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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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달관세대’개념이 들어오게 한 일본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세대론을 다룬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책은 ‘세대론은 허구다’라는 주장으로 시작된다. 그는 “세대론이 사회에서 유행하는 때는 계급론이 현실성을 잃었을 때”라고 일갈한다. 책은 100페이지 가량을 세대론을 비판하는데 쓴다.

 

 

세대론이 사회에서 유행하게 되는 때는 계급론이 현실성을 잃었을 때다. 세대론이라는 것은 본래 매우 억지스러운 이론이다. 계급, 인종, 젠더, 지역 등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부유층도 빈곤층도, 남성도 여성도, 인본인도 재일 한국인도 그 밖의 외국인도 모두 한데 뭉뚱그려, 그저 ‘어떤 연령’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젊은이’라고 일괄해 명명해 버리기 때문이다. 76p

 

젊은이론이 결코 마무리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가령(加齡)효과’와 ‘세대효과’의 혼동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늙어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 뿐인데, 이것을 마치 ‘세대의 변화’ 혹은 ‘시대의 변화’로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젊은이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이 약해졌다’고 지적하는 대부분의 논의 역시, 이 현상으로 설명 가능하다. 86p

 

일본 인구 구조에 변동이 생겨 더 이상 자동차가 팔리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제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는 문제다. 그러나 자동차의 판매 부진을 젊은이들의 심리 변화로 몰아가면, 아직 만회할 수 잇는 기회가 생긴다. 따라서 자동차 판매 대수와 관련된 현상을 “젊은이들은 자동차에 관심이 없다”라는 말로 일축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영리한 판단이다. 왜냐하면, 일단 자동차 회사로서는 당분간 안심할 수 있고, 광고 회사나 자칭 ‘젊은이 마케터’에게도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88p

 

어쩌면 ‘젊은이론’은 젊은이라는 이름을 빌려 쏟아 낸 사회 비판이 아니었을까? 본래 ‘젊은이’는 그 실체가 있는 듯하면서 또 없는 듯한 존재, 즉 애매한 대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이는 쉴 새 없이 교체된다. 따라서 젊은이론이 바뀐다고 해도, 아무도 이 점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식의 ‘교체’를 환영한다. “이것이 새로운 젊은이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90p

 만약 “젊은이가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싶다면, 젊은이들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전에 먼저 일본의 출생률을 이렇게까지 저하시킨 정책 담당자, 그리고 이런 정책을 지지한 당시의 국민들에게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경우에 일단 과거의 자신부터 탓해야 할 것이다. 126p

하지만 한국에서 세대갈등은 허구가 아닌 실제처럼 여겨진다. 기업에서는 장년층의 정년연기와 청년층의 고용을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고, 최근 불거진 국민연금 논란은 정치권이 세대론을 부각시킨 사례다. 다수의 피부양자가 소수의 부양자에게 무임승차한다는 시선이다.

 

문제는 무임승차자가 아니라 좌석 자체가 극도로 한정된 현실인데, 정치권은 이를 세대론으로 가린다. 최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환하겠다는 의제에 정부는 “후세대에 1702조원의 세금폭탄을 안기는 것”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이 1702조원은 연금가입자들이 추가로 받게될 수령액이며 정부의 이 계산도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음이 밝혀졌다.

 

1702조원은 소득대체율(가입자 평균소득 중 연금수령액 비중)을 50%로 올릴 경우 가입자들이 추가로 받게 되는 돈, 즉 연금수령액이다. 소득대체율 인상 시 더 낼 돈이 아니라 연금 가입자들이 입게 될 혜택의 규모인 것이다.

 

 (...) 이는 소득대체율을 50%, 보험료율을 10.01%로 올렸을 때 기금이 2060년 소진된다고 추계한 시나리오를 전제로 하고 있다. 기금 소진 후엔 그 시점의 전체 근로세대에게 보험료를 부과해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노인인구가 많기 때문에 근로세대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출산율 제고 등 추가 보완책 없이 현행 제도(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를 그대로 운영해도 2060년 기금 소진 후 보험료율은 21.4%로 치솟는다. 소득대체율과 무관하게 기금이 소진되면 미래세대는 ‘폭탄’을 떠안게 돼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험료율을 기금 소진 직전까지 동일하게 유지한다는 정부의 가정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2060년을 전후해 기금 소진 상황을 연착륙시키려면 (소진 이전에) 장기간에 걸쳐 보험료를 순차적으로 인상해 갈 수밖에 없다”며 “2061년부터 갑자기 보험료를 20%로 인상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가정이며, 그 어떤 연금학자도 이런 식의 운영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적 없다”고 말했다.

(출처: 경향신문 ‘1702조’는 세금 아닌 ‘연금 추가 수령액’… 아전인수 해석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10203&artid=201505102153485)

 

국민연금의 운용자가 오히려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다. 또한 세대갈등을 완화해야 할 주체인 정치권이 오히려 세대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세대갈등론은 단기적 정치전략으로 유효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을 낳는다. 앞서 말했듯 세대갈등론은 진작 중요한 세대갈등의 원인을 가린다. 자리를 늘리라는 요구를 해야할 승차자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크리스토프 부터베게는 세대 갈등론을 ‘선동적 허위선전’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정치학자 크리스토프 부터베게를 인용해 세대 문제는 불평등 문제를 희석하기 위한 ‘사회정책적인 데마고기(선동적 허위선전)’라고 말한다. “사회국가의 축소를 도모하는 세력이 ‘세대형평성’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적 주도권을 정당화한다. 세대형평성 논의의 정치적 효과는 비단 사회국가의 축소뿐이 아니고 불평등한 권력, 재산, 지배관계 대신에 세대를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상정함으로써 기존의 불평등한 구조를 ‘은폐’하는 것”이라고 부터베게는 주장한다.

 (출처: 한겨레 신문 “세대간 투쟁은 허구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587420.html)

 

세대를 넘어 가로지른 한국 사회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정치권과 언론이 부추기는 세대론은 달이 아닌 손가락만 보라고 지시하는 꼴이다. 세대갈등론에 휘둘려 사회적 분배라는 과정을 무임승차자에 대한 시혜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둘 때다. 국가의 복지제도는 세대간의 교환이 아니 축소될 경우 결국 모든 세대에게 손해로 돌아가는 사회의 필수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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