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바이브 - 시를 친구 삼아 떠나는 즐겁고 다정한 여행기
김은지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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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를 닮은 책.
오래 걷고 싶어지는 책.
나만의 동네 바이브를 만들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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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바이브 - 시를 친구 삼아 떠나는 즐겁고 다정한 여행기
김은지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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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도 집에서 10여 분 걸어나가면 천변이 나온다.
서울에서 꽤 유명한 천변이기도 해서 언제 나가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건강을 위해 죽기 살기로 다리를 교차시키는 사람도 있고
반려동물의 산책을 위해 걷고 서기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걸음 걸음마다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머리는 복잡한데 제대로 된 생각은 좀처럼 하기 힘든 나날이라 어렵게 눈을 뜨고도 하루 종일 침대에서 시간을 뭉개기만 하는 날들이지만 가끔 눈 딱 감고 이불을 걷어젖히고 천변으로 향한다.
그리고 만 보 정도를 걷고 온다.
걷기 전까지는 귀찮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몇 걸음만 걷다 보면 이내 소란스러운 몸속 지방방송들이 꺼지고 주변이 보인다.
지난주엔 푸른 잎만 가득했던 자리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있거나 처음 보는 신기한 색의 새가 보인다.
다양한 견종들이 보이고 미묘한 시간의 변화에 따라 하늘색도 변한다.
그렇게 걸으며 마음속 먼지를 털고 온 날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토요일 오후를 닮았다.
주말의 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내일 하루가 더 남았고 그래서 마음이 너무 조급하지도 부산하지도 않고 적당히 따뜻하고 말랑해진다.
내가 걸어본 동네도 있고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도 있다.
가본 적 있는 동네 부분에서는 내 기억도 나의 버전으로 덧칠했다.
가본 적 없는 동네 부분에서는 언젠가 만날 수 있는 그곳을 상상하며 내 머릿속 이미지와 실제 동네의 차이점을 비교해 볼 재미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두고 더 더워지기 전에 이곳저곳 잔뜩 걸어둬야겠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동네 바이브를 집필해 보고 싶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내내 편안해서 좋은 독서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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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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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유전자 단위로 쪼개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없다.
뼛속 깊이 문과 인간인 나에게 과학은 늘 경이롭고 흥미로운 학문이긴 하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렇다고 과학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과학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 용량이 아쉬울 뿐.
과학 앞에서 한껏 웅크린 채 작아진 내 앞에 유전자가 저벅저벅 걸어와 눈높이를 맞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이런 문과 인간에게도 비교적 알기 쉽게.

저자는 현대의 가정, 사회, 경제, 정치, 의학, 종교를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 같은 쫄보가 두려움에 지레 겁먹고 도망쳐버리지 않게 아주 가까운 주변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더 큰 관점의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진화의 관점이라는 것을 가진다는 자체가 내게는 생소한 일이라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흥미진진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통통한 인간 아기에 대한 부분.

32p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포유류나 영장류와 달리 사람 아기는 굉장히 많은 피하지방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이다.
몸집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지방을 축적한 상태로 태어나는 이유는 자기를 홍보하기 위함이라는 가설로 설명되는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을 통해 자신이 건강하며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부모의 선택을 받고 살해당할 위험을 피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통통한 아기들을 보면 귀엽다고 느끼는 것 억시 건강한 아이를 선별하기 위해 진화해 온 뇌의 생물학적 반응이다.

더불어 근래 화두로 자주 떠오르는 혐오에 대해 언급된 부분도 인상 깊었다.

