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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 외로운 월요일이었다. 저녁수업시간을 2시간씩이나 앞두고 나는 혼자 교내를 서성이고 있었다. 매점에서 요구르트를 한병 사고 새학기부터 필기할 필기구를 한두 자루 고르고... 구내서점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남은 시간을 때우려면 이런 책이 알맞을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런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주인공이 고난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을 즐긴다고나 할까...
식민지 시대를 겪어보지 못하고 풍요한 시대를 살아온 오만함 때문인지... 그저 유태인들의 삶은 영화속 비극적 소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인지 모르겠다.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도 그녀의 조마조마한 삶을 구경하고 나는 그런 상황이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고, 나보다 더한 비극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내 자신을 위로했다.
이 책을 골라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외로운 내자신을 위로하기에는 더 외로운 홀로코스터를 바라보는 것 만큼 괜찮은 일이 없을테니까... 하지만 약간의 실망스러움을 감출수 없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조금은 진부한 흐름에,흔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담담하게 그려내기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훨씬 나았고. 유태인의 억울한 옥살이를 실감나게 그려내는 데는 <쥐>를 따를 소설이 없을 것이라고 다시한번 느끼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6세 소년의 자조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운명과 작은 행복을 조곤조곤히 서술하는 방식은 금방 이 책을 읽어내리게 해 주었다. 결국 2시간도 안되어 책장을 덮을 수 있었고 나의 자기위로도 시원 섭섭하게 마칠 수 있었다.비참함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제 내가 가게 될 길위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 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 다면 다음엔 강제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