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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 - 평범한 인생을 귀하게 만든 한식 대가의 마음 수업 ㅣ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심영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7월
평점 :

할머니는 장날마다 시장에 가셨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할머니와 항상 첫 차에 올랐다. 읍내에 버스가 도착하면 할머니는 장에, 나는 학교에 갔다. 먹거리로 장난치는 놈들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들이라고 말씀하셨던 할머니. 할머니에게 장은 일터이자, 흙 냄새를 뽐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심영순 선생님의 마음 수업은 내게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1장부터 8장까지 이어지는 선생님의 삶에서 나는 할머니를 보았다. 물론, 할머니는 그리 신여성(내가 느낀 선생님의 모습은 신여성, 그 자체였기에)은 아니셨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평생 흙 속에 파묻히듯 살아오신 분이기에. 한글도 잘 쓰지 못하셨으며,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또한 아니셨다.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의 삶이 담긴 글에서 할머니를 마주했다.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로는 장난을 치면 안된다셨던 할머니와 우리것을 지키고자 무던히 애쓰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나를 위해 해마다 팥을 심으셨다. 손녀딸이 팥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늘 나를 위해 팥을 심고 팥을 따셨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흙 냄새가 참 좋다고도 하셨다. 사 먹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고, 그러니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사 먹을 일이 생기거든 장에 가서 찬거리를 사다가 집에서 해 먹으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뭘 그렇게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하냐면서. 한 푼 한 푼 모을 생각을 왜 안하고 허투루 쓰기 바쁘냐면서 혀를 차셨다.
시장이 얼마나 좋은 지 아냐면서. 사람 냄새나는 곳은 시장이고 흙 냄새나는 곳은 밭이라면서, 늘 내게 말씀해주셨다. 남은 옥수수를 떨이로 넘기고 막차에 오르는 날, 그런 날에는 동생과 내가 좋아하는 호떡이 할머니 손에 들려 있기도 했다. 오직 가족을 위해서, 일하셨던 할머니. 슈퍼가 아닌 시장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할머니가 선생님 글 속에 계셨다.
엄마는 요리를 잘 하신다. 칠남매의 장녀인 엄마… 어려서부터 외할머니를 도우며 살림을 익혔던 엄마는, 유년 시절 곳곳에 힘듦이 있었노라 고백하듯 말씀하셨다. 식당을 하셨던 외할머니, 그 덕에 살림을 도맡아 했던 엄마. 어쩌다 한 번씩 진 밥을 하거나 음식을 짜게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그래서 늘 밥 하기가 무서우셨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밥 하는 게 재미있어졌다고 하셨다. 동생들의 입에 무언가 넣어줄 때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었다고. 외할머니가 자리를 비우시면 동생들과 이것저것 해먹는 음식, 그 날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씀하신다. 덕분에 어려서부터 나는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집 밥을 많이 먹었다. 다른집 엄마들은 생일파티를 밖에서 열어주곤 했지만, 엄마는 늘 집에서 생일잔치를 열어주었다. 파티가 아닌 잔치. 엄마의 정성으로 가득한 생일상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선생님처럼 모질고 혹독하게 음식을 배웠던 것은 아니셨을거다. 그러나, 어린 엄마에게는 당시의 순간 순간이 참으로 모질고 혹독하게 기억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지금껏 살림 수업이나, 신부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작년까지는 계속 일을 했는지라 결혼을 했어도 살림보다는 일이 주가 되었다. 살림보다는 일이 먼저였기에, 늘 해먹는 밥보다는 사 먹는 밥이 많았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일을 쉬기 시작했다. 일을 쉬니, 쉼의 시간도 덩달아 생겼다. 신랑이 퇴근할 무렵이면 반찬 걱정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게 이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니, 살림에 재미를 붙여보라 말씀하셨다. 사 먹는 밥보다 해 먹는 밥이 더 맛있는 법이라고도 말씀하셨다. 김치 하나를 놓고 먹더라도, 사 먹는 김치보다 집에서 담군 김치가 더 맛있지 않냐면서. 어차피 사 먹을 김치찌개라면, 집 김치로 해야 더 맛있지 않겠냐면서. 나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셨다. 아직, 살림에 미숙하기 그지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사 먹는 밥보다 해 먹는 밥이 더 소중하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신랑과 함께 먹는 집밥. 그리고 아가가 생기면 아가와 함께할 집밥. 집에서의 시간이기에 그 어느 곳에서의 순간보다 훨씬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올 아가도, 집밥을 좋아하는 아가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시장에 가지 않았다. 시장에 가면 머리가 희끗한 할머님들이 많으실테고, 그럼 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까봐, 그렇게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 일이 있어도, 신랑에게 줄곧 부탁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명절에는 용기를 내어 시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시간이 될지라도 이번만큼은 희미하게나마 시장에서 웃음 짓고 돌아올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갓 지은 밥으로, 내가 손수 차린 차례상에 정성도 한 가득 올려놓아야겠노라 다짐했다. 감사의 마음으로 말이다.
살아가면서 늘 기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에는 희노애락이 있다는 말이 있을 것이다. 어쩌다 한번씩은 신랑과 다툼이 있을 것이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와도 감정 싸움이 생길 것이다. 그 때마다 노한 감정을 내세우기보다 귀를 먼저 열 수 있는 아내로, 엄마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더불어 사 먹는 밥보다 해 먹는 밥의 소중함을, 밥알에 담긴 정성을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