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운 중국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이욱연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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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홍콩

국민학생 때 중국은 중’공’이었습니다. '두려울 공()’과 같은 발음이어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인 건가 싶기도 합니다. 80년대 국민학생이 단체관람했던 ‘이승복 어린이’ 영화에도 이 ‘공’자들이 잔뜩 등장합니다. 공산당이 싫어요! 하니 공비들이 입을 찢어 죽이지요. 사건의 진위, 당사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별개로 이 영화는 제 나이 또래 한국인들이 인생 첫 고어영화가 됩니다. 이러니 무서울 수 밖에요.

중학생 때 중국은 홍콩이었습니다. 영화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은 멋있었습니다. 규칙도 모르는 카드 게임을 하며 입 속 깊히 초콜릿을 집어 넣어 먹었고, 맥락없이 날아가는 하얀 비둘기에도 쓰러졌지요. 특히 좋아했던 유덕화는 가수이기도 했는데 새로 산 음반을 다 듣기도 전에 새 음반이 나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 음반을 북경어, 광동어 버전으로 발매했던 것이지만 알 수가 없었죠. 그저 초인적인 성실함의 증거로만 생각했지요. 그러니 좋아할 수 밖에요.

더이상 학생은 아닌 지금, 중국은 더 이상 중공이 아니고 홍콩과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 상태라는 정도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유비, 관우, 장비는 아직 복숭아 밭을 떠나지 못했고, 3글자 나라 이름은 머리속에 계통없이 흩어져있습니다. 책 제목처럼 이만큼 가까운 나라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만큼 가까운 나라 - 중국

‘이만큼 가까운 중국’은 우리나라와 밀접한 국가의 역사와 정치, 경제부터 문화와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 국가와 사람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의 중국편입니다. 세계 각국을 다룬 다른 책과 차별되는 깊이를 추구하면서도 다양한 독자층이 이해하기 쉽도록 눈높이를 맞추었다고 하네요. 

황하 문명의 발원부터 봉건제가 시작된 주나라, 통일제국 진나라, 전성기 한나라, 당나라, 이민족의 원나라, 청나라를 거쳐 근대와 현대 중국까지. 책을 읽고 난 후에 확인하니 건너 뛴 나라들이 꽤 있습니다. 한나라와 당나라 사이의 위진남북조시대, 수나라는 당나라 도입부에 '오랜 혼란기' 이 다섯글자로 정리되는 정도지요. 제게는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중국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까지는하고 싶지 않은 일반 독자'가 접근할 수 있는 최고 지점을 향한 안내서라고 할까요. 중국으로 가는 주요 지점만 콕 집어 설명해줍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굴욕의 근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던 사람들이 서양 깡패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동양 듣보잡(일본)에게 얻어 맞고 대문을 열어주었으니 그 패배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패배의 원인을 찾고 극복하려는 시도가 뒤따르는 것도 당연합니다.
  • 서양 수준의 군사력이 필요하다. - 양무운동
  • 군사력을 키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 제도를 바꾸자. - 1911년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 '중화민국' 수립
  • 중국인들의 생각, 사상, 가치관이 문제다. 유교문화 타파! - 신문화운동(이 것이 현대 중국의 사상적 기원이 된다고 합니다.)
  • 제국주의, 자본주의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대안은 사회주의다.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 봉건주의,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적 발전 단계를 완성하자. - 문화대혁명(마오쩌둥)
  • 빈곤이 사회주의가 아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게 좋은 고양이다. - 사회주의 시장경제(덩샤오핑)
머리속에 계통없이 흩어져 있던 3글자 나라 이름들이 순서대로 줄을 섭니다. 선 굵은 정리에 묘한 쾌감마저 느껴집니다.
중국사 특강 이후, 책은 본격적으로 현대 중국의 이해에 대한 요점 정리를 시작합니다. 지리∙문명, 정치∙경제, 사회, 문화∙예술, 한중관계를 다룹니다. 그중에서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주요한 단어를 되새겨봅니다. 누가 중국 아니랄까봐 죄다 '중'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입니다. 중앙집권, 중앙통제, 중국식 네티즌 민족주의 그리고 중화.

