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김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는 진보적 가치에 투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나 여성들의 후일담이다. 소설에는 운동 중에 만난 동지와 결혼한 세 쌍의 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수민과 철호, 인실과 영수, 미정과 태식이 그들이다. 세 쌍의 부부는 진보운동이 지향점을 잃고 비틀거리는 시기에 파국을 맞는다. 그 파국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숨기고 눌러둔 모순이 진보운동의 파국과 함께 드러난 것일 뿐이다.

수민은 활동을 위해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철호의 신념에 반하여 희빈을 낳는다. 그녀는 더 이상 현장 활동에 투신할 용기와 신념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철호는 운동적 가치에 반하는 그녀의 삶에 실망하여 수민을 버린다. 

영수는 진보운동이 좌절하자 기성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차를 갈아탄 인물이다. 그는 신념만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마저 기성 정치인의 그것으로 갈아탄다. 딸만 둘을 낳은 인실이 이 과정에서 시댁과  갈등을 겪고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 당한다. 결국 인실은 알코올중독이 되고 만다.

태식과 미정의 경우는 미정이 변화한 경우이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태식에게 실망하고 보험회사에 들어가 자본주의적 상품화 과정에 몸을 맡긴다. 그녀는 세련되졌으나, 그녀를 보는 수민 등은 위태로워 보일 뿐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는 소련이 붕괴한 뒤였다. 진보 진영의 반절은 전향을 하거나 좌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나머지 반절도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혼란스러워 할 때였다. 동아리방에 굴러다니던 잡지 <길>에서 사노맹의 백태웅이 쓴 글을 읽었다. "운동은 종교와 다르다. 천국에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활동해서는 안된다. 소련이 붕괴했다고 해서 우리사회가 변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운동은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었다.  

과정으로서의 운동을 해내기엔 그 시대가 너무나 험난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몸에 밧줄을 묶고 삐라를 뿌릴 사람을 뽑을 때, 연행과 폭행 그리고 징역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과정을 통한 변모' 였을까, 가치에 대한 신념에서 오는 '희생' 이었을까는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런 가치에 대한 희생이 인정받던 한 시기가 지나고, 소련이 붕괴하고 곧 올 것만 같던 사회는 점점 멀어져갈 때에 운동권 내부로부터 하나의 문제가 제기된다. 레닌의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것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졌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소설 속에서도 인실의 이야기를 통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그것이 비교되어 나온다. 그리고 중앙집권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받고 은폐되었던 여성들의 문제가 이야기된다.

사실 김연은 낯선 이름이지만 차주옥이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동아리방에 한권쯤은 꽂혀 있었던 <함께 가자 우리>의 차주옥이 바로 김연이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는 사실 후일담 소설의 전형이지만 공지영 등의 그것과 비견하여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작가가 현실을 고통스럽게 직시한 흔적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1809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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