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읽었던 <우리 도시 예찬>은 도시로의 지향에 관한 책이었다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도시를 떠난 삶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니어링 부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그 니어링 부부 중 남편 스코트 니어링이 죽은 후 아내 헬렌 니어링이 스코트 니어링에 대한 기억을 적은 에세이다.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였던 스코트 니어링을 제도권 교육에서는 배척했지만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 평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진리를 향한 끝없는 열정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있다. 또한 우리 삶의 모습들이 그동안 소비 문화에 얼마나 많이 길들여져 있었던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진정한 삶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자기의 삶에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고 그 소비 역시 자신의 땀흘림의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과격한 사회주의라고 배격하는 이들도 있으나 사회주의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그의 이데올로기 혹은 지위가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가 우리 삶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있다. 만일 그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일지라도 -실제로 그의 사상은 사회주의라고 하는 편이 옳은듯 싶다.- 그의 사상이 사회주의라고 배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사회주의가 우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보다 정의로운 것이라면 그 사회주의란 마땅히 환영될 사상이다. 그런 뜻에서 난 니어링의 사상에 동의를 한다.

지난 한해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우리의 식생활은 물론 주거환경까지 웰빙이라는 단어가 침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새집 증후군과 같이 기존에 익숙해 오던 도시 주거 환경에 대한 협오감까지 나타났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원주택이라는 것이 많이 부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와 함께 귀농현상과 그에 대한 미디어의 부각은 바로 주거환경에 대한 신웰빙(Neo Well-being)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나타난 니어링 부부의 삶이 우리나라에서 재탄생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미디어에서 부각시키고 있고 또한 마치 유행처럼 일고 있는 전원주택과 귀농현상은 웰빙이라는 생활패턴의 한 양식일뿐 니어링 부부가 제시하는 조화로운 삶(Good Life)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왜냐하면 웰빙은 기본적으로 잘사는 법이라고 직역되는 그래서 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삶에 대한 패턴이기 때문이다. 즉 웰빙은 삶의 양식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혹은 상류층이 되기 위해 혹은 권력을 잡기 위해라는 기존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안 즐겁고 행복하고 편하기 위한 기준으로 그 방법에는 역시 자본주의 경제하에 축적된 자본의 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Good Life)는 이 웰빙과 다르다. 행복은 조화로운 삶에서 얻을 수 있으며 조화로운 삶은 생존을 위한 소비는 조화로운 삶을 깨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따라서 그들은 소비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떠났고 그들의 소비는 자신들이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것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먹을거리 대부분을 자신의 텃밭에서 구하고 또한 육식을 포기한다. 옷이나 기타 직접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은 자신의 텃밭에서 기른 갖가지 채소를 장에 팔아 그 돈으로 교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같은 삶은 근본적으로 웰빙과 다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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