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부인
스테이시 홀스 지음, 최효은 옮김 / 그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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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런던.

 

 

놀랜드 유모 학교를 졸업해 래들렛 가문을 모시던 루비 메이는 미국으로 떠나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새로 일할 곳을 찾게 된다. 메이는 부양해야 할 가족 때문에 영국을 떠날 수 없었는데, 그녀에게 조금 멀긴 해도 적어도 영국 안에는 있을 수 있는 직장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요크셔에 있는 하드캐슬 하우스. 그곳에는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부부와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놀랜드 유모 학교에서는 세 번의 취업 기회가 끝나면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메이는 자신이 반드시 가겠다고 교장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잘 해야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메이의 눈에 띈다.

 

 

─'집주인' 역할과 '안주인'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잉글랜드 씨'

─12시에 먹는 '저녁'

 

 

그리고, 나에게 온 편지를 자신에게 주지 않고 숨겨둔 '잉글랜드 부인'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관계.

하드캐슬 하우스에서 의심과 분노가 휘몰아친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 그 집안만의 규칙은 외지인을 순간적으로 바보로 만든다.

 

 

 

 

1904년 영국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스테이시 홀스의 「잉글랜드 부인」은 가스라이팅이라는 소재로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스릴러 소설이다. 강력한 한 방보다는, 사소하지만 뭔가 이상한 일들이 아주 얇은 막처럼 한 겹 한 겹 마음에 쌓이게 되는 그런 작품. 오히려 그런 모호한 미심쩍음, 그리고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더욱 무섭다. 누구에게 무엇을 하려는지 도통 그 의중을 알 수가 없으니까. 대상을 죽이려는 건지, 아니면 대상을 노예처럼 할 셈인 건지, 그리고 그 대상은 누구인지.

 

 

 

▲ 사소한 일로 시작된 의심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거기에 작품 밖에 있는 독자의 시선이 더해지면 의심은 더욱 가중된다.

 

 

띠지의 "도망쳐야 해요. 찾으면 나를 죽여버릴지도 몰라요."라는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하는 걸까, 제목이 「잉글랜드 부인」이니 제일 나쁜 건 어쩌면 잉글랜드 부인이 아닐까, 책 뒤에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그러면 이 중에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건 누굴까...

잉글랜드 부인? 잉글랜드 씨? 어쩌면... 유모 메이?

 

 

 

 

 

 

표지에 있는 두 여인처럼, 우아하다

 

 

 

 

 

 

「잉글랜드 부인」은 그늘 출판사에서 나온 두 번째 작품인데, 동 출판사에서 지난번 출간된 「섀도 하우스」까지 읽어본 나는 그늘 출판사가 추구하는 스릴러의 결을 어렴풋하게 알 것 같기도 했다.

 

 

자극적인 이야기의 스릴러·미스터리 작품이 대중들에 인상에 강하게 새겨지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자극적인 것과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의 차이를 혼동하게 된다. 때론 몇 스릴러·미스터리 작품이 그 정도를 조절하는 데에 실패해 독자들에게 불쾌한 감정만을 남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그늘의 작품에는 그런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을에 도는 괴담을 중심으로 혼란에 빠지는 「섀도 하우스」에서 마지막에 가서는 사이가 좋지 못한 아들과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고, 그 괴담의 진상이 드러나게 되는데, 「잉글랜드 부인」에서도 숨겨진 이야기가 모두 밝혀지며, 아주 또렷한 희망의 빛이 드리운다.

 

 

어두움에도 아주 깊은 완전한 어둠이 있는가 하면, 그늘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드리운 어둠이 있다.

그늘 출판사의 두 작품 모두 미스터리의 요소들은 확실히 챙겨가면서, 그 끝에는 절망이 아닌 희망이 있는 그런 작품을 추구하는 듯, 배경도 시대도 다르지만 하나의 유사한 결이 느껴진다.

 

 

스릴러에 면역이 없거나, 지나치게 과한 설정의 스릴러 작품을 접한 뒤로 트라우마가 생긴 독자라면 그늘 출판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본 서평은 그늘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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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시간을 줄여드립니다 - 1년간의 생산성 실험이 밝혀낸 잘되는 사람의 루틴
크리스 베일리 지음, 황숙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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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부족하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안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하다 보면 괜찮아질 수도 있으니, 다른 데에 시선 돌리지 않고 우직하게 하기?