큰 땅덩어리, 다민족, 다언어라는 환경적 특성 때문에 중국에게는 중앙집권, 중앙통제가 가장 매력적인 답안이 된듯 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유튜브는 인터넷 미디어 시대의 대표주자들이지만 중국에서는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대신 중국사람들은 웨이보, 위챗, 바이두 같은 중국 자체 플랫폼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언론, 종교도 중앙의 통제를 받고 있고 천안문 사태 이후에는 애국주의 교육도 강화되어 이 교육을 받고 자란 '포스트 80세대'는 민족주의 성향이 짙다고 하네요. 중앙집권, 중앙통제에 관한 설명은 이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로 넘어갑니다.
'포스트 80세대'는 중국의 1자녀 정책의 주인공이자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가끔 들리던 그 '소황제'들이 해당되는 세대입니다. '중국식 네티즌 민족주의'가 수면으로 떠오른 시점은 베이징 올림픽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인에게 '굴욕의 근대'를 청산하고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알리는 자리였다고 하네요. 중국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티베트 독립 관련 시위 등으로 봉송되던 성화가 꺼지고 중국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등 오히려 갈등이 강조되자 포스트 80세대가 분노했고 이들이 중국식 네티즌 민족주의를 낳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보니 어줍잖게도 뭔가 흐름이 보이는 듯 합니다. 굴욕의 근대를 벗어나 새로운 중화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중국과 중국인들의 분투. 
'중화사상 & 복원'이라는 검색어로 검색하니 여러 기사가 눈에 띕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진핑 주석의 2013년 3월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연설입니다. 시 주석은 이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9차례나 언급했다고 합니다. 중화제국의 유산을 새로운 제국을 여는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대외적으로 '신 천하주의론'과 '신 조공질서론'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눈에 들어옵니다.(전인갑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대중국의 제국몽: 중화의 재보편화 100년의 실험' 소개 기사)
중국은 다시 천하의 중국이 되고 싶어하나 봅니다.

中國一点都不能少 (중국은 조금도 작아질수 없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불법'으로 규정한 지난 12일 밤 부터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연예인들이 SNS에 위의 문구와 관련 이미지를 올렸습니다. f(x)의 빅토리아, 미스에이의 페이, 피에스타의 차오루 등. 물론 다른 중국 연예인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습니다만 빅토리아, 페이, 차오루는 한국을 기반으로 아시아, 세계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요. 어떻게 봐도 본인과 소속 그룹에 악재가 될 것이 뻔해보였으니까요. 실제로 TV 예능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인지도를 쌓아가던 차오루는 이 글을 올린 이후 출연하는 프로그램 게시판에 하차 요구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보이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왜 그랬는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고 할까요. 
중국의 의지는 분명해보입니다. 다만, 이 의지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 다른 나라, 특히 주변 나라를 고려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중국에게 굴욕의 근대를 안겨줬던 제국주의 국가에 대항해서 건설한 것이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일텐데요. 미워하면서 닮아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중화의 한계일까요.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절체절명의 숙제가 생긴 셈입니다.

이제 중국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영역은 제쳐 두고라도 두 나라의 경제와 문화가 갈수록 하나로 통합되는 시대에 살아갈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런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 특히 청소년과 청년 세대가 중국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는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했습니다.
일찍이 실학파 학자였던 박지원은 당시 조선 선비들이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중국 멸시라는 두가지 극단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용후생()'이라는 실용주의 중국관을 주장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박지원과 같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이 책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한국의 미래 세대가 중국을 보는 새롭고 깊이 있는 눈을 갖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머리말에서)

중국에 대한 다른 책과 앞으로 나올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의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지네요.
(일본, 미국이 나왔고 터키, 프랑스편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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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시대 세트 - 전5권 공부의 시대
강만길 외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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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공부의 시대’ 시리즈 5권의 일부 내용을 담은 샘플북을 받았습니다. 책 표지를 넘기니 공부의 4가지 정의가 나오네요.
1.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2. 더불어 나의 바깥을 이해하는 일
3. 타인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일
4. 읽고 쓰고 말함으로써 참여하는 일

'공부'하면 교실과 책상, 졸고 있는 학생을 떠올리는 제 수준을 확인하고 씁쓸해 하는 순간, 공부라는 단어 옆 괄호 안 한자어가 눈에 걸립니다. 
도구, 일을 뜻하는 '공工'과 사내, 사람을 뜻하는 '부夫'.
한자어 어원을 찾아보니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식이나 기술을 완성시키는 과정 혹은 결과'에 해당하는 의미가 있네요. 일본어에도 같은 단어가 있는데 우리말의 "궁리하다"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도 합니다.
'공부의 시대'라는 책을 읽으려는데 정작 '공부'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군요.

