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중간자의 발견으로 노벨물리학상 수상한 유가와 히데키는 ‘직관과 추상 사이의 균형 혹은 협력을 통해 발전한 고대 그리스에서 과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2500여 년 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세운 가설들은 종종 비과학적이라고 비판받지만, 그들이 세운 이론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많은 것을 현대물리학의 거두도 인정한다. 불확정원리(미립자세계에서 운동량과 위치를 둘 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다만 확률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로 유명한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그는 “물리학과 화학, 천문학 등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자연설명’이라는 말을 ‘자연기술’이라는 초라한 말로 바꾸게 된다. 이는 우리의 진보가 직접적인 지식의 진보가 아니라 분석적인 파악의 진보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인간의 이성을 통해 해석하려 했던 최초의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다. 자연에 대한 탐구와 자연을 통한 해석을 시도한 그들이 서양철학의 뿌리를 이룬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실험적인 검증이 없다는 이유로 비과학적이라는 족쇄를 받았던 이 당시에 철학자들에 대해 저자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그렇게 평가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철학의 추상성을 가진 이때의 과학적 추론들이 오히려 한 분야의 증명에 치우쳐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자연을 조화로운 전체로, 하나의 전체로 관찰할 수 있었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탈레스는 일식, 황도의 기울어짐, 정전기를 발견했다. 흔히들 알고 있는 탈레스의 사상 ‘만물의 근원은 물’은 탈레스가 최초로 ‘신화에서 벗어나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 속에서 자연적인 통일을 찾고, 자연 속에서 합법칙적인 인과성을 인식했다는 것’을 간과한다면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현대의 분자생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물을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보유자로 바라보는 탈레스의 입장에 동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낙시마드로스는 수중생활을 하는 척추동물의 섭생법과 화석들의 관찰을 통해서 현대의  진화론처럼 어류에서의 진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상상력 넘치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점진적인 진화와 환경에의 적응, 그리고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관념을 최초로 만들어냈다. 또한 그가 도입한 대칭의 개념은 현대 물리학에서도 여전히 입자와 반입자등 물리적 현상들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일반적인 이론적 기둥으로 남아있다.

 

현대과학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관점이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해서 현대 과학이 그리스 사상의 유산을 이어받아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주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비록 일치하는 경우에도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해석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당시의 철학자들의 직관과 현대 물리학의 관계를 일치와 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유사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함께 바라볼 때 더 현대물리학과 고대 그리스 철학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소크라테스 이후로 사라졌다가 근대에 들어오면서 각광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수 자체와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순수하게 관찰하는 데 전념한 피타고라스학파는 무리수의 개념을 기하학적 형상을 통해 설명하고, 음악에서 질서 있는 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연구하였다. 피타고라스의 대립과 조화의 개념은 신비주의만 강조한 신플라톤주의와 물리학을 신학의 영역에 포함시켜 단절된 이후 17세기에 되살아난다. 피타고라스는 측정 혹은 ‘척도’라는 것을 처음으로 세계 연구의 수단으로 도입함으로써 서양 사상과 도양 사상을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게 분리시켰다.

그 외에도 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만날 수 있다. 윤리, 철학 교과서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 경우에 신비론자 혹은 궤변론자와 같은 대우를 받았던 철학자들을 풍부한 사례와 내용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를 신이 아닌 자연중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것은 더 큰 장점이다. 실험(증명) 가능한 과학만을 과학이라는 통설적인 견해는 이 책의 내용을 보다보면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하시는 분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