다.”(p.44)
릴케의 거만함은 대표적으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손택이 “제왕적이고 남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모습”이라고 말한 책이다. 계몽 조의 글을 싫어하는 손택의 기질 때문인지, 릴케의 가르침이 손택에겐 대단하지 않았는지, 후일에 연구해 봐야겠다. 이쯤 되니 『Letters : Summer 1926』을 읽고 싶어지는데 우리말로 번역되진 않았다.
세 거장의 편지를 읽으면서 짜증이 났을 손택이 그려지는 글이었다. 글을 쓰면서는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으리라.
릴케에 대한 손택의 견해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세 거장이 주고받은 편지에 대한 손택의 총평에는 동의했다. 이런 통찰이 손택이다. 짜증 나는 글을 읽고서도 ‘그럴듯한’ 에세이 한 편을 써내는 진솔함과 지성의 소유자! ('그럴듯한'은 의도적으로 선택한 어휘다. 손택의 일급 에세이들에 비하면 식견도 형식도 부족한 글이었기에.)
그들의 교류를 바라본 손택의 총평은 이렇다.
“이 편지들에 쏟아부은 광희(狂喜)는 서로 떨어져 있었기에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며 서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에 대한 응답(위대한 작가들이 예외 없이 독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으로 나온 것이다.”(p.47)
손택은 내게 영감의 산파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깨우치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전율한다. 『해석에 반대한다』와 『우울한 열정』가 안긴 독서 체험은 잊지 못한 감흥이었다. 이번 글은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단상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1) 릴케의 대한 손택의 평가를 곱씹게 된다. 시간을 내어, 젊은 시인 카푸스에게 보낸 영감 어린 조언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내게는 영감을 잔뜩 안기어 애착이 가는 책이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릴케의 가르침이 퍽 좋았던 기억이다. (참고로, 김재혁 교수의 번역본으로 읽었다.)
2) 세 시인은 창작에 필요한 절대적인 고독과 비슷한 정신과의 강렬한 교감을 동시에 원했다. 고독과 교감! 나는 정말이지 이 고귀한 두 가치를 모두 획득하고 싶다. 살면서 자주 경험하는 일이 아님은 몽테뉴와 라 보에티를 통해 느꼈는데, 릴케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릴케로서도 이 정도 수준 있는 대화 상대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p.44)
3) 두 러시아 시인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정신(Geist)의 고양을 다루는 문학으로는 독일이 으뜸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언젠가는 괴테와 토마스 만의 책을 완독하리라는 오랜 열망은 그러한 생각의 산물이다.
4) 이 글을 읽고 나니 교감을 나눈 거장들의 편지글이 읽고 싶어졌다. 예술과 문학사만 들춰도 읽을거리가 많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빈센트의 편지, 카프카가 아버지와 연인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 카뮈와 그의 철학 스승 그르니에가 주고받은 편지, 카잔자키스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철학사에서는 지금은 퇴계와 고봉, 아도르노와 벤야민 정도가 떠오른다. 이들 중에 자기 해명이나 의견 교환이 아닌 교감을 나눈 편지는 얼마나 될까?
덧.
손택의 이 짧은 리뷰는 2007년에 출간된, 그러니까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에 간행된 평론집 『문학은 자유다』에 실렸다. 손택의 마지막 4년 동안에 쓴 에세이와 연설문을 묶은 책이다. 손택은 파스테르나크의 가장 뛰어난 산문으로 <안전통행증>을 꼽았고 이 책은 파스테르나크로 학위를 받은 임혜영 선생의 번역으로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