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은 오래 끓여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 오르고, 온갖 양념과 야채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마흔은 한 움큼 잡히는 옆구리 살에서 시작한다. 술 취한 다음날 아침이 괴로워지고 숙취가 길어지면 마흔도 익어간다. 읽기 위해서 안경을 섰다 벗었다 하고 신문을 점점 멀리 보내면서 마흔의 황혼기로 접어든다. 조금씩 내려앉는 잇몸, 새벽 2시의 불면증, 당혹스러운 건망증, 우두둑거리는 어깨관절뼈 소리를 들으며 어느덧 마흔아홉이 지나간다. 40대의 10년은 이렇게 저문다.

-구본형,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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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도전이란 결코 입맛에 딱 맞는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두 발을 전부 땅에서 떼서 허공에 몸을 완전히 맡겨야 하는, 따라서 상당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수반하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어렵지만 마음에 쏙 드는 일자리를 만났을때, 어렵지만 풀어 보고 싶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렵지만 한 번 걸어 보고 싶은 길을 만났을 때, 어렵지만 한 번쯤 말을 꼭 걸어보고 싶은 이성을 만났을 때, 필요한 것은 앞뒤를 재고 따지는 '계산'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허공에 몸을 맡기는 '용기'다.

- 임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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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리고 그동안 계속 <상실의 시대>를 썼다. 대략 60퍼센트 정도까지는 여기서 썼다. 미코노스와는 달리 날이 어두워지면 밖으로 산책하러 나가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고통이었다. 자, 이제부터 기분전환을 해야지, 생각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두 번 정도 파레르모를 떠나서 짧은 여행에 나섰다. 한 번은 타올미나에 또 한 번은 마르타 섬에 갔다. 그리고 파레르모에 돌아와서는 또 방에 처박혀 일을 했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떄때로 자신의 뼈를 깎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소설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는 쪽에서는 이런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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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3-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님께서 소설을 쓰다가 올린 글인 줄 알았더니 하루키의 글을 올리셨군요. 전 그렇지 않아도 뭐하나가 생각이나 글을 쓰다 말미가 잘 정리가 안되서 남의서재 기웃거려 보다가 들어 와 봤습니다. 잘 읽었구요. 이거 퍼갈께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결국은 소중한 사람의 손을 찾아 그 손을 꼭 잡고 있기 위해서, 오직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싱겁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 가네시로 카즈키, <연애소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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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8년 4월 어느 날 오후에 야구를 보러 갔다. 외야 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타자가 첫 볼을 외야 2루타로 쳐냈다. 그때 문득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작스런 계시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설명할 방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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