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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야클 > 여자재산 보고 장가가기(소개팅 후기)

  얼마전에 친구가 소개팅 시켜 주면서 한 말.

 친구: 야, 이번엔 웬만하면 꽉 잡아라.

 나: 왜? 선녀냐?

 친구:글쎄... 선녀는 아닌 것 같고, 돈은 엄청 많다더라.

나:얼마나 있길래?

친구:글쎄, 자기 앞으로 강남에 큰 평수 아파트 있고, 자기 통장에만 한 20억 가까이 있다던데? 그리고 매년 1억 넘게 벌고. 그냥 맘에 안들어도 두 눈 꾹 감고 그 여자 잡으면 인생 편하게 살거야.

나:진짜냐? 어이구 그럼 돈 때문에 아둥바둥 할 일은 없겠네? 내가 버는 돈은 그냥 용돈하고. ㅋㅋㅋ

며칠후 난 그 여자를 만났고,두 시간 동안 이 여자가 내게 어울리는 여자인지를 계속 생각하며 대화를 나눴으며, 그 결론은 '이 여자가 아니다' 라는 결론이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아무 느낌이 없는 여자'였다.비록, 가진 돈 많다는게 그 여자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로 작용 했음은 솔직히 인정하지만.

남들은 사람을 적어도 세번 이상을 만나봐야 한다지만 시간이나 정신적인 cost를 고려하면 제일 좋은 방법은 처음 만난 그 날 집중해서 평가해 보고 Go할 것인지,Stop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게 상대방을 위해서도 좋고.(요즘 굉장히 주위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나의 만남법이다)  그래서 난 Stop 버튼을 눌렀다.

아무리 '너 편하게 살기 싫니? 니가 그 돈 벌려면 몇년이 걸리는데...몇년후면 얼굴이나 여자라는 감정은 없고 경제력만 관심사야...' 등등 장가간 친구들이 맨날 하던 얘기들과 할 얘기들이 떠 올랐지만 너무나 강하게 '이 여자는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보통 주위에서 돈만 있고 그 밖의 조건이 별로인 남자에게 멀쩡한 여자가 결혼하면서 "저만 위해 줄 것 같아서요, 인간성이 맘에 들어서요..."등등의 별별 결혼의 변을 늘어놓아도 우리는 돌아서서 뭐라고 했던가. "흥,돈 보고 시집가면서" 이러지 않았던가.

물론 이 여자가 돈 있는 여자는 아니었지만  맘에 들지도 않으면서 이 여자를 만난다면 돈만 보고 시집가는 여자랑 뭐가 다를까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가를 가도 그 돈이 여자돈이지 어디 내 돈인가?

 

며칠후,

친구:야, 왜 애프터 안했어? 그 여잔 한번 더 볼 맘이 있나보던데.

나: 그냥 생긴것도 맘에 안들고, 결정적으로 '삘'이 안 와.

친구:그러냐? 그럼 할 수 없고. 그래도 몇년 후 장가가서 돈 때문에 아웅다웅하면 그 여자가 아쉬울 때가 있을꺼다.

 

물론 그 여자가 날 맘에 안들어 했을수도 있다.(주선자는 늘 판을 살리기 위해 긍적적으로 얘기 해주니까.)

그리고 몇년 후 돈 때문에 나의 이런 여자 보는 선택기준을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은 내게

돈이

여자를 선택하는

첫번째 조건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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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민달팽이 >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 축사>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 축사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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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뒤죽이 > [퍼온글] 함께 보면 좋은 책^^

함께 보면(주면) 좋은 책


1. 방황하는 청춘을 위하여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 &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

: 청춘이 방황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유 없는 방황은 금물!

다카시에게 위안을 얻고 김형태에게 깨달음을 얻어 보자.


2. 오늘날의 교양을 위하여

지승호의 <마주치다 눈뜨다> & 한겨레 신문사의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 두 권의 책으로 오늘을 사는데 필요한 교양을 얻을 수 있다면 과장일까?

과장 같지만 절대 과장이 아니다.


3. 소설에서 일상을 보다

한수영의 <공허의 1/4> & 류진운의 <닭털같은 나날>

: 먼 나라 이야기하는 소설에 질렸다? 그럼 한수영과 류진운의 펜 끝에 시선을 돌려보자.


