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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김탁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만의 어투가 있다는 것-소설가는 문체라고 하겠지만-그것은 대단한 재능임이 틀림없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성장과정에서 혹은 타고난 재능에서 얻어진 것이라면 행운이라 불려도 좋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그렇다. 자신만의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런 재주를 지닌 소설가. 여기서 문체라는 것은 단순히 어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안목도 그리고 소설을 씀에 있 어서의 태도도 포함하는 것이다.
나, 황진이란 소설을 읽고 한참을 감동에 휩싸여 그의 글을 찾아 읽겠다고 다짐했었다. 그의 비평도 읽어 보았고 드디어 또 다른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 바로 그 소설이다.
마치 삼류 연애소설 같은 제목이 마치 어설픈 유언장 같은 제목이 눈에 거슬렸지만 소설의 이야기 전개 내내 그 제목의 뜻을 유지하면서 맛깔스런 그의 입담을 늘어놓고 있다. 저자가 말했던 추리소설의 형식을 통해 결국엔 인간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충분히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개인적으로 스케일이 크고 주제가 큰 소설을 즐겨 읽긴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그런 소설들은 소설가가 그의 이야기에 휩싸여 작가가 작품을 이끌지 못하고 휩싸이는 형국을 나타낸다. 소설은 말이고 작가는 그 말을 이끄는 사람이다. 훌륭한 작가는 그 말을 부려 자신의 의도대로 가고자 하는 곳을 갈 수 있어야 한다. 말이 난동을 부려 엉뚱한 곳으로 간다면 훌륭한 마부가 되지도 못하고 목적지에도 도착하지 못한다. 마부와 마부의 재량에 맞는 말이 중요한 것이지 아무리 천하의 명마라 해도 마부가 말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하여 소설가는 소설을 쓸 때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을 이야기로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김탁환은 그 말의 습성을 알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여기저기서 수줍은 듯 드러나는 고증을 통한 인용은 그의 소설이 힘을 갖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게끔 해준다. 단순히 그의 문체는 여성스럽고 아름답지만 그의 글 전체가 커다란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요즘 많은 소설가들이 글을 쓰는 것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소설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무기로 하여 무책임하게 글을 쓰는 듯 하여 안타까운 이때 이것이 바로 그의 소설에 애정을 갖게끔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