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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용광로 ㅣ 스피리투스 청소년문학 6
성준 지음 / 스피리투스 / 2026년 2월
평점 :
#서평단 #안녕용광로 #성준작가 #스피리투스 #공명
어느 날부터 거리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여기, 용광로가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곳과는 조금 다른 곳이다.
54p
"어떤 사람이 작은 일탈만 저질러도 그것이 타고난 범죄적 성향을 보여주는 신호라면,
사회는 예비 범죄자인 그를 강력하게 응징하고 영원히 격리해야 합니다!"
56p
"용광로에 가게 될 어느 아이의 불행감이 100만큼 증가한다 해도,
그 아이 덕에 사회 전체 구성원이 느낄 만족감은 수천만 배가 넘을 것이오.
한 명을 일정 기간 호되게 혼쭐내서 사회가 안전해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소.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만족하는 정책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택해야 하오.
사회 전체의 전체적 행복은 불가능하지만,
사회 전체의 최대 만족은 가능하다 이 말이오."
57p
현장의 목표는 명확했다. 아이들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용광로는 아이들을 녹여 '인간'으로 만들어 낸다.
일정 기간 사회와 떨어진 채 사고와 언어를 교정하다 보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구체적 대안은 없었다.
왜냐하면 비행 '우려' 청소년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느닷없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청소년들을 격리하는 용광로가 탄생했다.
이곳의 절대 규칙은 아래와 같다.
싸움과 욕, 불평이 금지된 곳.
매일 오전과 오후에 돌탑을 쌓아 올려야 하는 곳.
저녁 7시 이후로는 말이 금지되고 다른 구역 아이들과의 소통도 허가되지 않는 곳.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말만 하며 하루 할당된 웃음을 지어야만 하는 곳.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숨은 규칙들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러니 다들 알아서 몸을 사려야만 한다.
언젠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10p
해가 뜨면 용광로는 열기로 가득해진다.
돌덩이도 열을 받아 뜨거워지고, 아이들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른다.
태양은 녀석들에게 벌을 주듯 열기를 쏘아 댄다.
6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7월과 8월의 태양은 더 뜨거울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혹독하게 추울 것이다.
추운 날에는 돌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물론 더운 날에는 그것보다 더 무겁다.
11p
"잠깐만 쉬자. 달콤합니다."
튤립이 손을 탈탈 털며 말했다.
손바닥에서 뿌연 먼지가 일어났다.
그때 토탈이 다시 아이들 머리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아이들은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으며 씩 웃어 보였다.
토탈은 재빨리 그 표정을 촬영하고 사라졌다.
"오늘 우리 웃는 표정, 총 몇 분 지었지?
할당량 채우려면 더 노력해야 해.
아무튼 조금 쉬자."
36p
용광로에서는 하루 일정량 이상의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만약 아이들이 서로를 긍정적인 별명으로 부른다면 그 할당량을 채우기 쉬워진다.
(중략)
견디기 힘든 아이들은 서로를 꽃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40p
"왜 쌓는데?"
동바의 질문에 튤립의 말문이 턱 막혔다.
여태껏 그 부분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탑을 쌓아야 하는가.
이 의미 없는 노동을 왜 매일매일 지겹도록 힘겹게 해야 하는가.
41p
"그래서 넌 이리로 오게 된 거야. 치료받으러.
우리는 영혼을 치료받는 환자들이니까.
부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말을 낳고, 부정적인 말이 갈등과 범죄로 이어진다는 거지.
우린 죄수가 아니라 일종의 환자야.
돌탑을 왜 쌓느냐고? 아무도 시킨 적 없어.
그냥 하는 거야. 가만히 있자니 나쁜 생각이 떠올라서.
그럼 집에 못 가잖아.
그래서 예전에 어떤 아이가 시작한 일이고, 다들 그걸 따라 하는 거야.
좋은 전통은 이어가야지."
이야기는 카라와 튤립으로 시작되어
그들 조에 새로 투입된 동바를 중심으로
같은 동굴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는 다른 조 흑장미, 들꽃, 미나리와
미스터리를 품은 할머니 등의 다양한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과연 아이들이 언젠가는 이 노동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으로 달아갈 수 있을지,
대체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어떻게 흘러갈지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페이지는 술술 잘 넘어갔다.
아이들의 끝없는 노동 현장을 보고 있으니 군함도를 포함해
일제강점기에 강제 노역으로 고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순화 교육의 명목으로 반인륜적 불법 기구였던 삼청교육대도 생각났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소수의 누군가가 희생당하는 건 옳은가? 하는 질문에도 생각이 닿았다.
역동적인 표지 디자인과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고
꽃 이름을 사용하는 아이들 때문인지
챕터별 표지에 꽃 그림이 들어가 있는 부분도 좋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사고해야 할까?
무거운 질문이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