공부의 시대 

 ‘공부의 시대’ 소책자에는 각 단행본의 내용(질의 응답) 일부가 수록 되어 있습니다. 출간 전 책을 소책자로 먼저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발췌된 내용을 읽으면서 전체 내용을 가늠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공부와 교육에 한 점 후회가 없다는 강만길 역사학자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이야기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난 많은 사실들을 새롭게(그렇지만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역할이고 이를 통해 ‘나의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국사와 세계사 이해의 균형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는 역사의 역할을 짚습니다.  개별 문화의 특수성은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돋우어야 하고 이 지점에 역사학의 역할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두 꼭지의 짧은 질의응답에서도 역사학과 역사학자의 정수가 펼쳐지는 듯합니다.
이 단행본의 부제는 ‘내 인생의 역사공부'입니다. 

이름 그 자체가 청렴의 대명사인 대법관이 알려주는 책 읽는 방법이 이어집니다.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는 법과 책을 많이 읽기 위한 방법에 대해 김영란 대법관은 친절하지만 단호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자신 역시도 산만하고, 빠르기만한 자신의 독서법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책을 읽었고 어느 순간 답을 찾게 되었다는 경험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 좋은 독서법은 결국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이 단행본의 부제는 ‘책 읽기의 쓸모'입니다. 

자기 자리를 찾은 듯 여유로워 보이는 유시민 작가는 타인과 인간 본성에 대한 공감의 필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공부에 대한 질문에는 어울려 사는 법(타인에 대한 공감)과 인간 본래의 선함(인간 본성에 대한 공감)에 대한 공부를 권유합니다. 
공부한 대로 살 수 없는 순간의 대처법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의 인생론을 들려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꼭 하고 싶거나 해야만 한다고 믿는 일을 내가 처한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을 고려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선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인간의 본성, 한계에 대한 공감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조언으로 들리네요. 
이 단행본의 부제는 ‘공감 필법’입니다.

사회적 치료 활동으로 ‘거리의 의사’라는 불리우는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삶과 일상, 사람 공부의 연관성에 주목합니다. 일상에 맞닿아 있는 생각과 고민을 통해야 사람에 대한 뜨거운 집중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이 곧 '사람 공부'라는 믿음입니다.
내가 아닌 공급자가 중심이 되는 전문가주의의 함정에 대한 경고도 있습니다. 자기 일상의 주도권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자신과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사람은 모두 각각 개별적으로 유일한 존재이고 그 존재의 주도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이 단행본의 부제는 ‘사람 공부'입니다.

일당백의 논객이자, 가장 유명한 미학자인 진중권 교수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의 사회상과 그 시대의 인문학의 역할에 대해 얘기합니다. 
'미래의 문맹'은 이미지 아래 깔린 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게 되리라는 지적은 매섭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 노동 해방은 직결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는 부분은 서늘합니다.
새로운 시대에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유효하고 새로이 제기되는 인문학적 문제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지적오 잊지 않습니다. 
미래의 인문학은, 미래의 공부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까요.
이 단행본의 부제는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입니다.
 
이렇게 과거에 대한 공부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공부의 방법과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김영란, 유시민, 정혜신)를 짚고 미래를 위한 공부(진중권)에 이르게 됩니다.

공부의 시대 - 세상을 헤쳐나가는 다섯가지 공부법

'살아남기만도 벅찬 시대라고 합니다. 각자가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길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공부'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세상'에 대해 묻고, 고민하고, 손 내미는 진짜 공부를 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우리 시대의 지성들에게, 우리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공부법을 물었습니다.'(시리즈 기획 의도 중에서)

책장 정리를 하다 보면 다른 책들 사이에서 잊있던 책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제게 '공부의 시대'는 다른 책들에 가려져 있던 '진짜 공부'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공부의 시대' 시리즈를 통해 잠시 잊고 있었던 '나'와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진짜 공부와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다시 소책자 첫 페이지의 '공부의 정의'를 읽어 봅니다. 
1.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2. 더불어 나의 바깥을 이해하는 일
3. 타인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일
4. 읽고 쓰고 말함으로써 참여하는 일

'공부'가 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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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오면 그녀는 : 바닷마을 다이어리 6 바닷마을 다이어리 6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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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를 선택하다 보니 이게 과연 리뷰인가 싶긴 합니다만..]

 

“글쎄요, 저는 왜 이걸 적고 있을까요. 누가 적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팀 송년회 일정이 잡히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아내와 제가 공유하는 캘린더에 ‘[창훈] 팀 송년회’라고 적었습니다. 
적고 있자니 옆에서 물어봅니다. 뭘 적는 거냐고. 
"아내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라고 답을 하고 보니. 그러네요, 아내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요일과 주말에 만나는 반 기러기라서 그 외의 날에는 저의 일정이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거든요.