아니면, 나는 안될 사람이라고 포기하기?

 

 

그러지 말고, 한 번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 거의 모든 직종에 적용할 수 있는, 생산성 높이는 25가지 비결이 있다.

크리스 베일리의 「일하는 시간을 줄여드립니다」가 바로 그 비결이다.

 

 

 

 

 

 

직접 해본 생산성 프로젝트로 발견한, 크리스 베일리의 25가지 허니버터 팁

 

 

크리스 베일리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생산성만을 위한 다양한 실험들을 했다고 한다. 생산성에 대한 노하우를 발견하고, 한 권의 책으로 발간되기까지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걸린, 이 책은 그야말로 한 사람의 집념으로 일구어낸 생산성의 액기스라 할 수 있다.

 

 

 

▲ 25가지, 하나씩 천천히 해낸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서문에서 저자는 뛰어난 생산성 비결의 핵심을 시간, 집중력, 그리고 에너지라고 일단 압축해서 말한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며 이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25가지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안 좋은 습관이 생산성에 영향을 끼칠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문제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고,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은 원인 설명과 함께 이 루틴을 해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말한다.

 

 

 


 

 

 

각 장 끝에는 독자가 스스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전 과제가 주어진다. 이 페이지에서는 독자가 해야 할 것을 간단하게 알려주고, 거기에 친절하게 소요 시간까지 적어주니 생산성 향상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꼭 도전해 봐야 할 것.

 

 

 

 

 

 

물론 저자 크리스 베일리의 환경이 모든 독자들과 비슷하지는 않기에, 이 책에서 제안하는 모든 노하우를 바로 삶에 적용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25가지 노하우 중에 단 하나라도 뭔가 얻게 된다면 의미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나의 경우, 지난주부터는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다이어리에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번 주부터는 내가 미룬 일을 왜 미뤘는지 객관적으로 검토해 보기 시작했다.

 

 

 

▲ 나는 이 책에서 얻은 루틴 일부분을 다이어리에 꾸준히 기록하려고 한다.

 

 

 

또한, 책에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팁 외에도, 당장 하기는 다소 힘들어도 언젠가 필요할 때 시도해 보고 싶은 루틴도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카페인, 알코올 줄이고 물 위주로 마시며 건강한 식습관 지키기라던가, 나에게 어려웠던 명상의 방법 같은 것들이 있다.

 

 

 

▲ 돈도, 건강도, 생산성도 챙기는 물을 마시자.

 

 

 

크리스 베일리의 생산성 루틴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적용시키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겠지만, 저자가 10년에 걸쳐 알아낸 것들을 하나의 책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손해가 아니지 않나. 생산성에 있어 더 좋은 효율을 찾는 사람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이 책을 읽고 스스로의 것으로 만드는 게 좋을 것이다.

 

 

 

 

 

 

본 서평은 알에이치코리아(RHK)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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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틈에 빛이 든다 - 책에서 길어올린 생각의 조각들
류대성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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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문장으로 인생의 틈을 빛으로 채우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제목처럼 오늘날엔 그늘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눈에 띄게 보인다. 그런 것들을 보다 보면, 내 인생에 그늘진 어두운 틈만 도드라져 보인다.

 

 

이 틈도 내 인생에 일부인데, 나는 이것마저 사랑해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초록비책공방 출판사에서 출간된 한 권의 에세이, 류대성의 「모든 틈에 빛이 든다」는 이런 우리 모두의 삶에 대입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건넨다. 크게 선택, 속도, 공존, 시선, 시간, 성장의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를 엮었는데, 저자는 순서 상관없이 관심이 생기는 주제로 가서 읽어보길 권하고 있다.

 

 

 

 

 

 

이 여섯 가지 주제는 모두 우리 삶의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요소들이다. 만약 삶의 어떤 부분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하나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고해상도로 바라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 걸까,

매 주제마다 저자는 자신만의 넓은 인문학적 소양으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의 이야기를 포착한다.

