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은 시처럼 온다 - 사랑을 잊은 그대에게 보내는 시와 그림과 사진들
신현림 엮음 / 북클라우드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나는 계속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채 사는 것 같다. 문득 문득 차오르는 감성을, 한 글자씩 써내려가는 시간. 여백의 공포보다는 채워가는 즐거움을 홀로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연필로 꾹꾹 눌러쓸때마다 또르르 내 안을 굴러가는 숱한 감정들, 아마도 그건 노래가사처럼 사랑이었을까.

중학교에 다니면서 시를 유난히 많이 접했다. 즐겨보던 만화책 곳곳에는 특히 시가 많았다. 사랑을 노래하는 시. 나는 그 안에 담긴 뜻도 모른 채 그저 좋아서 다이어리에 옮겨 적고, 시 공책을 따로 만들고, 친구에게 부탁해 그림도 그려넣었다. 옮겨 적을 때 느꼈던 감정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기에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그렇게 시가 내게 왔다

신현림 선생님의 책『사랑은 시처럼 온다』는 사랑에 대한 시와 명화, 그리고 사진이 채워져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시 읽기를 명화와 사진이 좀 더 풍부한 감성을 불러왔다. 다시 시 공책을 만들고 다이어리를 꾸미고 싶게끔 만들었다. 더는 소녀가 아님에도, 마음만큼은 소녀이기를 꿈꾸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엄마를 마주했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흑백사진의 엄마, 교복을 입고 웃고 있는 엄마. 명화 속 소녀의 모습에서 엄마를 그렸다. 누군가를 향한 설렘의 마음이 소녀로 하여금 꽃향기를 맡게하는 것 같은 착각이 잠시 자리했다.

신현림 선생님은 외로울 때는 사랑시를 읽는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외로운 날,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더는 내게 없을 때. 그럴 때 사랑시를 읽어가면 어떨까. 선생님 말씀처럼 점점 먹고 살기도 버거운 인생이지만 그래서 외로움에 사무치는 생이지만, 어떻게든 사랑을 읽지 않고 잊지 않는 순간을 살고 싶다. 아니, 살고 싶어졌다. 그 사랑을 통째로 내 것으로 내 안에 두고픈 욕심도 일렁였다. 외로움을 사랑으로, 외로운 순간에는 사랑시로 내가 나를, 내가 당신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선생님께서 3년간 준비하신 『사랑은 시처럼 온다』에 실린 시와 그림, 사진은 모두 하나같이 반짝였다. 서로 다른 빛깔로 반짝반짝 책을 수놓고 있었는데 그 중 1장 <그래도 사랑하고 싶다>에는 레이수옌의 '나는 모른다'로 시작된다.
사랑하면서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날이 있다. 정말 날 사랑해? 날 왜 사랑해? 당연하지. 왜 사랑하냐니? 사랑하니까 사랑하는거지.
식상한 물음에도 달달한 대답을 듣고픈 날이 있다. 뻔한 말 한 마디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 날도 분명 있다.
사랑하는 이유는, 어쩌면 존 러스킨의 시처럼 불안전하기 때문일까. 완전이란 오로지 신에게만 있기에, 사람은 다만 그에게 갈 수 있을 뿐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는걸까.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2장 <사랑을 준비하는 시간>에는 사랑에 대한 준비를 말하고 있다. 사랑에도 준비가 필요한걸까. 첫사랑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속에 자라는 사랑의 씨앗도 준비에서 오는 것일까.
알쏭달쏭 그득한 생각을 비우며 시 속에 빠져 들었다. 그림을 보면서 뜨거운 한여름 밤의 꿈 여행을 떠났다. 지난 생애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에 사랑을 더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

3장 <완벽하지 않은 내가 너를 만나서>는 또다른 사랑의 울림이었다. 때로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긴다. 마음에 없는 말로, 내 옆의 그에게 또는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내 마음과 달리 상대에게 준 상처는 오래가는 법이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로 충분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서로 자존심을 세우며 사과를 하지 않고 상대방의 이해만을 바라며 흐지부지 시간을 흘러보낸 적도 있다.
미성숙해서 미성숙한 사랑을 한다지만 그래도 그 미성숙한 사랑에도 꽃 피는 날이 있을테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을 내려놓아야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완벽한 사랑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4장 <괜찮은 연인이 되어>를 읽으며 나는 신랑에게 괜찮은 아내일까 생각해보았다. 신랑은 내게 참으로 과분한데, 나는 신랑에게 너무 바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내며 시를 읽었다. 글이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여, 소리내어 읽다보면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처음 글을 배울 때 소리내어 읽기를 습관화하는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다.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읊는 거라고, 일상이 시가 되는 사람을 살아보자고 말씀해주시던 선배님 이름이 불현듯, 미친 듯이 솟아났다. 김정환 시인의 '지울 수 없는 노래'의 첫 구절처럼.

5장 <사랑하는 이를 더 사랑하려고>에서는 또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랑은 사랑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노력 아닌 사랑은 없다는 뜻이겠지.
즐거움을 안겨주는 사랑의 노력, 비단 그 사랑의 노력은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해야할 노력일 테니까. 사랑받기 위한 노력도 더해져야할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눈을 맞춘다.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것이 우리의 노력, 우리의 사랑이라 믿으면서.

6장 <모든 날들의 사랑>은 우리에서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서 시작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로 시작해서, 우리가 되고, 우리가 우리들이 되는 사랑. 주변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깃든 사랑을 그 마음을 품고 사는 것에 대한 의미 찾기. 함께, 같이, 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삶을 말이다. 당신, 곁에서 내가, 또다른 나로 변하는, 그 또다른 나가 당신과의 생이 되는 그런 의미 찾기가 아닐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