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선택 (크리스마스 패키징 에디션)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4년 12월
평점 :
품절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_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지금의 나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치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모습이다.
그렇기에 현실이 힘에 부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이미 한 선택을 물릴 수도 없다.
다중우주의 또 다른 나는 어쩌면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의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어때?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다른 우주의 나에게 연락할 길은 없다.
만약 다른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좋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이 우주의 나는 현실이 더 괴로워질 것이고
만약 다른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이 우주의 나는 현실이 조금 덜 버겁게 느껴질까?
이러니저러니 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싶지만 역시 현실이 시궁창일수록 중독처럼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때 저렇게 했어야 하는데...

오늘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우리의 상상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변변찮은 작가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존재감 없는 명운은 과거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었다.
계속 꿈같은 날들이 이어질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한없이 초라하고
10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 연우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매한 관계만 지속되고 있다.
어느 날 길을 지나다가 사거리 중앙에 만취한 상태로 누워 있는 마동석과 꼭 닮은 사람을 보았다.
무시하고 가고 싶었지만 12월의 밤은 얼어 죽기 좋았고 운이 좋아 얼어 죽지 않는다 해도 차에 치여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취객을 일으켜 세워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는데 고맙다며 술을 한 잔 사겠다는 마동석 닮은 꼴.
다양한 버전의 마동석 중 험한 인상의 마동석과 닮았기에 급히 자리를 뜨려는데 그냥 가면 후회할 거라고, 이미 많은 걸 후회하고 있지 않냐고 말하는 그.
명운은 그 말에 낚여 술을 한잔하게 되고 이상한 말을 듣는다.
당신이 가지 않은 인생의 길을 가보는 게 어떠냐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집이었다.
어느새 명운의 팔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인 피에르 가르뎅 메탈 시계가 있었다.
시계방에서도 너무 오래돼서 수리가 불가하다 했던 고장 난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명운은 마동석 닮은 꼴의 말대로 선택하지 않았던 인생의 순간순간을 랜덤으로 맞이하게 되는데...

이 소설 재미있다.
작가님의 유머 코드가 나와 잘 맞나 보다.
마동석이 등장하는 순간들도 너무 주옥같다.
현실과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오가며 명운은 다양한 순간들을 맞이한다.
인생이 늘 내 뜻대로는 흘러가지 않고 완벽해 보였던 모습들 뒤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 숨어있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던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주변 공기가 묵직해졌다.
어느 쪽의 삶이든 산다는 건 참 녹록지 않은 일이고 내 선택만이 다가 아니라 그 선택과 맞물린 주변 사람들의 선택이나 상황들이 내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뿐.

앞으로의 나도 지금까지의 나처럼 종종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뚝뚝 흘리겠지만 그럼에도 어찌 되었든 지금의 엉성한 현실을 잘 매만지고 받아들여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그 순간순간 이 책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참고로 12월 2일(월)에 정식 출간도 되었으니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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