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강의
손병목 지음 | 한겨레 펴냄 | 340쪽 | 15,000원

 

 

 


▶ 도서 소개

한 권으로 읽는 동양고전!!

최근 동양고전이 지속적으로 소개되면서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게다가 대입 논술문제에서 동양고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날로 늘고 있기 때문에 논술공부를 위해서라도 동양고전에 대한 절실한 필요도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선뜻 고전을 잡고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원전과의 ‘간극’ 때문이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나 사고방식이 현대와는 크게 다른 것이 동양고전을 어렵게 만든다.

 

『(통합 논술세대를 위한) 동양고전 강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먼저 동양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철학자나 철학서의 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고, 거기다 더해 현대적인 예시나 친숙한 용어를 사용하여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본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쉽고 친숙하게 설명하면서도 비판적 독해와 핵심 사상에 대한 재구성을 준수하게 수행하고 있다.

 

주제에 대해서 직접 접근하지 않고, 관련된 정보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핵심으로 다가가는 서술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단편적인 지식을 아는 것을 벗어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원전에 대해서 비판적 독해를 시도하거나 원문을 아예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하나의 독서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은 동양고전의 내용에 함몰되지 않고 보다 주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단락의 말미에 입문을 위한 추천도서와, 본격적인 독서를 위한 원전도서를 제시하고, 독서퍼즐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동양고전의 독법은 애초부터 텍스트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읽는 것이다. 고전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물신주의나 무한경쟁 세계화 시대일수록 시대적 본질을 꿰뚫고 자신이 취해야 할 선택을 찾아낼 수 있다. 논술 문제를 풀거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는 데 애쓰는 것도 좋지만, 과거 선조들이 고민했던 뜻을 이어받아 자신은 물론 이웃들의 미래에 대해서 기여하는 것이 이 책이 숨기고 있는 취지일 것이다.


▶ 학습 개요



주제


동양고전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접근하기


소요 시간


120분


대상


고 1학년 이상


관련 주제어


소통, 열정, 원칙, 인의, 도전정신, 비판적 시대정신, 고전, 사기, 논어, 맹자, 장자, 주역


관련 토론문제


2003년 한국외대 정시 - 인륜과 고답주의에 관한 논쟁(백이숙제의 정신)

2006 연세대 정시 - 갈등과 불안에 관한 가치 재평가


관련 교과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Ⅱ. 윤리의 흐름과 특징 1. 동양윤리

고등학교 교육학 Ⅱ. 가르치고 배우는 일 5. 훌륭한 가르침이란 어떤 것인가?



 

▶ 수업 전 준비 과제

1. 윤리와 사상 등 자료를 통해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핵심사상과 그 차이점에 대해서 조사해보자.

2. 전통사상은 계승해야 할 것인지 비판해야 할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자.

 

▶ 수업 목표

1. 사상가의 사상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인생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2. 동양고전의 사상들이 현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한다.

3. 동양사상 중 비판하거나 계승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 책 속 내용 따라잡기

 

1. 사마천이 ‘도필의 관리’들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까닭을 장탕과 공손홍의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

 

사마천이 비판하는 도필의 관리들은 대체로 탁상행정으로 중대사를 결정하고 임금의 비위를 맞추어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공손홍은 자신이 익힌 학문을 임금에게 아첨하는 데만 사용했기 때문에 ‘曲學阿世(곡학아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황제의 눈에 들어 재상이 되기는 했지만 누구도 공손홍을 존경하지 않는다.

장탕 같은 사람은 한무제의 눈치를 살펴, 무제가 엄중히 처벌하기를 바라는 사안이면 냉정하게 부하에게 그 안건을 맡겼고, 반대로 무제가 관대하게 처리하기를 바라는 사안이면 공평하고 너그러운 판단을 내렸다. 한마디로 무제의 눈에 바라는 대로 척척 일을 처리하여 높은 자리에 올랐다. 이와 같은 행동은 공평무사한 관리의 책임을 망각한 것이다. 때문에 급암이라는 인물은 ‘도필의 관리’를 일컬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도필의 관리들은 여하튼 법조문을 비정하게 적용하고 사람을 교묘하게 탄핵해서 죄에 빠뜨려,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하고 있다. 백성한테 이기는 일만을 솜씨 좋다고 여기고 있다.”

 

 

2. 그리스의 소피스트와 춘추시대의 ‘士(사)’를 비교해서 정리해보자.

 

소피스트는 현자(賢者)이자 지자(知者)라는 뜻이다. 기원전 5~4세기경에 그리스에서 활약한 지식인을 말하는데, 청년들에게 연설하는 법이나 토론하는 법, 출세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말만 잘하는 궤변론자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 소피스트들의 모습 속에서 지식인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춘추시대의 사(士)도 지식인이다. 이들은 제후와 대부들을 보좌하며 그들을 위해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데, 주로 법률을 정비하거나 정치를 돕거나 전략을 짜내는 등을 일을 한다. 공자는 이러한 사(士)를 일신을 위해 군주에게 투신하는 소인으로 보았다. 공자에 의하면 진정한 사(士)라면 군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군자는 백성들을 위해 고민하고 자신의 생활을 철저히 성찰하는 지식인을 말한다.

