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를 보는 남자
임영태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와 헤어진 후 비디오 대여점을 차려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니지만, '충일함' 이 있는 삶을 사는 남자이다.

비디오 가게는 안산 초입에 간판도 없이 덩그러니 있었지만 경쟁 업체가 없어 그럭저럭 밥벌이는 되었다. 비디오 가게에는 사흘 돌이로 한번씩 '소주 사먹게 삼백원만' 달라는 거지가 출근했고, 때로는 일탈을 꿈꾸며 '문화 비디오'를 틀어 달라며 유혹하는 아줌마도 출입한다. 비디오 테이프를 죽자고 반납하지 않던 카페 여종업원은 술값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변상하려 하는가 하면 한밤중에 깡패들로부터 도망쳐오는 대학생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날 비디오 반납기에 비디오테이프 대신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남자를 향한 연서였다. 연서는 어느 순간 남자의 참여를 종용했다. 편지를 읽은 것이 틀림 없다면 파란색 종이를 문에 붙여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남자는 편지가 끊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파란색 종이를 붙인다. 

다음 번 편지에는 무선호출기번호와 이름만 적혀 있었다. 호출기 번호로 연락을 할 마음까지는 없었던 남자가 어느날인가 혼자 술을 마시다가 노래방에 간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다 울컥한 마음이 든 남자가 호출기로 연락을 하고 여자와 안양에서 만나게 된다. 여자는 단아함이 베어 있었는데 단아함이 절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그 여자가 절제해 온 것은 삶의 일탈에 대한 절제와 고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운명과 같은 일탈을 꿈꾼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운명을 느꼈다고 생각했기에 편지를 보냈을 터였다. 그날 밤 남자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여자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그날 헤어질 때 남자는 여자가 다시는 자신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 느낀다. 이유가 무얼까 고민하던 중 남자는 자신의 삶에 '충일함' 이 있기 때문에 일탈이나 모험이 요구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자가 원하는 '운명'과 자신의 '충일함'은 함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 갑작스러운 치기에 남자는 여자의 호출기에 가게 번호를 남긴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는 '가게 문이 아직 열렸는지' 묻는 손님의 전화였다. 얼마간 기다리던 남자는 가게 셔터문을 닫는다. 가게 안에서 다시 전화가 울린다. 남자는 보나마나 '가게 문이 열려있는지 묻는' 전화일 것이라 애써 생각한다.

 

임영태의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를 읽으면서 포복절도했던 기억이 난다. 군 제대 후 이렇다할 직장도 없는 세 명의 반건달 이야기였는데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잠깐 얹혀 살았던 자취방의 풍경이었다. 그 자취방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세 명의 반건달들이 어엿한 성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소년은 더더욱 아닌 상태로 삶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 세명의 반건달들이 살던 자취방에 나는 대학 입학 전까지 한달을 얹혀 살았다. 큰형과 큰형의 친구들이었다.

<비디오를 보는 남자>를 읽으면서도 나는 크게 웃었다. 꼭 그 대목에서 웃으라고 작가가 써놓은 글이 아니었는데 그냥 포복절도했다. 삼류 주간지 기사가 온통 말초적이고 적나라한 내용인데도 끝에 가서는 꼭 한 마디는 일장 훈시를 붙여 놓았다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사촌 형제가 작당을 하고 지나가던 여자를 성폭행 했다는 기사 끝에,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살기 힘들지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옳지 않은 일은 서로 충고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마무리가 된다는 식인데, 주간지 기사가 죄다 그런식이라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해야 하지 않을까?'로 끝난다. 남자가 '너나 잘 해라!' 하는 대목에서 나는 뭐가 웃기냐고 물어보면 딱히 답변할 말이 없는데도 혼자 박장 대소를 했다. 임영태의 소설은 그런 대목이 있다. 뭔가 나를 웃기게 만드는.

고열은 가라앉았는데 목은 여전히 부어 올라 잠이 오질 않는다.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소견서에 떡 하니 '5일 이상의 격리 유지' 라고 쓰여 있어 부쩌지를 못하겠다. 한 이틀만 지내보고 증상이 가라 앉으면 마스크 쓰고 가서 견뎌 보는 수밖에.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7548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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