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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혼자 클럽에서 - 음악에 몸을 맡기자 모든 게 선명해졌다
소람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7월
평점 :
신나게 땀 흘리며 뛰어놀고 깨끗이 씻고 나와 시원한 바람을 탁, 맞는 느낌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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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늘도 평일 늦은 새벽 클럽에서 홀로 음악에 취해 작게 몸을 파닥거리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소람님이다.
그녀는 음악 관련 일을 오래 했던 사람이면서 여전히 지독히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특히 전자 음악을 사랑해서 매일 밤 서울 곳곳의 클럽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며 레이빙을 즐긴다.
사랑이 깊어지니 이제 하다 하다 직접 DJ까지 하게 된 열렬한 클럽 예찬자의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보자.
24p
음악은 절정을 향했고 사람들이 디제이의 음악에 다 같이 집중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럴 땐 어김없이 괜히 뒤를 돌아보고 싶어진다.
뒤를 돌아봤을 때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까만 물결.
레이버들이 좌우로 리듬을 타는 방향이 우연히 딱 맞아떨어질 때 그 모습은 검은 파도가 좌우로 물결치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그 파도 속에서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내며 함께 일렁이는 물결이 된다.
클럽을 20대 극초반에 2번 정도 가본 것 같은데 글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때의 강렬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온몸이 재떨이가 된 것처럼 담배 냄새에 푹 절어지고 눈도 맵고 코도 맵도 목도 아팠던 기억.
거기다 원치 않은 이성의 신체 접촉이 이루어져 불쾌했던 기억.
하지만 왼쪽 페이지가 두터워질수록 이 나이를 먹고 클럽을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지는 얄궂은 마음을 뭘까?
이 작가님, 영업왕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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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페이지의 한 손보다 살짝 큰 정도의 사이즈라 술술 잘 읽힌다.
그렇게 종이를 넘기다 보면 어떤 문장들에서는 쿵, 하고 마음이 울린다.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말들이라 더 잘 다가왔다.
19p
내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일이란 어려움이 닥쳐도 마땅히 감수할 힘과 의지가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일, 그래도 계속하고 싶은 일 말이다.
20p
(사전 설명 : 평일 새벽의 클럽, 한산한 플로어를 앞에 두고도 너무도 좋은 얼굴로 열심히 음악을 선곡하고 신나하는 DJ의 모습을 본 후)
삶의 많은 시간을 일을 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면 웬만하면 저런 얼굴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표정하게 살지 말자.
웬만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을 닮아 가자.
69p
그러니 우리는 유한한 절정의 순간을 남김없이 잘 누려야 할 것이며, 절정이 지나간 자리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잘 다독여 일상을 살아 나가야 할 것이다.
97p
어쩌면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을 하나둘씩 닫는 일일지도 모른다.
131p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한 걸음 직전에 돌아서버린 새로운 세계는 과연 몇 개나 될까?
143p
뻔하지 않은 다음 음악이 아주 오묘하고 아름답게 내 인생에서 흘러나왔으면 좋겠다.
162p
직업이라는 명사보다는 하고 싶다는 동사에 초점을 맞춰 자유롭게 살아가련다.
180p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진짜 다 내 것은 아니다.
181p
연차와 실력은 비례하는 게 아닌데도 하루하루 쌓여가는 시간들에 그저 안주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185p
"하다 말고, 하다 말고, 그런 거지."<애매한 재능>을 쓴 수미 작가의 말을 자주 곱씹는다.
(중략)
매일은 못 하더라도 영원히 '말고'의 상태에 멈춰 있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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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만의 개성과 시선이 묻어나서 좋았던 문장들.
24p
나는 디제이 덱 deck 근처에 서 있었는데 내 옆 사람은 눈을 감고 비트에 맞춰 디제이 덱을 슬며시 두드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명상 도구 중 하나인 핸드팬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면 과장일까.
29-30p
나는 어느새 슬며시 '운명'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지 말지 고민하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31p
내가 운명이라는 단어를 윤이 나도록 만지작거리는 사이 그는 밤새 치명적인 매력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모으고 있었다.
49p
무디맨을 보려고 목을 하도 길게 뽑아대서 일시적으로 거북목 치료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99p
리스는 맥주를 마시며 나날이 늘어가는 내 뱃살을 보고 "여기에 맥주 아기가 들어 있다"며 놀렸다.
(중략)
우리는 마치 배 속의 맥주 아기를 누가 더 빨리 키우는지 대결이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지극 정성으로 뱃살을 불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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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은 재밌다.
특히 <다시 돌고 돌고>와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는 꼭 읽어주셔라.
지하철 이동 중에 책 읽다가 소리는 못 내고 어깨를 들썩이며 죽을힘을 다해 웃음을 참았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더운 여름휴가지에서, 혹은 주말 늦잠 자고 일어나 집 근처 카페에서 차 한잔하며 가볍게 읽으면 좋을 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