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은 대학생활을 캠퍼스 낭만이니 하면서 표현하지만 나에게 대학생활이란 지독한 방황이었다. 집안문제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변한 환경에 대해 적응을 못한 것뿐만 아니라 모교의 부도로 인한 잦은 휴강 등 이런 것들에 따른 회의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난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해온 자아의 발견이랄까 하는 것들의 구체화에서 오는 고독감 및 허무함 등등 복합적인 상황들 때문에 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려갔고 또 나중엔 잦은 반항이나 혹은 방탕한 생활들로 보냈던 나날들.. 이런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날 추스리게 된 계기는 아마 주위의 선배나 친구, 가족이 아닌 단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원래 이문열이 썩 맘에 와닿지 않아서 그의 책을 읽기를 꺼려했기에 이 책을 대학에 와서야 읽게 되었고 나의 독서 편식에 크게 후회하게끔 했던 책으로 더 기억이 남는 책..

이 책의 주인공도 나처럼 대학생활에 많은 방황을 했다. 자신의 예술관과 그것을 정립화하지 못함에 따른 불안감 그리고 잦은 예술관의 흔들림.. 물론 방황의 원인이 이것만은 아니다. 친구의 죽음과 자신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 당시의 사회상 등등. 난 이 책의 주인공 심정을 안다. 분명 내가 생각한 것이 옳다고 확신은 하고 있는데 단지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의 답답함. 또는 자신의 생각이 흔들릴 때의 초라함. 그리고 자신이 걷고 있는 것이 옳은 길일까 하는 의구심 혹은 안개 낀 곳을 헤매는 듯한 불안감. 그리고 도로 안내판이나 지도 하나 없는 오지에 인도자 없이 떨어진 듯한 당혹감..

책을 읽으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소설의 줄거리 혹은 주인공의 성격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착각인데 물론 소설이란 것이 우리의 모습을 그려놓는다는 입장에서는 일부의 모습이 비슷하게 그려지는 면도 있지만 대부분의 모습은 소설의 극적 효과에 눌려 혹은 소설의 감동이 마치 사람들이 애인과 행동 하나하나 버릇 하나하나 닮아지려고 하고 실제로 닮아짐으로써 서로의 동질성을 행동으로 확인하려는 듯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모습과 소설의 줄거리를 나와 똑같아, 내 이야기야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보통은 감정적인 상태이다 보니 현명하게 앞을 볼 수 없고 실제로 책의 큰 줄거리보다는 일부분에 현혹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이를 극히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어찌 된 일인지 이 책의 주인공의 많은 부분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날 발견하고 그래 재미있게 읽다 보니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되었구나 라는 판단에 몇 번이고 다시 읽었지만 분명 나의 기본적인 소설관에 근거하면 아니어야 하는데 여전히 주인공의 생각이 행동이 그리고 방황이 내 이야기와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번을 반복해 읽고 난 후 결론 비슷한 걸 말하고자 하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마치 날 격려하는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마치 주인공의 방황의 해결이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 함으로써 나의 방황 해결을 기원하고자 하는 나의 작은 소망이 아니었나 한다. 그럼 아직도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 하는 버릇을 못 버리는 건 내가 방황을 끝냈다고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내 내면에 있는 진정한 방황은 아직 결말을 못 얻은 채 끝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러나 아직 방황을 끝내지 못했다고 해서 예전처럼 힘들어 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듯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었으며 구원'이기 때문이다. 아마 대학 시절 힘들어했던 이유는 나의 방황은 정말 내가 절망하지 않고 실체는 없는 허상에 혹은 잠깐 내 앞에 있는 괴로움을 회피하고픈 맘에 일어난 꾀에서 나오는 형체 없는 것들이었고 이는 진정 내가 방황해야 할 것도 아닌 내가 내 몸과 맘을 다 바칠 곧 진정 극도의 절망감을 느낄 만한 것들이 아닌 것들에 괴로워하고 방황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진정 나의 몸과 마음이 깍이듯 아픈 절망이 두려워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고 결국 치열한 정열도 구원도 얻지 못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대학 시절을 보냈을 뿐이다.

책에서도 말한다.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바다 역시도 지금껏 우리를 현혹해온 다른 모든 것들처럼 한 사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 버린 우리를 그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갈매기는 날아야 갈매기이고 나란 인간은 나답게 살아야 나다. 난 내가 처한 상황 진정한 나의 고통을 피하려고만 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 받기만 하고 비우고자 하지 않았다. 절망이 존재의 끝이 아닌 그 진정한 출발임을 인식하지 못한 난 날기를 포기한 갈매기처럼 내 자신을 망가뜨리고 포기하려고만 했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것이며 우리의 삶도 외재적인 대상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서 시인되고 충만되어야 할 것이었다.'

옳다..

나의 방황은 진정한 고민을 치열한 절망을 회피한 것도 있지만 나의 절망을 내가 해결하려는 의지는 조금도 갖지 않은 채 내 주위상황 혹은 가족에게서 혹은 선배에게서 해결하고자 하는 회피주의자이나 의지박약자 였다. 내게 주어진 잔을 난 그것이 쓰다는 이유 하나로 다른 이에게 대신 마셔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낯뜨거운 젊은 날의 기억인가. 아마 젊은이란 미완의 투쟁이며 또한 가장 아름다운 행동가일 것이다. 가장 아름답기에 그만큼 조심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또 애처롭게 보일 수도 있고 위태로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름답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취했을지라도 내게 주어진 잔이라면 마땅히 참고 마실 것이며 내게 주어진 삶을 남이 아닌 내가 이끄는 삶을 살 것이며 회피가 아닌 진정 절망할 것에 절망하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책의 주인공처럼 '바다에 감상을 그리고 익지도 전에 병든 내 지식을' 버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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