"... 글쎄요. 제가 왜 적었을까요."

April come she will.

"같이 축제에 가고 학교에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후쿠멘 만쥬를 사먹고 내일 보자라고 더이상 말을   없게  것이다."(6권, 140페이지)
"
이런 광경도 얼마 안 남았구나. 4월이 오면 아마 모든게 변할 것이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4월이 오면 그녀는."(6, 194페이지)'

"막 지은  냄새와  구운 생선냄새, 카레 냄새. 봄에는  언니가 현관에 장식해둔 천리향에서 은은한 향이 나고.
여러가지 냄새가 섞여 있다. 이곳을 떠나서 살게 된다. 상상이  안된다."(144페이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일본의 요시다 아키미라는 작가가(대표작으로 만화방에서 한 두번 본 듯한 작품인 ‘바나나 피시’가 있다는데 왠지 끌리지는 않네요 .) 2006년부터 월간 연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월간 연재 치고도 분량이 많지 않은지 거의 10년이 다된 올해 단행본 6권이 나왔습니다. 
위의 독백은 6권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주인공인 스즈라는 여학생과 그 남자친구인 후타의 혼잣말입니다.

주인공인 스즈는 어떤 계기로 인해 처음 만난 이복 언니들과 함께 살게 됩니다. 스즈는 언니들의 배려 속에서 새로운 삶에 순조롭게 적응합니다.
여자 축구선수로서의 경력도 이어가고 남자친구까지 사귀게 되지요. 그러다가 다른 도시의 명문 여자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로의 진학 기회를 잡게 되고 스즈는 고민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후타도 고민합니다.

그리고 둘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모든 일상을 새삼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시덥 잖은 이야기', ‘내일보자’, ' 냄새, 구운 생선 냄새' - 일상의 공유

아내가 올해 초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주말 부부가 된지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아내의 적응을 위해 한동안은 제가 애들과 함께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짐까지 옮긴 주말 이후 처음으로 퇴근 후 돌아간 집 거실에서 저도 모르게 뱉은 한 숨 소리에 놀랐습니다. 
집에 가구가 없으면 사람 목소리만으로도 방이 울리더군요. 

오늘 아침에도 아내는 아이들을 깨웠을 것이고 아이들은 침대에서 뭉그적 거렸을 테지요. 그러다가 아내는 언성을 높였을 것이고 아이들은 그제서야 기어 나왔을 겁니다.
여전히 계속 반복되는 일상인데 이제 제게는 일상이 아닙니다. 

예전엔 아내와 저의 일정 공유가 중요했습니다. 서로의 일정을 감안해서 아침과 저녁의 일들을 처리했으니까요. 
캘린더에 저의 일정을 적고나서 멍해진 건, 이제 어떤 일상은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나 밥 먹고 있어 곧 들어가", "나 좀 늦으니까 먼저 밥 먹어", "당신 늦었어, 서둘러." 

각자의 일상이 서로에게 중요한 상황과 관계에서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상황과 관계로의 변화.
제 일상이 아내에게는 물리적으로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 때. 
두어 달 전 읽었던 이 책이 떠올랐던 건 그래서 였습니다.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모든 일상이 새삼 그리워지기 시작했거든요.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이먼 앤 가펑클

이 작품이 곧 영화로도 개봉합니다
아무도 모른다로 알려진(사실 이것밖에 못 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으로 개봉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이라 그런지 일상성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하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고 하네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개봉하면 역시 이 작품을 좋아하는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야겠네요.

April come she will. - Simon & Garfu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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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 구매의 말로란 이런 것.

'눕기에 대한 백과사전'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어야 할 책.


책 잘 못은 아니다. 잘 알아보고 사지 않은 내 잘못이지.... 만 몇가지 근거없는 편견이 강화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그런데.


동료들에게 책에 대해 설명해줬더니 예기치 않은 격렬한 호응. 

중의적일 것 같지만 전혀 중의적이 아닌 제목이 오히려 신선하다고. 


어라...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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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단지 사모으는 수준'이라는 자각과 상관없는 정기적인 지름.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것도 아니고 할부 끝날 때 쯤 눈에 띄는 책을 사들이는 이 낭비벽을 어찌하나.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은 '라면을 끓이며'.

김훈의 팬이라는 사실을 말하기가 꺼려지는 몇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문은 내 감수성 어딘가를 정확히 베어낸다는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오우삼처럼.


나머지 책은 뭐 언젠간 읽겠지. 아니면 말고.


아내와 함께 '바닷마을 다이어리' 전권을 독파하는 금요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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