 

 

스타벅스 프리퀀시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나, 편의점 1+1 행사에서 주객전도를 뜻하는 왝 더 독wag the dog 현상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기도 하고, 영화 용어인 페이드인 fade in, 페이드아웃 fade out으로 우리 인생에 희망을 불어넣기도 한다.

 

 

 

 


 

 

이런 작가의 시선들을 책을 통해 같이 바라보다 보면, 삶의 그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꺾이지 않을 용기가 생기는 느낌. 설령 인용된 작품이 잘 모르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작가가 잘라낸 조각으로부터 작가의 생각,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접했는데, 한 권의 책으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 작가로는 류대성 작가님이 처음이다. 완독 후에 류대성 작가님 자체에 관심이 생겨 블로그까지 찾아가 봤는데, 장르 불문하고 엄청난 양의 서평을 블로그로 기록하고 계셨다. 수많은 작품들을 인용한, 책 속의 문장들은 작가님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셨기에 가능하신 부분이지 않을까.

 

 

광원이 달라지면 그림자의 위치도, 길이도 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는 빛이 전혀 들지 않아 어두운 부분도 다른 곳에서 비치면 빛이 가득 채워질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이다.

내가 바라보면 어두워 보이는 부분을 밝게 해주는,

깨진 도자기를 금속으로 수선하는 긴쓰쿠로이[金繕い]라는 일본의 도자기 기법처럼,

틈마저도 빛날 수 있게.

 

 

인생에 정답이란 것은 없겠지만, 이 책에서 주어지는 다른 각도의 시선으로 인생의 틈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빛으로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초록비책공방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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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약시대 - 과학으로 읽는 펜타닐의 탄생과 마약의 미래
백승만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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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닐의 위협, 더 이상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지금 읽어야 할 책

 

-

동아시아 출판사의 의치약·생명과학 브랜드, 히포크라테스에서 지난번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에 이어 마약을 다룬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백승만 교수의 「대마약시대」. 지난 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가 전반적인 마약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면, 이번에는 펜타닐이 주인공이다.

 

 

 

 

 

 

-

나는 다수의 마약 관련 작품을 접하면서, 작품에 큰 매력과 재미를 느끼고, 지금도 사실 즐겨보는 편이다. 하지만, 수리남에서 코카인을 수출하는 한국의 목사 전요환을 잡기 위해 DEA와 공조를 하며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그려낸 「수리남」을 볼 때와,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 1」에서 많이 익숙한 교실에서 친구의 시험을 방해하기 위해 몰래 목뒤에 펜타닐 패치를 붙이는 장면을 봤을 때의 느꼈던 감정은 솔직히 결이 많이 다르다.

 

 

전자는 적어도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후자는 어쩌면 내 일 혹은 내 주변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다.

 

 

-

펜타닐이 우리 앞에 이렇게 쉽게 등장하게 된 것은, 펜타닐이 흥분제 계열이 아닌, 진통제이기 때문. 사실 펜타닐은 전문가의 감시 아래 적절하게 사용하면 뛰어난 진통 효과를 보여준다. 심지어, 패치 형태로 휴대성까지 좋다. 하지만 문제는 펜타닐이 만들어졌을 때 강한 중독성을 우려한 사람이 한 사람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펜타닐의 승인을 강하게 반대했던 로버트 드립스가 죽고 나서야 펜타닐은 미국 식약처에서 승인되었고, 진통제로써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처방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한국도 펜타닐의 위협을 피해 가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무분별한 처방이 펜타닐 확산의 시발점이 되었고, 젊은이들과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약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는 처방이 까다로워졌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어버린 것이다.

 

 

 

▲ 미성년자 마약 중독은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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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수많은 마약 중에 펜타닐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유도, 펜타닐이 진통제라서이다. 누구나 통증을 느끼면 진통제를 찾는다. 진통제를 처방받고 마약중독자가 된 사례는 굳이 펜타닐이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꾸준히 반복되어왔다. 모르핀이 있었고, 그리고 옥시콘틴, 지금은 펜타닐의 시대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약물이 우리에게 다가와 중독시키고 갈지 모르는 일이다.

