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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ㅣ 범우 사르비아 총서 301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소설은 한마디로 담담한 수묵화이다. 붓이 간 곳보다 그냥 하얀 여백이 더 많은 수묵화에서 우리는 서양화에서 느끼는 갑갑함보다 넉넉함과 평화스러움을 느낄 수 있듯이 <압록강은 흐른다>에서도 화려한 묘사나 기발한 상징과 복선 암시는 없고 거기서 우리는 평화로움을 엿볼 수 있다. 기지 번득이는 사상도, 그렇다고 또 생에 대한 치열한 도전도 없다. 앞으로의 생보다 지난날의 생이 더 많은 늙은 노인의 자기 독백마냥 그냥 편안하게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우리의 이야기.
개화기의 혼란의 시절..
구 시대 사상이 무너지던 시절..
그러나 그 사상은 시대에 뒤떨어진다 할지라도 고결하고 아름답다.
정겹다.
그리고 그 시절이 그립다.
넉넉하되 그러나 자기 수신에는 치열하다.
비록 남이 보기에는 세월아 내월아 하듯 삶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실상은 세상을 보다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그리고 올바로 알기 위해 정신을 항상 맑게 한다.
그것이 우리네 진정한 선비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선조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르는 자연과학이 초등학생의 시험문제로 나오고 학생들은 아주 쉽게 그것을 푼다.
미국이나 독일 그리고 영국 등이 미지의 세계도 아니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선조 즉, 선비처럼 넉넉하고 여유롭게 그리고 타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을까?
한시나 섟?또 사략이나 읽던 선비가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를 읽고 링컨 전기문을 흥미롭게 읽는 것은 읽는 것이 아니다. 진정하게 느끼고 감동을 받는 것이다. 왕도 아니며 그렇다고 위대한 사상가도 아닌 또 위대한 시인도 문인도 아닌 링컨의 일생을 미륵의 아버지는 몸으로 치를 떨면서 감동을 받는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선비가 그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힘이 있던 한 서양의 지도자에 감동을 받아 눈물 흘린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념의 일환으로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던 링컨의 사상과 리더십을 이해했기에 그는 눈물을 흘린 것이다. 자신의 소신과 우리 유교에서 이야기했던 왕도정치와 인본정치를 그는 링컨의 일생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가 서양을 힘이 강한 나라라고만 알았다면 비록 그보다 힘은 약할지언정 오랑캐일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링컨을 알고 그래서 미륵에게 서양을 공부하라고 말한다.
우리네 선비는 그렇다.
꼬장꼬장하고 고리타분하며 고지식하고 또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본받을 것이 있다면 한없이 자기를 낮추고 그 본받을 점을 배우는 그런 정신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선비이며 그것이야말로 고결한 정신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그 옛날 선비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또 알마나 위대한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단편에 불과하며 그 단편에 취해서 우리는 쉽게 우리네 선비는 고리타분했다고 더러운 쓰레기 마냥 매도해버린다.
미륵은 정말 설득력있게 그러나 한 번도 큰소리가 아닌 잠잠한 소리로 무겁게 날 일깨우고 있다. 그렇게 미륵은 우렁차게 날 깨우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의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것은 우스운 작업일지라.. 그냥 있는 그대로 그냥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글에 흠뻑 날 적시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