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아사다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25년 만의 동창회에 참석한 신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아 술을 과하게 마신다. 취한 채로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가는 신지가 무거운 수트케이스를 끌고가는 이유는, 그의 직업이 속옷 외판원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에서 옛 은사인 노페이를 만난 신지는 잠시 과거를 떠올린다.

어렸을 때 신지는 좋은 집에 살았다. 신지의 아버지 고누마 사키치는 벼슬아치가 살던 고급주택가를 매입하여 부를 과시했다. 폭군인 아버지의 부는 날마다 늘어갔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고, 큰형을 윽박질렀다. 감수성이 예민한 큰형과 아버지가 크게 싸운 날, 큰형은 분함과 슬픔을 안고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 사건이 상처가 되어 신지와 어머니는 아버지와 의절한다. 아버지는 현재 일본에서 손꼽히는 그룹의 오너이지만 신지는 평범한 샐러리맨인 이유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던 신지가 문득 이상함을 느낀다. 역 주변 풍경, 지나치는 사람들...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 신지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해로 시간여행을 온 것이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주변을 살피던 신지는 자신이 워프한 날이 형이 자살한 날이었음을 깨닫는다. 부랴부랴 형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 헤매던 신지가 빠찡꼬 가게에서 형을 발견한다. 어른이 된 신지는 아직 어린 형을 운전기사 무라마츠의 집에 데리고 가 아버지와의 충돌을 피하도록 조치한다. 

꿈껼 같은 시간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신지는 형이 살아있는지 확인한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형이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얼마 뒤, 신지는 최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미치코와 밤을 보내게 되는데 꿈 속에서 또 한번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신기한 것은 미치코도 함께였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워프한 시간대는 전쟁 직후였다. 엄청난 인플레 때문에 달러와 미군PX 물품을 손에 쥐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였다. 신지와 미치코는 몇 차례 시간여행을 통해 처세에 능한 '아무르'라는 사내를 만나 사귀게 된다. 처음엔 약빠른 그 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 아둥바둥 하면서도 신의를 지키는 모습이나, 전쟁통에 일본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뀐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아무르'가 사실은 신지의 아버지 고누마 사키치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던 또 하나의 비밀, '아무르'의 정부 오도키가 사실은 미치코의 어머니임도 알게 된다. 미치코와 신지는 배다를 남매였던 것. 사실을 알게 된 미치코는 임신한 오도키를 계단에서 밀어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킨다. 현재로 돌아온 신지는 미치코의 부재를 슬퍼한다. 그리고 살기위해 냉혹해진 아버지와 화해한다.


아사다 지로의 1995년도 작품으로 제16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수상작이다. 다소 작위적이고 세련된 맛도 덜하지만 아사다 지로 특유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 보다 훨씬 어린 아버지가 전쟁에 끌려가고, 비참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안쓰러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 부모와 자식이 화해할 때 기본적으로 '안쓰러움'이 감정의 주조를 이루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파악한 것 같다. 그리고 아사다 지로는 이런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려주는 재주가 뛰어난 작가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76148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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