59-60p
이와 같이 병원의 통제하에 잘만 사용하면 약으로도 쓰일 수 있는 대변이지만, 야생 상태에 오래 방치되어 있으면 침이나 소변과 같은
다른 배설물에 비해 병원균이나 기생충이 번식하기에 휠씬 유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욱 강한 혐오 기작이 발달했을 것이다.
이런 기피 메커니즘이 병원균에 의한 오염에서 비롯되는 각종 질병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데 유리했기에 자연선택되어 온 것이다.
한마디로 똥이 실제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더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피성의 혐오가 사람을 대상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수없이 마주치는 오늘날의 익명 사회와 달리, 역사의 거의 대부분 동안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소규모의 혈연, 지역 집단 밖에 있는 모든 이방인을 미지의 경계 대상으로 간주해야 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상대가 병을 옮길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안전 최우선의 진화적 전략, 즉 일단 병을 옮길 가능성을 전제하고 무조건 기피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세균, 전염병, 질병 등을 연상시키는 사진을 보고 나서 이민자나 이민정책에 대해 보다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실험 결과들은 타 인종에 대한 기피 현상이 질병을 피하기 위해 생긴 진화적 기제라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건 어디까지 맛보기이다.
관심이 생겼다면 당신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당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유전자지배사회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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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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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 보고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이동진이라는 세 글자는 무시할 수 없는 고유명사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인데 최근 그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
서동욱 작가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저자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고 교수이기도 하다.
큰 틀로 보면 여러 가지가 이어진 나무 같기도 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처음 저자 소개 글을 보지 않고 바로 프롤로그로 돌진했다가 문장이 예사롭지 않아 책날개를 펼쳐보니 저런 설명들이 있었다.
다재다능한 분이군.

책을 읽긴 하지만 주로 소설과 에세이에 편향된 독서를 하는 편이라 아주 오랜만에 읽게 된 인문학 도서였다.
글에서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고 한 주제에 대한 글쓰기 속에서도 다양한 철학, 영화, 미술 등 폭넓은 저자와 작가들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인용되어 있다.
이게 한 사람 속에 다 담길 수 있는 양인가?
꼭꼭 씹어 먹고 소화해서 풀어낼 수 있는 글인가? 싶어서 마냥 넋을 놓고 읽었다.
이 나이까지 큰 어려움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기초 지식에 구멍이 많은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쉬운 글은 아니었다.
눈으로 읽는데도 이해가 잘되지 않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으며 한 자 한 자 곱씹어 읽기도 자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내가 잘 소화를 시켰는지는 자신이 없지만 좋은 독서 경험이 되었다고는 생각한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들이 있지만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아래 두 파트이다.

83p 동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

인간은 오래전부터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해왔고, 같은 맥락에서 동물을 지배하고 사용해왔다.
이런 일의 기원에는 적지 않게 유대·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자리 자고 있다.
린 화이트가 유명한 논문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 기원>에서 잘 지적하듯 말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
(…) 기독교는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자라난 서구의 사상들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위계적 격차를 만들었다.

91p 희생양 없는 사회를 향하여 중

피해자와 약자의 권한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의도적으로 희생양으로 삼는 것 말이다.

내 세상이 아주 조금 확장된 것 같다.
전혀 무지했던 부분들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대목도 있다.
아직 온전히 소화를 시키기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이지만 다시 읽으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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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황선미 지음 / 비룡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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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장미.
예쁜 이름이다.

소녀는 지금 사진관에서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사장이 사진관에서 하는 사모임에 긴급 공지를 돌릴 일이 있어 손가락이 부러져라 전화를 돌리는데 한 회원이 죽어라 연락을 안 받는다.

그러던 중 임신앨범 촬영을 하러 온 젊은 여자가 갑자기 신경질을 부리며 소란을 피운다.
여자는 하나 밖에 없는 초음파 사진이 없어진 것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고
사진관 사람들은 그 여자를 달래느라 분주해진다.

장미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관을 나온다.
갑자기 몸에서 피가 떨어진다, 주루룩.
하혈이 너무 심해 옷이 젖어가는 게 느껴지고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
근처 화장실로 뛰쳐들어가 정신을 차려보려 한다.
들고 나왔던 클러치 속 전화가 울어 지퍼를 열려고 하지만
뭐가 어떻게 걸린건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신경질이 나 파우치를 집어 던지고 하혈은 계속 되고 그녀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정신을 잃는다.
떨어진 파우치 속에서 초음파 사진이 내다 보인다.


