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책에 관한 책에 손이 가게 마련이다.  

 읽다가 미처 알지 못했던 소중한 한 권의 책이라도 발견하면 뛸뜻이 기뻐하고, 소개된 책을 지름을 못해 열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작가의 유명세에 비해서 그냥 서평에 불과한 것에 속은 것에 실망하고 얼마동안은 비슷한 류의 책을 거들떠 보기 않기도 한다.  

 책에 대한 책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순례자의 책』은 지금까지 봐왔던 책들과는 달라,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책에 대한 책이기도 하고, 책의 인문(역사)에 대한 책이기도 하고, 책에 대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잘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패설(소설)에 대한 은밀한 문화를 살짝 들쳐 보여준다. <미쳐야미친다>에 나오는 간서치라 자칭한 이덕무의 이야기나, 백이전을 십만번 읽었다는 이의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우리 역사속의 책이야기를 몰래 흥미롭게 마주하는 기쁨을 준다. - <상동양화> 

소크라테스는 글로 남기는 것을 싫어해 책을 쓰지 못하고, 피타고라스는 글의 한계를 지적하며 머뭇거리고, 피카소는 자만으로 책을 못써 지옥에 잔류한 오래된 세대들이다. 자서전을 써야 다음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관문은 글자도 배우지 못하고 온 어린아이에게는 쉬운일.  

지옥을 도서관으로 상정한 것도 특이하지만, 유명인사들을 자서전을 쓸 줄도 모르는 부진아로 몰아붙이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의 불온한 상상력이 책에 수도 없이 언급되는 인사들에 던지는 풍자가 왠지 모르게 기쁜 것은 나만의 일일까? - <저승은 커다란 도서관> 

 <최초의 책>, <최고의 책>, <책의 적>을 찾아가는 과정은 오래된 고정관념을 깬다. 최초의 책이 형태라는 집착을 벗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지 없이 무너진다면, 최고의 책은 최고라는 형용의 모순과 나름대로 이유들이 비등하여 선정의 의미 자체가 사라진다. 비교적 쉽게 찾으리라던 책의 전은 진시황, 히틀러, 신앙을 이유로 도서관을 파괴한 테오필로스, 이민족 문화를 말살한 카라지치에 대한 갑론을박을 넘어서며 독자들 자신이 책이라는 반전(? -반성)을 만나면 아이쿠 스럽다. - <책의 적을 찾아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책을 이런 저런 이유로 읽었다해도 책읽기 그 자체가 좋아지는 것이 어쩔 수 없다. 황제의 명이 거두어졌을 때 조차도 세상의 책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발길이 계속되는 것처럼. 산을 왜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이야기처럼 책이 있기에 읽는다는 것이 독자의 모습이 아닐까.    

 책의 순례를 조금은 지름길로 돌아 본 느낌이다. 책 읽기가 끝나는 것은 아닐터이지만, 종이밥을 제대로 먹어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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