결국 소피스트와 사(士)는 지식을 갈구하며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거나, 나라를 위해 쓰려하는 모습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3.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서 맹자가 굳이 인의를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맹자는 약육강식과 권모술수의 방식이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천하를 안정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도덕적인 왕이 출현하여 의로운 전쟁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여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만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로잡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옳은 정의를 버리면 안 되며, 민본적인 공동체 속에서 지속 가능한 공존은 비록 전국시대에도 요구되는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이라는 방식을 추구한다면 비록 승자가 나오더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처참한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전쟁의 법칙이다. 그 속에서 개인은 처참해지고 공동체 정신은 퇴색되고 타락한 시대에 대해서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애써 방관하려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결국 인의의 철학을 통해 전쟁의 어리석음을 지속적으로 설득하여 전쟁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4. 다음 그림은 맹자가 주장한 정전제의 모형도이다. 이 제도의 취지와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사전


사전


사전


사전


공전


사전


사전


사전


사전



 

위와 같이 전체 땅을 9등분으로 나누어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한 것을 정전(井田)이라고 부른다. 한가운데는 공동 경작지인 공전(公田)으로 두고, 나머지 8개를 8가구가 나누어 가진다. 이를 개인적인 밭이라 하여 사전(私田)이라 한다.

농사를 지을 때는 공전을 먼저 지어야 하는데, 그것은 공적인 일을 앞세우는 습관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백성들은 공전에서 거두어들인 것은 나라에 바치고 사전에서 가꾼 것은 모두 가져갈 수 있으므로 의욕이 더 생겨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국민들의 수입은 많아지고, 그만큼 세금도 증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토지가 돌아가기 때문에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5. 다음은 장자의 한 구절로 호접지몽(胡蝶之夢)의 내용이다. 장자가 이 글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

 



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물화(物化)’라고 한다.

- 제물론, 책 252~253



 

장주의 위와 같은 생각은 현실과 망상 사이에 가려져 있는 우리들의 삶을 꿰뚫고 있다.

장자는 이와 같이 현실과 꿈이 뒤섞여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도 ‘인생은 일장춘몽’ 식의 허무주의에는 빠지지 않는다. 자신을 잊은 채 남들의 바람대로 얽히고설키어 사는 어지러운 인간세를 떠나라고 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인간의 본질이며 부정할 필요도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이와 같은 현실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 함께 이야기 나누기

1. 다음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를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해보자.

 

1). 백이와 숙제에 관한 이야기 중 사실과 다른 것은?

1)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가 죽었다.

2)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와 전쟁하러 가는 길을 막다가 죽을 뻔하였다.

3) 공자는 이들을 인(仁)을 구하여 얻었다고 이야기하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고 평한다.

4) 성삼문은 자신의 ‘절의가’에서 이들이 수양산에서 살았던 것을 칭찬했다.

 

정답 : 4)

성삼문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항거하여 절의가를 지었다. 이를 현대어로 풀이하면 “백이와 숙제가 숨어 살았다던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원망하노라. 차라리 굶어 죽을 것이지 고사리는 왜 캐먹었느냐. 비록 산에서 자라는 것이지만 그것은 누구의 땅에서 난 것이더냐”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삼문은 고사리를 캐먹은 것조차도 절의를 잃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므로 책의 내용과는 맞지 않다.

 

2. 백이와 숙제의 행동들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자.

 

*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였다. 왕은 장남인 백이 대신 동생인 숙제에게 대를 잇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형 백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백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한다면서 거절하고 도망하여 숨어버렸다. 숙제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여 도망해 숨어버렸다.”

 

백이와 숙제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 숙제가 왕이 되는 것, ㉡맏이인 형이 왕이 되는 것, ㉢둘 다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 “은나라 주왕(紂王)은 포악한 군주로 자신의 마땅한 역할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하였고, 충신들을 함부로 죽이는 악행을 자행하였다. 하지만,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이 이런 주왕을 공격하려하는 것은 신하가 어찌 군주를 치려하느냐고 호통칩니다. 아무리 명분이 있어도 신하가 군주를 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공자는 이렇게 세워진 주나라를 이상적인 나라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또 백이와 숙제의 의연한 죽음만큼은 우러러 받든다. 주나라가 부패한 은나라를 정벌한 것도 잘 한 것이요, 백이. 숙제가 그것을 끝까지 반대하며 스스로의 지조를 지킨 것도 본받을 만하고 한다.

 

나의 생각은?



 

 

 

 

 

 



 

 

 

 

2. 다음은 장자의 소요유의 한 구절이다. 글 1)의 관점에서 글 2)를 비판해보자.

