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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3월
평점 :
#서평단 #버지니아울프 #누가제인오스틴을두려워하랴 #인문에세이 #아티초크
좋은 서평은 무엇일까?
서평단 활동을 거듭하면서 자주 하게 된 고민이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
책을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어도
이 책의 장점을 타인에게 제대로 설명한 언어가 내겐 없기 때문이다.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던 어떤 날, 이 책을 만났다.
우리에겐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가 에세이와 시가 수록된 작품이다.
이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 에세이가 주를 이루는데
내 고민에 나침반이 되어줄 것만 같은 기대감을 느끼고 페이지를 펼쳤다.
서평은 예비 독자에게 정보 전달과 추천의 목적을 가진다면
비평은 이미 작품을 읽은 독자나 연구가에게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심층 분석하는 목적을 가진다.
때문에 비평은 서평보다 이론적 근거나 학술적 논리가 탄탄하다.
79p
19세기 거장들에게 비평은 '작품을 파헤치는 칼'이라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또 다른 문학적 형식'이었다.
이 대목을 염두에 두고
아래 버지니아 울프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 풀어낸 이야기를 보면 흥미롭다.
29~31p
하지만 더 분명한 사실은, 열다섯 살의 제인이
그저 가족을 웃기기 위해 혹은 집안에서만 소비될 글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특정한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모두를 위해, 자신의 시대를 위해,
또 우리 시대를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제인은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작가'였다.
그녀의 문장에는 리듬이 있고 형태가 있으며, 절제된 힘이 있다.
<사랑과 우정>에서
"그 여자는 착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했어요.
그런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겠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경멸의 대상이었어요"와 같
은 대목은
독자를 잠시 웃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을 문장이다.
활기차고, 경쾌하고, 유쾌하며,
때로는 자유로움이 허무맹랑할 정도다.
<사랑과 우정>은 그 모든 것을 갖추었다.
그 속에는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다른 어떤 요소와도 섞이지 않는 또렷한 울림이 있다.
바로 웃음소리다.
열다섯 살의 제인은 거실 한구석에서 세상을 향해 웃고 있었다.
(중략)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태어날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요람 옆에 있던 요정 하나가 갓 태어난 그녀를 데리고 세상을 한 바퀴 날아다녔음이 틀림없다.
요람에 다시 누웠을 때 그녀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을 뿐 아니라 이미 자신의 왕국을 선택해 놓았다.
그녀는 그 영토를 다스릴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탐하지 않기로 요정에게 약속했다.
이렇게 자신의 영역을 명확히 정했기에, 열다섯
살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었고 자신에 대한 환상은 더욱 없었다.
그녀가 쓰는 것은 무엇이든 쓰기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고, 모든 면이 검토되어 있으며, 목사관이 아니라 우주라는 좌표 속에 자리매김되어 있다. 제인 오스틴은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에 속내
를 알기 힘든 사람이다. <사랑과 우정>에서 그레빌 부인이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보면 저자인 제인 오스틴이 목사의
딸로서 그레빌 부인에게 무안당했던 일에 대한 분노의 흔
적이 전혀 없다. 그녀의 시선은 늘 본질을 향하고, 우리는
인간 본성의 지도 위에서 그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약속
을 지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정한 문학적 왕국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면 감정이 넘치는 나이임
에도 부끄러움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았고, 순간적인
연민에 휩쓸려 풍자를 지우거나, 감상에 도취되어 인물 묘
사를 흐리멍덩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내가 제인 오스틴이라면 이 대목을 읽고 얼마나 뿌듯했을까!
책에는 이런 대목들이 그득하다.
내가 원작에 대한 독서 경험이 없어
울프의 글을 깊이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점이 아쉬우니
책에 나온 작품들을 독파하며
야금야금 다시 읽고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다.
또 하나 전쟁에 대한 대목 중
19세기 작가들에게는 그 영향이 전혀 없었다는 대목에서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이없는 전쟁 속에서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과
전쟁을 벌여놓고 아무 영향 없이 이 밤을 보낼 이들을 떠올리며 입이 썼다는 이야기를 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