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전공했던 학부시절, 나는 입학 하자마자'싸이코드라마반'에 가입했다.
그리고 선배들과 떠났던 첫 MT에서 우리는 상황극을 하게 되었다.
선배들이 신입 회원들에게 제시한 상황은, '죽음에 임박했을때'였다.
즉, 머지않아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을때,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하며
보낼것인지를 각자 설정해서 연기하는 것이다.
당황스런 설정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 그저 희망과 기대에 차 있던 나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 낮설고, 멀고, 도무지 상관없는 일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고 나는 손을 들었다.
내가 설정한 상황은 병원 침대에 앉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전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엄마 - ' 하고 부르자마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만약 이 상황이 진짜라면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어떤 말이 하고 싶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정말 그런 순간에
있는 사람처럼 겪한 감정에 휘말린 것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들, 동생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나는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했는지, 늘 고마와 했지만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과, 미안함, 그리고
당부들을 눈물과 함께 쏟아 놓았다. 모두가 함께 울었다.
그때 나는 언젠가 내 앞에 닥칠 죽음을 생생하게 느꼈다.
삶속에 늘 '죽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스므살 젊은 나는 전율하며 깨달았던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이 책을 한마디로 줄이면 위에 적힌 글이 될 것이다.
삶은 언젠가는 끝난다. 그리고 죽음은 언제 내게 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죽음'이란 한없이 먼 일처럼, 지금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며 산다.
어찌보면 대단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통해 어떻게 죽느냐는, 삶을 의미있게 완성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우리는 흔히 죽음에 임박해서 삶을 새롭게 보고, 삶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
사형수의 아이러니라는 것도, 그 사람이 삶에서 가장 착해졌을때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평생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평생 가슴에 품었던 말들을 꺼내 놓으며, 평생 소원하는 것들을 하고 싶어하고, 평생 품어보지 못했던 감정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이루기에는 남은 시간도, 주어진 기회도 너무 적다.
왜 우리는 아직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고, 건강이 있을때 이런 소중한 진실들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꼭 삶의 끝에 이르러서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대하고 아쉬워하며 안타까와 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녀 자신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이게 되었을때
그녀 삶의 마지막 저서로 이 책을 계획한다. 평생 죽음에 관해 연구했지만, 그녀가 본 것은
죽음앞에 이르러서 더욱 간절해지고 생생해졌던 '삶'에 관한 문제들이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남긴 말과 글과 행동속에서 그녀는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이 배워야할 삶의 진실들을 일깨워 준다.
과거에 연연해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동안, 한번도 가슴뛰는
현재를, 생생한 '지금'을 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인생이란 살고, 사랑하며, 웃고,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날마다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내용을 대하면, 늘 되풀이 되었던 뻔한 내용들 뿐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자신을 용서하라느니, 현재를 즐기라느니,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일을 미루지 말라느니 하는
것들은 너무나 진부해서 새삼스레 귀 기울일 가치도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너무 뻔하고 진부하다고 느껴왔던
것들을 간절하게 원한다. 아주 새롭고,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그저 지금의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가능해서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러나 삶의 진정한 행복은 가장 뻔하고, 진부한 일들에 있다. 사랑하고, 웃고, 배우는 일..
용서하고, 나누고, 즐기고, 행복해지는 일이다. 우린 특별한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느라
지금 곁에서 흘러가버리는 이런 진실들에 눈뜨지 못할 뿐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한 여인의 얘기가 있다.
그녀는 남편과 평상시처럼 저녁을 함께 먹고, 얘기를 하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았다.
남편은 속이 좀 안 좋다며 먼저 자러 가겠다고 말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키스를 하며
속이 좀 좋아지기를 바란다며 잘자라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날밤 남편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비로소 그것이 남편과의 마지막 저녁식사였으며, 마지막 키스였고, 마지막 인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여인처럼 우리에게도 언제, 어떤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대할지 알 수 없다.
가끔 남편에게 서운하고 속상할때 이 여인을 떠올린다.
만약 오늘이 남편과의 마지막 시간이라면, 이 저녁 밥상이 마지막이라면, 남편에게 내가
건네는 말이 마지막 대화가 된다면, 나는 내 모습과 우리의 감정과 상황이 어떻기를 바라게 될 것인가.. 화가나고, 분노가 치밀때도 한번 더 숨을 고르고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나와 남편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삼키게 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거짓없는 진실들 속에서 우리는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즐기며 삶에서 내가 이루어야 하는 배움을 찾아 생생한 '현재'를 살아갈 지혜를 얻게 된다.
다섯살된 아들은 매일 매일 나에게 '엄마, 죽으지 마요. 엄마, 늙으지 마요, 엄마 사랑해요'를 외친다. 어렴풋하게 그 애에게 다가온 엄마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때마다
'걱정하지마, 엄마는 안 죽어' 라고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나는 스므살시절보다 더 생생하고 간절한 삶을 매시간 느낀다.
삶의 끝이 언제 내게 온다해도, 내게 소중한 아이와 남편, 가족들에게 아쉽지 않은
사랑을 전하며 살고 싶다. 더불어 내게도 그런 사랑을 전하며 살려고 한다.
더 많은 것을 이루기 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웃고, 배우며 살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
광고가 요란해서 오히려 선뜻 손이 안 갈 수 도 있는 책이지만, 가끔 다시 펴보면서
진부해진 삶을 새롭게 대하며 더 뜨겁고,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많은 실수를 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 것보다 좋은 일이다.
별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너무 늦지않게, 너무 미루지 말고, 마음에 품은 그것을 지금 하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