 



1)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 천 리가 되어 도시 잴 길이 없었습니다. 한번 기운을 모아 푸드덕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장 같았습니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천지(天池)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고인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습니다. 물 한 잔을 방바닥 패인 곳에 부으면 그 위에 지푸라기를 띄울 수 있지만 잔을 놓으면 바닥에 닿아 버리고 맙니다. 물이 얕은데 배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충분하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습니다. 구만리 창공에 오른 붕새는 큰 바람을 타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거침 없이 남쪽으로 날아갑니다.

 

2)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붕새를 보고 함께 비웃으면서 말합니다. “우리는 한껏 날아 보아야 겨우 느릅나무 박달나무에 이를 뿐이고 어떤 때는 거기에도 못 미쳐 땅을 내려앉고 마는데, 구만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다니.”



 

 

3. 아래 두 글은 ‘仁義(인의)’에 관한 맹자와 장자의 입장이 나타나 있다. 이 중 한 입장을 선택하고 이를 정당화해보자.

 

1)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자,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천 리를 멀다고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셨으니, 장차 어떤 방법으로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꼭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신다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고장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며,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내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위아래에서 서로 이익추구를 하게 되면, 나라는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만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의 제후며, 천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 량의 병차를 소유한 고장의 대부입니다. 병차 만 량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천 량을 소유하고, 병차 천 량의 나라에서 백 량을 소유하고 있다면, 이 비율이 많지 않다고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의리를 뒤로 하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쟁탈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진 행동을 하면서 그 어버이를 버려둔 사람은 없었으며, 의로운 행동을 하면서 그 임금을 뒤로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왕께서는 다만 인의를 말씀하실 뿐이니, 어찌 꼭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 맹자, 「양혜왕」

 

2) 옛날 황제 때 비로소 인의(仁義)로 사람의 마음을 묶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요(堯)와 순(舜) 임금이 넓적다리에 살이 깎이고 정강이 털이 닳도록 애쓰고 다니며 세상 사람들의 몸을 돌보고, 자기의 오장을 괴롭히며 인의를 실행하고, 자기의 건강을 해치며 예법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직 감당하지 못한 데가 있었다.

이어서 삼왕(三王) 때에 이르자 온 세상 사람들은 더욱 놀라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걸왕이나 도척이 나타나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증삼(曾參)이나 사추가 나타나고 유가와 묵가도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은 기뻐하거나 노해서 서로 의심하고,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가 서로 속이며, 좋다 나쁘다 서로 비난하고, 거짓이다 사실이다 서로 헐뜯어 세상이 차츰 쇠잔해지고 말았다. 뛰어난 덕에 차별이 생기고 자연스런 본성은 어지러워져서 온 세상 사람이 지혜를 좋아하여 배성은 심히 혼란해지고 말았다.

- 장자, 「재유」

 

 

맹자는 세상의 혼란을 궁극적으로 없애기 위해서 ‘인의’라는 가치를 내세운 반면, 장자는 사람의 그러한 인위적인 ‘인의’ 개념이 오히려 사람의 본성을 흐려놓고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주장을 보이고 있다. 이때 주의할 것은 사람의 인격을 점차 쇄신해 나가느냐, 아니면 본질적인 본성을 끊임없이 찾아가느냐의 차이를 아는 데 있다.

 

 

 

 

4. 다음 두 철학자의 사상을 읽고, 교육자로서의 공통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1) 공자는 교육자가 사람의 학습을 자극하고 안내할 때에 각자의 개성을 고려해야 함을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다. 제자 자로가 “선한 말을 들으면 곧 행하오리까?”라고 물으니, 공자는 “부모님 등 웃어른이 계신데, 어찌 제 맘대로 행동을 하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다른 제자 염유가 같은 질문을 하자, 공자는 “네가 들은 대로 곧 행동하라.”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을 본 또 한 제자 공서화가 같은 질문에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답하시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공자는, 염유는 우유부단한 면이 있으므로 강한 실천을 강조하였고, 자로는 실천력이 지나치게 강한 면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결단하도록 가르친 것이라고 하면서, 결국 같은 것을 가르쳤다고 하였다.

- 고등학교 교육학



 

2) 소크라테스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논쟁의 결론은 늘 ‘아직 그것은 모른다’ 였습니다. 무지에 대한 고백을 서로 나누며 토론의 끝을 내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식을 전달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사람이 스스로 행동하도록 무지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지식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의 행동이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목적이었습니다.

- 동양고전강의

 

 

공자와 소크라테스 모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었다. 다만 공자는 사람에 따라 그것을 다르게 볼 수 있었을 뿐이고,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정말 옳은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세상사람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지만 엄밀한 의미로 따졌을 때 진정한 의미로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것이 진리의 특징이다. 두 철학자는 이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앎’에 대해서 확고한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때문에 두 철학자 모두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의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화 상대자에 따라 대하는 내용이 달라지고, 상대방이 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로 아는 것인지 추적한다. 이에 비해 주입식 교육은 교사가 애초부터 지식을 완전히 습득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이 중심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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