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승리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지난 10월 암으로 별세한 영미권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이 시공사 출판사를 통해 차례차례 출간되고 있다. 나는 국내에 3권 정도 선보였을 때, 도서관에서 「야생 붓꽃」을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12권째다.

 

 

글릭의 시는 고전 신화, 종교, 자연 등을 다루며 그 안에서 고요한 분노나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지난 「야생 붓꽃」(1993년에 선보인 시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에서는 어떤 온실이나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쓴 듯, 말없이 존재하는 꽃의 목소리가 되어 시를 노래했는데, 이번 「아킬레우스의 승리」에서도 여전히 자연물에 영감을 얻으면서도 아버지를 상실한 슬픔에 신화적 요소를 차용하며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

그녀의 인생에 다가온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

그중에서도 「변신」이라는 시는 아버지의 죽음의 과정을 그려낸 서사시이다.

 

 

 

 

 

 

/

 

한 번은, 어느 순간의

제일 짧은 순간에,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다시 현재에 살아 있었다고;

그러자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먼 사람이 해를 똑바로

응시하듯,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끝난 일이기에.

 

 

그러다 아버진 빨개진 얼굴로

그 계약을 거부했다.

 

 

─변신Metamorphosis 中

/

 

 

마치 의료기술이 극도로 발달되어 기계장치로 생명만을 유지하는 오늘날의 아이러니함을 의연히 거부하는 듯, 아버지는 '그 계약'을 거부하고, 인간 삶의 순리대로 걸어간다.

 

 

그 뒤로, 「앉아있는 모습」이라는 시에서 글릭은 한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를 그려내고 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어질 것.

 

 

 

 

 

 

또, 이번 시집, 「아킬레우스의 승리」에서는 신이나 신화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했는데, 영생을 누리는 신들에 반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슬픔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으로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글릭은 표제작 「아킬레우스의 승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전설의 출처는 생존자다.

버려진 존재다.

 

─아킬레우스의 승리The Triumph of Achilles 中

/

 

 

여기서 전설은 그녀의 아버지고, 전설의 출처는 글릭, 그녀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던 부분. 이 시집 자체가, 글릭만이 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아닐까.

 

 

 

 


 

 

하나의 작품, 두 권의 책.

 

 

시공사의 루이즈 글릭 시집에는 매 권마다 번역가 정은귀의 해설 책자가 별도로 제공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에도 딸림 자료로 만나볼 수 있을 것. 시가 평소 어렵더라도, 번역가의 해설과 이야기가 담겨있는 별도 책자를 참고하며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정은귀는 이렇게 말했다.

 

 

/

시인이 먼저 밟은 그 길은 우리 모두가 걷는 길이고, 누구도 자신이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그 길을, 그 공부를, 나도 따라 걷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안이 된다. (P.15)

/

 

 

루이즈 글릭의 시를 통해 우리는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역자, 정은귀가 당연히 글릭의 시를 가장 뜻이 어울리는 한국어로 번역했겠지만, 번역 시는 늘 원문도 같이 즐겨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시집에 원문이 제공되지 않는 부분이 내심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대부분의 한국의 번역시집에서는 원문이 제공되지 않겠지만, 원문 제공은 계약상 문제가 있어 같이 제공되기 힘든 걸까? 개인적인 소소한 아쉬움이었다.

 

 

 

본 서평은 시공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