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일본 - 일본 귀족문화의 원류
모로 미야 지음, 노만수 옮김 / 일빛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쌍화점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한다. 쌍화점이 남녀상열지사를 다루고 있다는 고상한 표현은 주연배우들의 연기의 농염함을 기대하게 한다. '야'한 영화에 일각연이 있는 일본은 어떠할까? <감각의 제국>을 본 사람은 포르노가 아닌 영화중에 더 이상 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볼 것이다. 포르노와 성인영화의 구분은 애초에 애매모호하지만, 그 영화를 포르노라고 할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일본의 이런 야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실마리를 <겐지 모노가타리(겐지物語-겐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원령들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황가의 귀족인 겐지는 천황의 아들로서 어머니에 해당되는 사람에게 끊임없는 구애하다 잠자리에 들기를 성공하는 것은 물론, 많은 여인들과 희롱한다. 헤이안 시대(서기 794년에서 1185년 사이, 일본의 고대 말기)의 일본에서는 성에 대한 엄격한 단속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이저가 남의 아내와 함께 잠자리를 해도 스캔들 정도에 불과한 고대 로마의 모습처럼. 그런 면에서 쌍화점이 우리 문화이듯이 이제 천년을 맞은 <겐지 모노가타리>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신윤복이 그린 춘화도를 예술로 보듯이 일본 작가의 춘화도도 예술일듯이 말이다.

 헤이안 시대의 일본은 지금의 일본을 이해하는 코드다. 황진이가 한시의 시조로 뭇 양반관료들과 소통했다면, 일본의 여성들은 와카와 히라카나를 통해서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우리에게는 성황당 문화나 토속신앙이 거의 전문 연구가들을 중심으로 극히 쇠퇴하는 반면 일본의 신도문화는 황족을 비롯하여 모든 구성원들에게 없앨 수 없는 삶의 문화가 되었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영웅이다. 학생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를 때마다 기타노텐만구에게 소원을 빈다. 간토지역의 영웅 마사카토는 지금도 도쿄증권교역소 근처에 신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인 히데사토가 출정 전에 들른 신쇼사와 그가 만든 화살 재료인 남천죽은 지금도 이 주변 지역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일종의 조상신과 다름없는 일본의 신사는 그렇게 발전되어 왔다. 특이한 것은 신사가 기복의 차원보다는 신도, 즉 마을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되 자신의 기복은 신사에서는 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대 일본에서 많은 내우외환을 이겨내기 위한 공동체 주의가 남아있는 일본의 공동체주의의 원류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같은 비정규직인데도 계약연장이 80%되는 일본에 비해 20%를 갓 넘는 우리 현실에서는 어쩌면 부러운 현실이다.

 헤이안 시대의 이러한 원령(모노노케) 사상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창조되었다. 헤이안 시대에 동북지방에는 야만족인 이민족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주로 수렵채취를 중심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이 사람들은 헤이안 시대에 정복당했다. 에미시라 불리는 이민족의 소년 아시타카는 원령공주와 숲을 구워하는 전사의 역할을 한다.

 가깝고도 먼 일본, 우리에게는 일제 36년과 역사왜곡,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코드가 공유되어있지만 그 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문화적 요소에는 그만큼 무지하거나 무시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고, 일본의 사케를 마시면서도 말이다. 문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문화에 한발 짝 다가가 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