4. 멋진 십대들의 향연

이시다 이라의 <4teen> & 야마다 에이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

: 미성숙하게만 여겨지는 10대.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고 인생사가 있다.

이시다 이라는 ‘우정으로 뭉친 그룹’으로 야마다 에이미는 한명으로 ‘멋진 십대’를 그려냈는데 함께 보면 그 재미가 배가 된다.


5. 옛글에 한걸음 다가가기

정민의 <죽비소리> & 김풍기의 <옛 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 옛글은 재미없다? No! 옛글은 재미있다. 정민과 김풍기의 책에서 그것을 확인해보자.


6. 소설의 경계를 벗어난 소설

천명관의 <고래> &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 소설은 소설이되 이제까지 봐온 소설과 다르다.

소설에 질렸다는 생각이 든다면 천명관과 제임스 미치너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7. 특별한 논픽션을 원한다면?

오마이뉴스의 <아유 해피?> & 캐테 콜비츠의 <캐테 콜비츠>

: 픽션이 싫고 논픽션을 원한다면? 두 말 할 것 없다.

이웃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어머니이자 예술가의 삶에서 위대한 논픽션을 발견할 수 있다.


8.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청소년소설

이금이의 <유진과 유진> & 사토 다카코의 <노란 눈의 물고기>

: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청소년들. 그들은 그 과정을 어떻게 해결해나갈까?

성장소설의 멋진 그림들을 이금이와 사토 다카코의 보석 같은 작품에서 만나보자.


9. 글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감각을 위하여

심산의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 & 이태준의 <문장강화>

: 눈길 끄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감각’이 여기에 있다!

고루한 이야기를 치워버린 심산과 문장의 대가 이태준을 통해 그것을 얻어 보자.


10. 은희경 소설로의 항해

<타인에게 말걸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새의 선물> + <비밀과 거짓말>

: 한국 대표 여 작가 중 한명 은희경의 문학세계를 담은 세 작품, 그리고 등단 후 10년 뒤에 발표한 <비밀과 거짓말>. 이 작품들을 통해 한 작가의 탄생과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11. 소설로 인간사 엿보기

아사다 지로의 <장미도둑> & 성석제의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 이기호의 <최숙덕 성령충만기>

: 한바탕 신명하게 놀아보는 인간사! 일본과 한국의 대표적인 이야기꾼 아사다 지로와 성석제, 그리고 새롭게 명함을 내민 이기호의 글 속에서 울고 웃는 인간사 희로애락을 만끽해보자.


12. 청소년들이 ‘쿨’을 외치는데 뭔가 부족해 보인다?

우오즈미 나오코의 <불균형> & 사소 요코의 <쿨보이>

: 진정으로 쿨하다는 게 뭘까? ‘쿨’하고 싶은데 2%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쿨’로 시작하는 두 작품에서 2%부족한 그것을 찾아보자.


13. 페미니즘, 좀 쉽게 볼 수 없나?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 &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과 페미니즘 이론가의 생활을 통해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 것인가를 확인해보자. 더불어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도 확인해볼 수 있으니 함께 보면 금상첨화!


14. 비슷한 내용, 전혀 다른 입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그날> &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

: 비슷한 이야기, 그러나 전혀 다르게 풀어내는 방식.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본다면 한국소설과 일본소설의 차이점을 대략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15. 재밌고, 쉽게 연애소설을 읽고 싶다면?

가브리엘 마츠네프의 <거짓말하는 애인> & 이지하의 <연애의 기술>

: 거짓말로 빚어지는 온갖 소동을 그린 <거짓말하는 애인>과 영화 같은 <연애의 기술>에서 무겁지 않은 연애소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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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제목없음

지난 여름 너무 죽도록 더워서 그런지.

요즘의 쌀쌀한 날씨는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예전에는

겨울이 오나보다 하고 생각했을텐데

이제는

여름이 갔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뒤를 돌아다 보는게 익숙해져버렸나보다.

어제

4년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그와 헤어져서 슬픈게 아니라

그와 헤어진 자신의 나이가 스물 아홉인게 슬프다고 했다.

그렇다.

이제 이 나이에 남자와 헤어지면

도저히 회복이 안된다.

예전에는 남자랑 헤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남자들이 접근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꼭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도 그들도 진지하고 신중해져버렸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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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ho > 귀엽게 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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