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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레시피
테레사 드리스콜 지음, 공경희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 3월, 할머니와 헤어지고 내 안에 남은 감정은 오직 슬픔 뿐이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순간이 아니었다. 그간의 모든 추억을 정리하기에 할머니의 장례식은 너무 짧았다. 그리고 할머니와 매일 함께할 수 있는 몇 달의 시간도 내게는 너무 짧기만 했다. 슬픔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다. 나보다는 아빠를 비롯한 가족드의 슬픔을 그 상실감을 어찌 무게라는 단어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할머니는 암이셨다. 직장암 말기. 수술조차 할 수 없는 고령의 나이.
의사선생님께서는 할머니 연령대에서는 암의 진행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고 하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 대신, 속도 얘기를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 몸 안의 세포들은 암이 쉽게 잠식해갔다.
가족들은 할머니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자신의 병이 무어냐 물으셔도 그저 쉬쉬하기 바빴던 날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께서 물으셨을 때 말씀을 드렸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할머니도 엘레노어처럼 가족들에게 하고픈 말씀을 짧게나마 남기시진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줄곧 자리했다. 어쩌면 나와 가족들은 할머니께 남은 시간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충격을 드리기 싫다는 그 이유로 말이다.
엘레노어는 딸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에게 글을 남기면서 <인생 레시피>를 남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딸과 남편이 모두 잘 지내고 있을 경우에만 읽을 수 있는 글을 멜리사는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저, 평범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었다는 그녀와 화학요법과 모든 치료를 중단하면 안된다는 그녀의 남편 맥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어쩌면 할머니도 그저, 평범하게 지내고 싶으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먹먹함이 차올랐다. 하지 못한 말이 점점이 흩어진다. 그래도, 다시한 번 그래도. 어디선가 할머니가 나의 마음을 듣고 계시진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말라가는 잉크를 보면서, 그 냄새를 맡으며 엘레노어는 딸에게 하고픈 말들을 생각했을거다. 그리고 하나씩 적어갔다. 잉크가 마르는 속도처럼 엘레노어의 암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녀의 병명은 유방암. 조금이라도 일찍 병원에 갔으면 그녀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담요를 덮어두는 일처럼 미루고 미루고 병명에 대해 혼자 판단하고 녹아 없어질거라고 자신을 설득하며 몇 주 동안 지켜보았던 그녀는,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유방암 4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모든 것을 지배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린 딸과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녀는 딸에게 보내는 긴 일기를 쓰면서 말라가는 잉크를 보면서 보냈다는 생각을 하니 무척 먹먹하게 전해졌다. 그 먹먹함은 나보다 딸인 멜리사에게 더 깊은 먹먹함으로 자리했겠지만.
하지만 글은 먹먹함만 안겨주지 않았다. 때로는 치유로 사랑으로 먹먹함을 따듯하게 덮어주었다. 마치, 할머니와 헤어지고 꿈 속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던 어느 여름날의 짧지만 따듯했던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전해주었다. <인생레시피>를 읽으며 할머니에 대한 슬픔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와 함께인 사람들을 마주하면 부러움으로 눈물이 그렁였던 그 시간들이 글을 읽으며 위로로, 그리고 또다른 오늘로 다가왔다.
테레사 드리스콜의 <인생레시피>는 그녀의 첫 소설이다. 작가의 첫 소설은 자전 소설이라 불리울만큼,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인생레시피> 안에는 그녀의 지난날이 되새김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그녀 역시 어린 시절에 대한 슬픔을 치유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 치유의 방이 바로 그녀의 첫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딸에게 전해주는 삶에 대한 레시피, 엄마의 일기같은. 그래서 더욱 더 엄마가 딸에게, 어른이 된 내가 나의 딸에게 주고픈 편지같은 글이 바로 <인생레시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