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 - 국제뉴스를 의심해야 세계가 보인다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이명은 옮김 / 서해문집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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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이명은 옮김, 2014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조지 오웰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임기가 끝난 지 2년도 채 안된 상태에서 자서전을 냈다. 자서전이라기보다 자화자찬이라고 읽히는 대목이 많은 서적이어서인지, 한 뉴스에서 앵커는 조지 오웰이 한 말을 소개했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Jtbc 뉴스화면 캡쳐

 

자서전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많은 책 앞에서 저자들이 머리말 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저서를 졸저라 여기며 겸손함을 내비치는 것도 이런 이유일 테다. 특히나 주장을 담은 책들은 저자의 겸손함이 미덕이다. 제목부터 ‘진실을 가리는 (무려!)50가지 고정관념’에 대해 쓰는 저자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을 쓴 파스칼 보니파스 역시 책 안에서 드러날 자신의 고정관념을 유의하라며 책을 시작한다. 조지오웰의 판단에 따르면,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닌 조건 하나를 충족한 셈이다. 

 

이 책에 나오는 것들은 물론, 책에 쓰인 모든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17p)  

덧붙여 그는 ‘책에 쓰인 내용은 믿을 만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선 다음과 같이 행동하라고 일러준다.

 

어떤 책을 펼치기 전에, 저자가 누구인지, 예를 들어 대학교수인지 기자인지 시민운동가인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어떤 관점으로 글을 썼는지 알려주는, 저자의 출신 국가․체제․시대 등에도 유념해야 하며, 책을 쓰게 만든 사건과 예상한 결과를 알아야 합니다. (17p)  

저자의 부탁대로, 이 책의 저자 ‘파스칼 보니파스’부터 시작해보자. 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이며 프랑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소장, 현재 파리8대학 유럽학연구소에서 강의하고 있다. 국제관계, 핵 문제, 군축 문제, 강대국 간 파워게임, 프랑스 외교정책, 국제관계 속 스포츠 등을 주제로 40여 권의 책을 펴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4차 세계대전이라고?>를 살 수 있다. 프랑스 국가 공로 훈장 기사장과 레종 도뇌르 기사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그의 책 중 한국에서 3번째로 소개된 책이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이하 <고정관념>)인 것.

 

 

▲파스칼 보니파스의 트위터 메인 캡쳐.

 

그의 전공을 살려 써오던 방향을 살려 쓴 책이지만 친절한 책은 아니다. 책의 구성과 전개방식 모두 그렇다. 우선 목차구성이 뒤죽박죽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크게 미국과 중동국가의 관계, 테러, 강대국과 약소국의 외교문제에 관한 것인데 여기저기 섞여 있어 한자리에 앉아서 읽기보다 잡지의 에세이처럼 한 꼭지씩 읽는 것이 효율적이다.

 

책에 소개된 고정관념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 대한 지나친 기대, 중동국가들에 대한 몰이해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 꼭지의 결론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분쟁이나 국제적 불행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지정학적 관계 때문이다’라고 끝난다. 하지만 그 정치적 지정학적 요소가 무엇인지 설명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저자가 쓴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가 지도와 지표를 이용해 국제관계를 설명한 책이라고 하는데, 마치 그 책의 ‘맛보기용’처럼 느껴질 정도다.

   

국제관계에 무관심한 사람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정관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여기서 소개하는 고정관념들은 널리 알려진 통념보다 한번 비틀은, 꽤 진보적이라 말할 수 있는 생각들도 있다. ‘UN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라크 전쟁은 석유 때문에 일어났다’, ‘세계는 진보한다’, ‘내정간섭은 진보적 생각이다’,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이들은 레지스탕스다’ 등의 챕터가 그렇다.

 

처음 접하기엔 진보적이라 느껴지는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사실은 위선적이며 강대국의 기만에 의해 태어난 것이라는 것을 활자로 확인하는 일은 꽤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말이다.

 

석유 수익만 가지고 따져보면 사담 후세인과 다시 협력을 시작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고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후세인은 아마도 이라크를 압박하는 제재조치와 무역금수 조치를 끝내는 대가로 필요한 만큼의 석유를 미국에게 인도할 것을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45p)

 

기술의 진보가 그 자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많은 것들이 정치적 결정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정보 기술은 지식과 통신의 지방 분산화를 한꺼번에 가능하게 하지만,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을 더욱 틀에 가두는 감시 수단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56p)

 

국제관계에 대한 교육이나 국제 뉴스가 빈약한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얼마나 서구의 시각으로 문화를 바라보았는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광고나 포르노는 무슬림 세계에서 여성 권리에 대한 침해로 간주되며, 서양 세계에서는 얼굴을 가리는 베일의 착용이나 일부다처제가 여성권리 침해로 여겨집니다. (104p)

 

미국이나 일본, 몇몇의 유럽국가 외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한국의 교육과정과 국제 뉴스의 탓이 클 것이다. 그렇기에 <고정관념>에서 아무리 겉핥기 식으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읽어나간 다면, 이 책은 하나의 탄탄한 시선을 수혈하는 역할은 하는 셈이다. 이 책의 주장들을 하나하나씩 반박할 거리를 찾거나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하나의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것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며,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이 그것을 정당화하는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암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 재앙 같은 질별과 싸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111p)

 

그의 말대로,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니 말이다.

 

 

 

 


 

 


 

 

911테러가 국제관계의 구조 자체를 흔들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강대국 간 힘의 관계는 바뀌지 않았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동맹국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히 했습니다. 혹독하게 당하기는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그들의 힘이 약해졌다면, 그것은 바로 이라크 전쟁의 끔찍한 결과 때문입니다. 그것은 911테러에 대한 엉뚱한 보복이었습니다. 32p

실제로 권력이 어떤 중대한 문제에 관해 거짓말을 하게 되면, 다른 모든 문제들도 의심을 받게 된다. 53p

인류의 6분의1이 전세계 부의 6분의 5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균형의 재조정은 불가피합니다. 76p

미국의 우월적 위치 때문에 세계는 다극화되지도 못합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미국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미국 홀로는 어떠한 국제적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85p

강대국들은 약소국이 무기들을 갖춘 후, 강대국을 위협하거나 약소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힘의 관계를 조정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93p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 9.11테러 당시 <르몽드>지가 뽑은 1면 기사의 제목이었습니다. 이렇게 테러 공격의 효과와 그 성공은 무엇보다도 심리적 측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더구나 산업 열강은 수십 년 전부터 안전하게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여겼기에 더욱 고통스럽게 9.11테러를 받아들였습니다. 100p

프랑스를 포함하여 전쟁에 반대한 나라들이 사담 후세인과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경제교류를 가장 활발히 진행하던 1980년대 말까지 후세인의 탄압은 가장 극심했습니다. 147p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장군은 전쟁에 뛰어든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민주주의 강대국의 대표인 미국은 자신들의 가치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 군사적 모험에 정기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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