 

 

책에는 이러한 사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의사가 약이라고 해서 복용했는데, 치명적인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들. 국내외 막론하고 과거의 사례들을, 전문가의 견해와 함께 읽다 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통성 약물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고통 없는 쾌락이 건강한 걸까?

 

 

 

-

저자는 마치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

스스로 마약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P.271)

/

 

 

 

 

 

 

히포크라테스 출판사의 두 권의 마약 관련 책,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와 「대마약시대」을 완독한 나는 책에서 마약이 주는 일시적인 행복감 뒤에 어마 무시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배웠고, 스스로 마약을 피할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궁금하다고 다 경험해 볼 필요는 없다. 적어도 마약에 관해서는 두 권의 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한국도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라 부르기 힘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건강하게 스스로 마약을 피할 힘을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히포크라테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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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승리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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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지난 10월 암으로 별세한 영미권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이 시공사 출판사를 통해 차례차례 출간되고 있다. 나는 국내에 3권 정도 선보였을 때, 도서관에서 「야생 붓꽃」을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12권째다.

 

 

글릭의 시는 고전 신화, 종교, 자연 등을 다루며 그 안에서 고요한 분노나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지난 「야생 붓꽃」(1993년에 선보인 시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에서는 어떤 온실이나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쓴 듯, 말없이 존재하는 꽃의 목소리가 되어 시를 노래했는데, 이번 「아킬레우스의 승리」에서도 여전히 자연물에 영감을 얻으면서도 아버지를 상실한 슬픔에 신화적 요소를 차용하며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

그녀의 인생에 다가온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

그중에서도 「변신」이라는 시는 아버지의 죽음의 과정을 그려낸 서사시이다.

 

 

 

 

 

 

/

 

한 번은, 어느 순간의

제일 짧은 순간에,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다시 현재에 살아 있었다고;

그러자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먼 사람이 해를 똑바로

응시하듯,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끝난 일이기에.

 

 

그러다 아버진 빨개진 얼굴로

그 계약을 거부했다.

 

 

─변신Metamorphosis 中

/

 

 

마치 의료기술이 극도로 발달되어 기계장치로 생명만을 유지하는 오늘날의 아이러니함을 의연히 거부하는 듯, 아버지는 '그 계약'을 거부하고, 인간 삶의 순리대로 걸어간다.

 

 

그 뒤로, 「앉아있는 모습」이라는 시에서 글릭은 한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를 그려내고 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어질 것.

 

 

 

 

 

 

또, 이번 시집, 「아킬레우스의 승리」에서는 신이나 신화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했는데, 영생을 누리는 신들에 반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슬픔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으로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글릭은 표제작 「아킬레우스의 승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전설의 출처는 생존자다.

버려진 존재다.

 

─아킬레우스의 승리The Triumph of Achilles 中

/

 

 

여기서 전설은 그녀의 아버지고, 전설의 출처는 글릭, 그녀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던 부분. 이 시집 자체가, 글릭만이 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아닐까.

 

 

 

 


 

 

하나의 작품, 두 권의 책.

 

 

시공사의 루이즈 글릭 시집에는 매 권마다 번역가 정은귀의 해설 책자가 별도로 제공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에도 딸림 자료로 만나볼 수 있을 것. 시가 평소 어렵더라도, 번역가의 해설과 이야기가 담겨있는 별도 책자를 참고하며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정은귀는 이렇게 말했다.

 

 

/

시인이 먼저 밟은 그 길은 우리 모두가 걷는 길이고, 누구도 자신이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그 길을, 그 공부를, 나도 따라 걷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안이 된다. (P.15)

/

 

 

루이즈 글릭의 시를 통해 우리는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역자, 정은귀가 당연히 글릭의 시를 가장 뜻이 어울리는 한국어로 번역했겠지만, 번역 시는 늘 원문도 같이 즐겨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시집에 원문이 제공되지 않는 부분이 내심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대부분의 한국의 번역시집에서는 원문이 제공되지 않겠지만, 원문 제공은 계약상 문제가 있어 같이 제공되기 힘든 걸까? 개인적인 소소한 아쉬움이었다.

 

 

 

본 서평은 시공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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