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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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살아가는 젊은 층 중

이 여섯글자를 보고 혹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나 역시도 저 여섯글자에 홀려서 냉큼 책을 펼쳐들었다.


"한.국.이.싫.어.서" 라니!


이 얼마나 단도직입적이고

단순명쾌한 제목인가!


제목만 읽어도

점심에 남자직원들 점심 먹는 속도에 맞추느라

꾸역꾸역 입 안 가득 쑤셔만 넣은 통에

가슴 언저리에서 탁, 하고 막혀있던 밥알들이

후루루룩 위와 십이지장을 거쳐 장까지 툭툭

깔끔하게 떨어져내리는 기분이 들 정도다.


아, 아무리 봐도 제목이 너무 좋다.

정말 너무 좋다.




제목 이야기는 이 즈음에서 그만하고,

실제 책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은 1인칭 계나 시점으로 쓰여있다.

계나가 누구냐고?

이 책의 여자 주인공.


계나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문투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그래서 술술술술 읽힌다.

진짜 술술술술.

책 읽는 속도가 결코 빠르지 않은 나도 이틀만에 다 읽었다.

짬나는 틈에 읽어도 이틀이었으니 대략 4,5시간 가량 걸렸으려나?


그녀는 아현동 재개발 지역에서

부모님과 언니와 여동생, 이렇게 다섯식구로 함께 살았다.

졸업 후 3년 정도 증권회사에서

한도가 있는데 없는 척 하는 카드의 사용내역을 승인해주는 일을 했고

'지명'이라는 잘난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이 모든 걸 놓고 호주로 떠난다.

이민을 위해서.




10-12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이겨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중략)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는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이고 당신의 이야기이다.

계나가 원하는 그 삶이, 과연 사치스럽고 까다로운 이야기일까?


우리는 그저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것이 우리가 절대 넘봐서는 안 될 금기의 사항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너무 서글프고, 기운 빠지게 만든다.




책 마지막 부분에 허희 평론가의 글이 있다.

그는 계나가 행복을 계산하려 듬으로 그녀가 행복해질 수 없을거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행복해질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너무 대충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주에서 악착같이 공부를 해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고,

어려운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기 힘으로 일어나 지금에까지 이르렀으니까.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 그곳에는 있으니까.


그녀가 행복하길 빈다.

그리고 실제하는 나도, 행복해지길 빈다.

내 행복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 정수진 - 방향도목적도 ]


*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이 표지.

정신없어 보이는 이 그림이 이 책과 매우 잘 어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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