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리고 그동안 계속 <상실의 시대>를 썼다. 대략 60퍼센트 정도까지는 여기서 썼다. 미코노스와는 달리 날이 어두워지면 밖으로 산책하러 나가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고통이었다. 자, 이제부터 기분전환을 해야지, 생각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두 번 정도 파레르모를 떠나서 짧은 여행에 나섰다. 한 번은 타올미나에 또 한 번은 마르타 섬에 갔다. 그리고 파레르모에 돌아와서는 또 방에 처박혀 일을 했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떄때로 자신의 뼈를 깎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소설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는 쪽에서는 이런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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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3-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님께서 소설을 쓰다가 올린 글인 줄 알았더니 하루키의 글을 올리셨군요. 전 그렇지 않아도 뭐하나가 생각이나 글을 쓰다 말미가 잘 정리가 안되서 남의서재 기웃거려 보다가 들어 와 봤습니다. 잘 읽었구요. 이거 퍼갈께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