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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 빼앗긴 세계문화유산 ㅣ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평점 :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_ 2. 빼앗긴 세계 문화유산] / 김경임 지음 / 홍익출판사 펴냄
약탈 문화재의 2번째 이야기는 [빼앗긴 세계 문화유산]이다. 전리품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를 품은 유산들이 강제로 약탈 당했다. 어느 시기에 어떤 작품들을 허망하게 빼앗기에 되었는지 알아보게 되었다. 더불어 반환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어떤 노력이 발하는지 알아본다.
영토 확장이라는 미명 아래 짓밟힌 문화유산은 탐욕의 결과물이 되었고 약탈을 당연히 여기는 시대가 있었다. 제국주의를 내세워 빼앗은 유산은 흩어져 버렸고, 문화재를 수집한다는 가면을 뒤집어쓴 채 그들의 행위는 정당화되었다.
긴 세월을 지나 문화유산 환수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힘들고 긴 시간을 지나게 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세계의 유산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기에 지루한 싸움이 될지라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워싱턴에서 시작한 나치 약탈 문화재에 대한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반환에 대해 불씨를 당기게 되었고 단지 문화유산을 돌려받는 것이 아닌 인권과 윤리의 문제로 영역을 넓혀갔다.
과거 역사를 청산하고 맞이하는 시대는 정의를 외친다. 여전히 세계의 유산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얼마큼의 유산들이 사라졌는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지라도 환수운동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책으로 기록되기보다는 약탈물로 기록된다. 융성한 국가의 뒷모습에는 전시 약탈의 흔적이 나타난다."(본문 발췌) 더글러스 릭비의 <문화의 회복과 서구의 새로운 전통>에서 발췌한 글로 시작된 2권의 첫 장은 세계 최초의 약탈 문화재인 [함무라비 법전]을 소개하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세계 최초의 법전이다. 기원전 1158년 이란(엘람 왕국)에 의해 약탈당한 최초의 문화재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프랑스 발굴팀에 의해 옮겨졌고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 중요도와 함께 담고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총 282개의 법조문으로 민사, 형사, 행정, 가족 등 일상생활을 담고 있으니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알아가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당시 파괴하지 않고 엘람 왕국이 왕이 새겨져 있는 함무라비 법전을 그대로 끌고 간 것은 당시 왕을 포로로 잡아간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의 한 편을 살펴본다.
함무라비 법전은 누구의 소유인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바빌로니아를 계승한 이라크인가, 처음 약탈한 이란인가, 이란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한 프랑스인가. 이란과의 협정으로 합법적으로 발굴한 프랑스는 여전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냉소적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거대한 유산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병인양요로 인해 프랑스에 약탈된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 296권이 미약하나마 우리에게 돌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약탈 문화재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집트의 유산 중 오벨리스크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 파리, 런던, 뉴욕 등에서 볼 수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주요 문화재이며 제국주의의 욕망의 축이 되었다. 현재 20여 개의 오벨리스크가 전 세계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고대 왕국인 악숨의 오벨리스크는 반환 운동이 일어난 지 50여 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만큼 환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 주장의 타당성은 기나긴 투쟁을 예고한다.
시민의 광장 '아고라'에 세워진 동상이 가지는 예술과 상징적 의미, '비너스'를 통해 문화재를 단순한 예술품으로 격하한 제국주의의 문화재 소유에 대한 단상을 살펴본다. 나폴레옹 전쟁시 패전국을 상대로 약탈한 문화재는 민족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민족주의를 발아시켰다. 역사상 최초 국제 문화재 반환 문제를 논의한 빈 회의는 유럽 전승국에 한정되는 등 제한적 반환 조치에 국한되었다.
유럽 대형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세계 문화유산들이 과연 적법한 소유인지, 그들의 권리가 여전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난지 못하고 인류의 박애주의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 이집트, 아프리카 및 유럽 국가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또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환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우리의 유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안평대군의 '몽유기'와 그의 꿈을 그려낸 안견의 '몽유도원도', 계유정난으로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안평대군의 삶이 문인으로서, 예술인으로서 그의 숨과 흔적이 수양대군의 정책 아래 사그라든 것이 못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린다. 당시의 금기로 빛을 보지 못한 몽유도원도가 음지를 통해 현재 일본의 소유 아래 놓여 있는 현실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쥐고 놓지 않으려는 그 탐욕, 위대한 우리의 유산으로 민족의 정기가 담긴 '몽유도원도를 돌려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5공화국 시대 추방당한 외교관이 개인적으로 밀반출한 우리의 문화재 및 경매를 통해 흩어진 문화재의 환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흔적을 찾기 힘든 문화재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안타까움과 더불어 울분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