장미는 할머니 손에 컸다.
소녀의 부모는 장미를 할머니에게 버렸다.
할머니는 소녀를 키우면서도 모든 원망을 그녀에게 쏟아부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소녀는 고모네로 간다.
그녀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보통 아이들처럼 지내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친구의 남자친구를 좋아하게 된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졌다.
하지만 그 고백이 덫이 되어 소녀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남자애는 소녀의 마음을 농락하며 그녀에게 험한 짓을 하고
장미는 그렇게 미혼모가 되었다.
임신 사실을 안 고모는 장미를 비난했고
고모집을 나와 시설에 들어갔지만 시설 사람들은 그녀의 아이 하티를 입양 보내라고
그게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강요한다.
그녀는 아이와 헤어질 수 없었다.
하티는 소녀가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유일한 자기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미는 하티와 시설을 나와 도망친다.
그리고 시설에서 만났던 진주라는 아이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진주는 비린내 나는 유부남의 애인 역할을 해주는 명목으로 보증금을 얻어 월세집에 살았다.
곰팡이가 잔뜩 올라오는 반지하방은 장미가 하티와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젖이 마르는 약을 먹고 요동치는 몸으로 그녀는 버텼다.
우는 하티에게 공갈 젖꼭지를 물리고 나가서라도 일을 해야했다.
여기까지도 소녀의 삶은 너무 비참하고 아프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위태롭던 생은 끝까지 소녀를 가만 두지 않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으켜 소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소녀는 자꾸 망가지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망가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작가는 십여년 전부터 '입양'이라는 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풀어낼 지 오랜 시간 고민하고 괴로워하다 이 작품을 써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 이 세상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이기도 하다.
초반부터 소녀의 삶은 읽기 괴로울 정도로 버거웠다.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점점 더 잔혹하고 너덜거린다.

책을 읽는 내내 괴로웠다.
중간중간 삽입된 말갛고 동그란 어린 소녀의 그림이
나를 더 죄스럽게 만들었다.
제발 그만.
제발 그만하세요 작가님.
더 이상은 안 되요.
멈춰요 제발.

인간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어서
칼에 베인 상처가 너무 깊어 아파 몸부림치면서도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어떻게 베인 건지, 상처 너머에는 어떤 생체조직이 있는지 궁금해
상처 부위를 건드려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내가 그랬다.
그녀가 하혈을 할 때마다 나는 내 자궁에서 떨어지는 피의 감각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녀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을 느꼈고
그녀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반향을 몸둥이에 들였다.
나는 마치 빙의된 것 같았다.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눈물이 핑 돌고 목소리가 갈라지면서도 자꾸만 그랬다.


책 속에는 해외로 입양된 입양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생을 장악하고 있는 뿌리 깊은 원망과 텅 비어버린 마음의 구멍 앞에서 나는 자꾸 죄스러웠다.
왜 누군가의 인생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토록 너덜너덜해져야 했을까?

어제 들은 강의에서 작가는
인간이 신을 만들어낸 이유가 그저 이유를 찾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욥기를 해석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어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다보니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아졌다.


출구가 없어 보이던 장미의 고통에는 끝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장미는 좋은 사람을 곁에 두게 되고
더 이상 길거리를 헤매지 않아도 되는 처지가 된다.
초반부부터 이어지던 그녀의 고통이 마지막엔 멈추는 듯해 다행이다.
하지만 현실 속 수많은 장미들이 이야기 속 장미처럼 하티처럼 좋게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무력하다.

세상에는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여전히 너무 작아서 내 생각만 하느라 부산하다.
태어난 이유를 찾아 괴로워하던 시간들은 사치였던 것 같다.
그런 건 몰라도 좋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적당히 행복하면 좋겠다.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게 흘러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짙어지는 요즘이다.


장미야, 하티야.
꼭 행복해라.
벤도, 수니도, 아주머니도
조금만 덜 아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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