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박환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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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남긴 단 한편의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는 말테라는 이름의 젊은 덴마크 시인이 위와 같은 감상을 이야기하며 시작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모든 것은 지금까지보다도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언젠가 머물던 곳보다도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까지 나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구석이 있어, 지금은 모든 것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 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말테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는 시인의 시각을 갖고 싶어 한다. 그에게는 병원에서 사람들이 살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대량 생산' 이 이루어 지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 특유의 죽음이 자기 특유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드물게 될 것......(죽음도) 기성품으로 충당되는 시대'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공포와 맞설 수단을 강구했다. 아침까지 자지 않고 밤을 세워 글을 쓰기로 했다.

 

라고 결심한다.

 

말테의 이야기들은 지극히 불규칙적이고 사변적인 것들이다. 병원에서의 경험, 조국 덴마크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유년 시절의 유령 체험, 어머니와 누이 아벨로네에 대한 사랑, 잃어버린 연필을 찾던 공포스러운 기억 등이 1부에 기록되어 있다.

2부에서는 유년 시절의 회상이 이어지면서 좌절된 왕들의 이야기, 죽은 자들의 이야기, 성자와 신, 독서를 통해 알게된 인물들, 여인들, 그리고 '돌아온 탕아'의 새로운 해석 등이 두서 없이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내재적 필연성 없이 나열된다. 다만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은 공포와 죽음, 그리고 말테의 여린 감수성이다.

 

젊어서 시를 쓰면 훌륭한 시는 쓸 수 없다. 시 쓰는 것을 여러 해 기다려 오랜 세월, 자칫하면 늙은이가 될 때까지 깊이와 향기를 모아서 써야 하는데, 결국 최후에는 겨우 훌륭한 시를 10행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동주가 프란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별 헤는 밤>에서 부르고, <쉽게 씌여진 시> 중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때 <말테의 수기>에서 그의 여린 감수성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261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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