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남미 콜롬비아의 오지 마을 마르기타.

어느날 무장 게릴라들이 쳐들어와 1소년들을 포함한 마을의 모든 남자들을 끌고 가버린다.

남겨진 남자라고는 60이 넘은 신부와 여자옷을 입혀 딸로 위장해 위기를 모면한 13세 소년 뿐

마을은 이제 소녀와 노처녀, 과부들과 할머니만 남은 여자들의 세상이 되었다.

남겨진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실제로 공산주의 게릴라들의 산간마을의 남자 대부분을 끌고 갔다는, 신문기사에서

힌트를 얻어 이 소설을 지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이 소설은 허구이자 사실이고

남자와 여자에 대한 대담한 풍자인 동시에, 어쩌면 가능한 여자들만의 사회에 대한

매력적인 실험들과 실천들이 펼쳐지는 흥미로운 세계다.

 

자, 다시 마르기타로 돌아가보자.

마을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통치하던 남자들이 없어진 마을은 외부로부터의 원조와

도움도 사라지고 하루하루 페허처럼 허물어 간다. 그러던 어느날 나타난 정부의 관계자들은

로살바라는 과부를 덜컥 치안판사로 임명해 놓고 도망쳐 버린다.

굶주린 주민들에게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일이었지만 얼떨결에 마을의 치안판사가 된 로살바는 마리기타를 재건할 강력한 조치들을 결심하고, 위풍당당하게 하얀 앞치마와 빗자루 대걸레를 들고 집무실로 향해 대청소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임무에 뛰어 든다.

 당찬 과부 로살바가 이끌어가는 마을에서는 온갖 발칙하고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마을의 유일한 성인 남자 라파엘 신부는 마을의 재건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출산'이라는 대 명제를 위해 하나님의 고결한 종인 자신이 여자들와 합방을 해주겠노라고 나서는가 하면,

로살바는 그동안 마을에서 자라난 유일한 소년 네명을 통해 여자들을 임신시키는 계획을 도모하다가 실패하기도 한다.

마침내 신부도 쫒겨나고 마을의 시간을 알려주던 유일한 시계였던 교회의 시계가 멈춰버리자

로살바는 수없는 시간들이 공존하는 마리기타의 질서를 잡기 위해 남자들이 떠난 후로 생리주기가 28일로 똑같아진, 마리기타 여자들의 생리주기를 기준으로하는 여자들만의 시간을 고안해 낸다. 그리고 개인소유를 없애고 모두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고 함께 공존하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을을 가꾸어 나간다.

 이 대담하고 독특하고 유쾌한 이야기는 낙원처럼 풍요롭고 평화로와진 마리기타에 16년만에 게릴라 부대를 탈출해 돌아온 네명의 남자들이 도착하는 대목에서 절정을 맞는다.

여자들만의 낙원이 된 마르기타에 다시 나타난 옛 남자들, 그들은 16년간 간절히 원했던 이전의 삶을 다시 원하지만 여자들은 이미 16년 전의 그 여자들이 아니다. 마르기타의 어떤 여자도 이전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여자들에 대한 소유욕과 지배욕이 유난히 강한 남미의 남자들, 게다가 16년동안이나 전장을 다니며 목숨을 걸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 남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

떠날것인가, 아니면 남아서 여자들의 세상에 적응할것인가, 아니면 힘을 모아 여자들의 낙원을 무너뜨릴 것인가..

이 소설은 재미있고, 노골적이며, 지독한 풍자와 유머를  담고 있다.

더불어 지금도 진행중인 수많은 내전에서 고통받는 여자들의 삶과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의 주인공인 남자들에 대한 각성과 통찰을 던져준다.

 

이렇게 보면 여자만이 잘났고, 여자만이 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얘기냐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편협하게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얘기라기보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외면당해온

진정한 여성성에 대한 통찰과 발견을 던져주는 책이다.

그래도 억울하면 한번 상상해보라. 과부가 아닌 홀애비들 마을이 있다면, 여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남자들만 100명 있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니 아니, 질문을 쉽게 바꾸자.

아빠가 열흘간 출장간 편이 좋은가, 엄마가 열흘간 집을 비우는 쪽이 좋은가 말이다.

하하.. 이런 질문은 유치하지만 핵심은 같다. 생명을 낳아 세대를 잇고, 일상을 유지하고,가꾸고, 이어나가는 힘과 통찰은 수천년간 여자들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남자는 세상을 바꾸지만, 여자는 일상을 바꾸어 나간다. 그리고 삶은 결국 생명들이 살아내는 수많은 견고한 일상들로 이루어질 뿐 이다.

 어찌되었건 이 책은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이야기 사이 사이 펼쳐지는 반군과 게릴라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중인 수많은 내전이 안겨주는 끔찍한 비극과 가슴아픈 역사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끝없이 이어지는 보복과 보복, 그 사슬을 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도 저자는 함께 던지고 있다.

지극히 가볍지만 지극히 무겁기도 하고, 어이없이 우습다가도 가슴아픈 책이다.

 그러나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마르기타의 주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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