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누군가 죽였다. 한 명 두 명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인간들이 자기들 살자고 죽였다. 그래서 가신 길이 더 슬프다. 대명천지에 대통령이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을 온갖 모욕과 정신적 고문을 통해 죽일 수 있는 세상. 14 대 0, 있는 증거도 무시한 기소유예 대 수사시작하자마자 유죄 확정, ‘경제로 가자’고 도배하던 보수언론은 온갖 범죄소설로 범인을 창조했다. ‘예우하겠다던’ 대통령 당선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4시간 사생활도 없이 조롱거리로 올려놓았다. 비열한 인간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만이라면 버텼을 지 모른다. 주변을 옥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혹독하게 먼지 한 톨이라도 있을 라 치면 윽박질렀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애초에 수십 년을 지배해온 철옹성인 그들에게 노무현은 연약한 계란이었다. 연약하지만 썩기를 거부한 계란. 자신 몸 하나 깨져도 언젠가는 저 ‘썩은 내 풀풀 나는 바위’를 깰 수 있다고 믿었다. 적당히 해서 잘 먹고 잘살 수도 있었지만 양심은 그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손만 내밀면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그는 ‘상식’ 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일구었다. 지금 쉽게 가면 권력은 국민에게 되돌려줄 수 없기에. 1인자가 권력을 놓자 빌붙어 이익을 챙기던 집단들이 국민에게 돌려주지 않기 위해 권력을 독점했다. 말을 섞지 않아도 통했다. 언론-경제-정치 수구 집단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기업은 돈을 묶고, 언론은 매일 ‘반노무현’ 기사를 창작하고 각색하고, 정치권은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의 가시밭길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고통이 되었다. 왠지 짜증도 나고 실망도 났다. 한것도 없이 참여정부에서 권력의 혜택을 받은 자들이 어깨에 힘을 주는 듯하여 미웠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발 두발 빼고, 비판의 돌팔매질도 하였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 한지 모른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하지만 남은 자들에게는 더 혹독한 현실이 기다린다. 살갑게 다가와 희망과 미래를 나눌 친구이자 동지 같은 소중한 사람이 사라졌다. 갑자기 노무현이라는 중심이 사라지자 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한다.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속으로는 웃고, 더러운 손들이 손에 손잡고 하루도 내놓지 않을 ‘그들만의 제국’ 철옹성을 쌓으려한다. 상식과 원칙,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은 입 밖에 내기도 힘들어졌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누가 더 당할까봐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는 말을 남겼지만, 우리는 잘 안다. 그는 항상 패배자였고, 패배자였기에 승리자였다는 것을.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는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진정한 승자의 이야기다. 약자의 편에서면, 원칙에 서면, 사람 사는 세상을 살려면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무현은 없지만 패배를 하며 오뚜기처럼 잃어서는 제2, 제3의 노무현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글을, 그의 영상을, 그의 책을 보고 또 보고, 울며 본다. 우리 자신의 고통이기 때문에.

 

작은 비석하나만 세우라 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평범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슴에 크게 남아있을 것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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