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아이가 개미 같은 곤충의 다리를 자른다던가 혹은 밟아 죽이며 노는 것을 볼 때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된 폭력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성적으로 불완전한 어린 아이의 행동이기에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반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아닌 다 큰 성인이 그것도 높은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몸서리 칠 만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던가? 또 이 사회는 약자에게 보호와 관심보다 더 강도 높은 폭력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지난 역사와 현재의 사회가 명백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애를 가지고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할 때 진중권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상은 언제나 소외받는 사람에게 향해 있고 그래서 소외받는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에 불쾌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다.

폭력과 상스러움은 다소 과격한 제목 하에 그 가해자를 향한 분노를 표현한 책이다. 기득권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기득권을 이용해 정의를 유린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범죄이다. 그래서 이 책에 비난은 받는 집단과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런 정의를 범한 범죄자들이다.

언론기관이라는 특정 권력을 통해 진실을 숨기고 사람들의 민심을 흔들어 놓는 조선일보가 그렇고 과거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도 국가와 사회 안정이라는 명복으로 지금껏 당당하다 못해 성희롱과 성폭행을 일삼고 더러운 정치자금이나 차로 받아내는 한나라당이 그렇다.  또 문학과 학문의 힘을 빌어 집단적인  폭력성을 촉구하는 이문열과 탁석산이 그렇다. 거기에 추가로 동성애 등과 같은 사회전체의 폭력성에도 비판한다.

이런 특정 집단과 사회에는 특정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폭력을 통해 커다란 쾌감을 느끼고 상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명분은 흔히 대의 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쉬 깊은 감동을 느끼는 말들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양극단은 맞닿아 있다, 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자유와 경쟁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어찌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와 민족이 개인보다 앞선다고 믿는 우익과 구별할 수 없는 것인지... 어쨌든 우리의 문제는 양극단이 맞닿아 있다는 좌와 우가 같이 공존 하여 서로 경쟁을 통한 발전이 아니라 한쪽만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과 상스러움이라는 특징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우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도 사회 정의도 행복한 미래도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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