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몇 장씩 쉬엄쉬엄 읽었더니 시간이 꽤 걸렸다. ^^ 코맥 매카시. 최근에 국내에 꽤 알려진 작가인데 처음 접했다. 음, 읽고난 느낌? 혹은 기억나는 건 오직 섬세한 묘사 뿐이다. 이 책의 내용은 대략 책 설명글이나 추천글로도 알 수 있다. 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핵전쟁이든 다른 어떤 이유든 간에, 배경은 모든 것이 타 버린 세상이다. 먹을 것도 없고 모두 멸절된 오직 재와 잿빛만이 가득한 세상.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같은 사람을 잡아먹고 식량으로 가축처럼 잡아놓고 있는 그런 세계다.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말처럼 이 소설에서는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곧 생사를 건 시험대가 된다. 이런 세상을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걸어간다. 목적지도 딱히 없다. 그저 걷는다. 처음엔 막연히 바다를 향해, 해안가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 목적지에 이르러서도 보이는 건 잿빛의 바다다. 그들은 다시 내륙으로 향한다. 사실 이 소설은 스토리가 거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위험으로부터 안간힘을 쓰며 걸어가는 여정이 전부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 곳곳에 펼쳐지는 섬세한 묘사는 너무도 치밀해서 한편의 영상물을 지켜보는 것 같다. 몹시 꼼꼼하게, 사실적으로,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암튼 그러한 문장에서 대가의 능력을 맛볼 수 있었다. 저자가 현재 70살도 훨씬 넘었다는데...... 마지막엔 조금이지만 잔잔한 감동도 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희망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한 현실을 그렸는데, 결말도 절망으로 끝맺는다면 너무 처참하지 않을까. 조금 작위적인 느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쉴새없이 끝까지 읽게하는 맛은 없지만 그래도 지루해서 도저히 못 읽겠다는 정도는 아니다. 다만 요즘처럼 속도감있는 진행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좀 힘들 수도 있겠다. ^^ 나처럼 쉬엄쉬엄 읽어나가기엔 딱이다. ^^ 어쨌든 문장력과 섬세한 묘사만큼은 부러웠다. 이런 단순한 내용을 300페이지 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능력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글에서 저자가 참으로 가난하게 은둔하게 살았다는 삶의 스토리를 읽고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8년 동안 헛간 같은 곳에서 살며 호수에서 목욕을 했다고 하니... ㅎ 결론은 내 주관적인 취향으론 볼 만은 한데, 그렇다고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잘 쓴 글은 분명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