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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레스 공항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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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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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레스 공항을 떠나며 - 한말숙 소설선집
한말숙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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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는 2002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911 테러 직후 미국에 사는 딸의 집에 방문하는 노년 여성의 이야기다. 교수인 남편이 미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초청되어 주최측으로부터 비즈니스석 티켓을 제공받는다. 화자 본인도 잘 사는 사위가 티켓을 끊어주어 미국 나들이를 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911 테러 직후라 시국이 어수선해 화자는 갈까 말까 망설인다. 고심 끝에 가는 것으로 결정한 뒤 미국 가서 잘 먹고 쉬고 나니 문득 미국 오는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이 텅텅 비었던 것이 떠올랐다. 비즈니스석 티켓을 싼 이코노미석으로 바꾸고 빈좌석까지 넓게 이용할 생각에 뿌듯해하는데 막상 덜레스 공항에 가보니 이코노미석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탄 뒤 홀로 똑똑한 체를 하다가 고생하게 된 점, 과거 해외 여행을 하려면 겪어야 했던 불편들, 남편과 둘이 유학하던 당시의 에피소드, 한국의 위상이 한층 올라온 것에 대한 소회 따위를 떠올리다 보니 인천에 무사히 도착했고, 갔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데뷔작 <신화의 단애>는 1957년 작품이다. 미술대학생 진영은 며칠 전 방세를 밀려 화구 일체를 빼앗기고 집도 없이 떠돌고 있다. 며칠 몸을 팔아 생활비를 벌 생각을 하기도 하고, 같은 과 남학생의 집에 신세를 지기도 한다. 우연히 얻어걸린 놈팡이에게서 큰 돈을 받게 된 진영은 남자가 빌린 호텔에서 고흐의 소묘집을 보고, 위스키를 마시며 실존을 재확인한다. 마음이 있는 경일에게 사랑한다고 써보내려다 그저 보고싶으니 어서오라고 편지를 끝냊은 진영은 베드에서 일어나 창가에 스케치북을 들고 앉는다. 창밖은 밤이었고 무수한 불빛이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이밖에 미국에 여행갔다가 현지 교인들과 함께 병문안을 가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이준씨의 경우>, 전쟁통에 헤어진 쁘띠부르주아 서울대 출신 청춘남녀의 재회를 그린 <초콜릿 친구>, 외국인과 결혼하려는 자녀 문제를 소재로 쓴 <사랑에 지친 때>, 중년 여성화가의 정념과 욕망의 변화를 관찰한 <여수>, 어린딸이 사경을 헤매자 신에게 기대었다가 딸이 회복되자 신과 적당히 타협하는 <신과의 약속>, 호상을 치룬 집안의 소소한 풍경을 다룬 <행복>, 거문고만 탈줄 알지 여성과의 관계나 돈에는 숙맥인 가인을 다룬 <광대 김선생>, 갓 결혼한 젊은 사내가 홍수통에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을 건져내려다 죽다 살아난 뒤 새색시 품으로 돌아오는 <장마>, 노파와 고양이를 내세워 스냅샷을 보여주는 <노파와 고양이>가 실려 있다.

딱히 와 닿는 작품이 없다. 초기 작품은 실존주의의 겉껍질을 다소간 건드리며 삶의 비의를 해석해보려는 시도라도 보이지만, 중기 이후의 작품은 그저 가벼운 터치로 중산층의 삶의 편린을 드러낸 뒤 적당한 감상을 곁들이는 식이다. 라디오 사연으로 소개될 법한.

한말숙은 1931년생으로 출생지는 경남 사천으로 알려져 있다. 책 날개에는 서울로 표기되어 있으나, 아버지 한석명이 일제시대 경찰 간부를 지내다 사천군수를 지낸 이력이 있으니 아마 사천이 맞을 것이다. 오빠 한복 역시 일제시대에 판사를 지낸 인물인데 부자가 나란히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언니는 소설가 한무숙이고, 남편은 국악인 황병기다.

아버지와 오빠의 화려한 친일 이력 덕택에 대단히 윤택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며, 전쟁통에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했다가 1955년에 졸업을 했다. 소설가 박완서와 대학 동기로 친한게 지냈다 한다.

1957년 단편 <신화의 단애>로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김동리와 이어령이 작품의 실존주의 여부를 두고 신문지상에서 일주일간 논쟁했다 한다.

50년 이상을 소설을 썼으며 1993년 <아름다운 영가>로 노벨문학상 추천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러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평가는 인색한 편이다.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에는 1957년부터 2005년 사이 발표된 소설 중 작가가 선별한 작품을 모아놓은 선집으로, <여수>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영문단편선으로 출판되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985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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