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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적의와 애정, 상반된 두 단어의 조합에 끌려 읽어보게 된 무라타 사야카의《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
책의 내용을 살짝 스포하자면 10대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유카는 새로 지어진 뉴타운에서 살고 있는 10대 소녀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카, 노부코, 와카바 이렇게 셋이 어울려 다니며 평생 우정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우정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흐지부지 되고 만다.
유카는 방과 후에 서예교실을 다니고 있는데 이부키라는 남자 아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유카는 좋아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악의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 방법이 글로 읽기에는 좀 격해서 19금이 붙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 정도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유카가 자신이 살고있는 뉴타운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시각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로 회색 길, 새하얀 벽돌, 황량한 공터, 골조만 세워진 집터 등으로 표현되며 이를 "꼭 뼈 속에서 사는 것 같아(p.40)" 라고 말하곤 한다.
뉴타운이 막 개발되기 시작한 시점은 초등학교 시절이었고, 그 개발이 멈춘 시점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부터였다.
아이들이 서로 적대감없이 순수하게 잘 지낸 시점도 초등학교 시절.
서로 상위, 하위 그룹으로 나뉘어지며 세 명의 우정이 갈라지게 된 시점은 중학생이 되고나서부터다.
즉,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듯이 여기저기 개발되는 상황과 아이들이 서로 활기를 띄며 친하게 지낸 모습들이 같고,
뉴타운에 자금이 딸리면서 개발이 멈춘 상황과 계급별로 아이들 무리가 나뉘어지면서 서로 적의를 띄게 된 상황이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주인공 유카가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게 표현된다.
'맨션이 들어선 걸 마지막으로 이 마을은 성장을 멈췄다..
반쯤 절반된 듯한 바위와 혈관처럼 빨간 파이프, 뾰족한 막대기 같은 은색 오브제.
정적이 흐르는 하얀 공간에 그것들이 덩그러니 놓인 모습은 왠지 이질적이었다. (p.132)'
'내 누런 피부 속에도 죽어버린 뼈가 흔들리고 있었다. 브래지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미성숙한 가슴을 억지로 와이어브래지어로 덮어버린 탓에 빈 공간으로 미지근한 여름 바람이 들어왔다. ( p.132)'
이러한 시선들이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격해지고, 마을을 싫다고만 표현하던 유카는 학교에 있기조차 힘들어한다.
학교 안에서 계급이 나뉘어져 노는 아이들을 경멸하기 시작한다.
'매달리듯 창밖을 보았지만, 그곳에 펼쳐진 건 거대한 뼈에 에워싸인 하얗고 청결한 무덤이었다.
창문을 열어도 산소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p.243)'
10대 소녀의 성장통을 마을의 개발 과정과 소녀의 감정, 몸에 비유한 표현들이 신선했다.
한 아이의 사춘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중학교에서 아이들의 계급이 나뉘어지는 것은 어느 곳이나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내용이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책의 뒷부분이 궁금해지는, 흡인력이 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