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정덕시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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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희가 세상을 떠났다.
17년을 함께했던 나의 반려동물.
움직일 때마다 붉게, 푸르게, 보랏빛으로 일렁이던 무늬를 가졌던 아이.
생이 사그라진 후에야 처음으로 두희를 마음껏 쓰다듬어 본다.

두희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희는 타란툴라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방금 전 문장에서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는가?
그런 반응들 때문에 나는 두희의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에 매혹되었다.
흠뻑 사랑에 빠졌다.
수많은 인덱스가 내 마음의 증거다.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는 차분하게 진행된다.
시끄럽지도, 어수선하지도 않다.
눈으로 문장을 훑어내리다 보면 잔잔한 마음의 수면 위에 작은 파동이 생긴다.
두희가 놀라지 않게, 감정을 조심조심 씹어 삼킨다.
오른쪽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읽는 속도를 늦췄다.
언젠가 다가오고 말 끝을 되도록 멀리 밀어두고 싶어서.

책을 읽는 동안 몇 번 두희 꿈을 꾸었다.
내가 두희가 되어 비바리움과 유리 너머 수현의 방을 바라보는 꿈이었다.
기묘한 경험이었고 애틋한 경험이었다.

너무 다른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통하지도 않고
생김새도, 생활 방식도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 하나 닮지 않은 너를
왜 나는 기어코 사랑하고 말았을까?

단순한 펫로스를 넘어
종과 종의 이해에까지 가닿은 어떤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축축하고 뜨끈하고 말랑하고 매끈한 심장 하나를 움켜진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작품이다.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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