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가운데
앙드레 지드가 알려줬듯 나에게 현대판 현자인 학자 혹은 작가들이란 매일 바라보는 저녁과 아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쓴 류동민 씨 역시 현자의 역할을 했다. 서울에서 나고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던 나지만, 책을 읽고 바라본 서울은 또 다시 새로운 곳이었다. 서울이라는 보통명사가 하나하나의 지역과 특징적 건물들로 나뉘어 구역화되오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서울을 4가지 구역으로 나눈다. 배제의 공간, 물신의 공간, 남겨진 공간, 사라지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특징이 곳곳에 숨어있다. 높고 낮은 등고선이 뚜렷하다는 것과 각각의 장소에 투영된 욕망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공간을 만들고 서울을 만든다.
배제의 공간: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못 들어가고
1인1표는 소비자의 시대를 맞아 1원1표로 행사되고 있다.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즉 소비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면 배제 당한다. 이 원리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이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커피전문점이다. 커피 한 잔의 값이 입장권의 가격인 셈이다. 저자의 말처럼, 소비자의 권리는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39p), 즉 ‘가격을 지불한 한도 안에서의 자유’(40p)가 주어지는 곳이다. 코엑스몰, 대형서점, 백화점과 같은 유사 공간은 입장권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소비하는 것에 따라 자신이 규정되는 ‘호모 콘수무스’의 공간이긴 마찬가지다.
호모 콘수무스가 되도록 강요당하는 공간, 쾌적한 매장과 압도적인 물량의 상품들은 마치 ‘당신이 소비하는 것을 통해서만 당신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듯하다.(...)거시적으로는 그 소비자 정체성의 강제된 규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미시적으로는 더욱 그것에 탐닉할 수밖에 없다. (45p)
얼마 전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주차장 요원에게 이른바 ‘갑질’을 시전한 모녀의 말이 떠오른다. 모녀 중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주차장 요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내가 여기서 얼마를 썼는데!”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바로 이 목소리가 호모 콘수무스의 것이었으리라.
물신의 공간: 물건 그 이상의 것을 사는 곳
호모 콘수무스는 물건을 사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때문에 상품은 결국 물신화된다. 상품을 사는 동시에 그 상품의 이미지를 사게 된다는 말이다. 값을 더하더라도 스타벅스나 애플의 제품을 사는 이유를 떠올리면 된다. 코스트코나 롯데월드같이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있는 곳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곧 취향이 되고 여가가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구입하는 것은 물건 뿐 아니라 ‘여가’라는 분석이다. 여가란 ‘노동시간이 아닌 것’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쓰는 시간들,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 시간, 필수적인 휴식시간, 가사노동의 시간이다. 대도시에서 노동하고 먹고살기란 점점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데아로서의 여가는 불가능해진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거나 스키를 타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시간이 여가화된다. 밥을 먹는 시간, 쇼핑을 하는 시간이 여가가 된다는 것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준비가 여가로 포장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코스트코와 롯데월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쇼핑의 여가화, 다시 여가의 쇼핑화. 그리고 배제의 원리에 기초한 문화적 상징 혹은 물신에 이르기까지.(60p)
남겨진 공간과 사라진 공간: 높은 공간을 위해 사라지는 낮은 공간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과잉자본의 위기를 해소하려는 목적에서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 즉 자연환경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환경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아도는 자본이 수익성을 찾기 위한 출구로서 도시공간을 끊임없이 재편성하려 든다는 것이다.(109p)
몇 년을 살다시피 했던 홍대라도, 홍대에서는 자신만만하게 술 약속을 잡기 어렵다. 어떤 술집이 마음에 들어 친구들과 함께 가려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가게 때문에 유명해진 거리에서도 가게는 쉽게 헐린다. 홍대뿐이랴. 이제는 한두 달 동안 찾아가지 않으면 가게가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곳이 서울에 여러 군데다. 개인들의 가게는 헐리고 기업체가 세운 건물들만 즐비하다. 이 원리는 대학가도 마찬가지라, 대학가 주변이라고 물가가 싸다는 것은 이미 옛말이다.
헐리고 사라진 공간에는 기업이 지은 높고 큰 아파트와 교회, 상점가가 들어선다. 높게 크게 지어진 아파트와 교회들은 이 공간 속 사람들에게 안전과 위안을 준다. 얼마 전 대치동의 어느 아파트에서 배달노동자들에게 승강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한 사건은 이 공간이 ‘우아한 배제의 논리’(111p)로 돌아가며, 이 공간이 제공하는 안전과 위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12p) 안쪽의 위안이 더 커지는 만큼 건물의 높이도 올라가고 벽도 단단해진다.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 학력자본과 시초축적
이렇듯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서울 곳곳에서 누군가는 높고 넓으며 안전한 곳으로, 누군가는 낮고 좁으며 위험한 외곽으로 간다. 높고 넓은 곳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중산층에서 탈락됨을 의미한다’.(183p) 저자는 이를 학력자본의 축적으로 생긴 불평등과 약탈에 의한 축적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력자본 만으로는 목표권력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지금 한국사회는 굳이 피케티를 들먹이지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다.
불평등한 사회를 설명하는 용어 중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자본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부지런하게 노력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신화적 설명 방식을 가리킨다.(221p) 하지만 저자는 현실은 ‘태초의 부지런한 이’가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태초에 약탈한 이’가 부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서울처럼 급격하게 팽창하며 발전한 도시의 공간을 기획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권리와 이익을 빼앗아 부를 쌓는다. 직접적으로 남의 재산을 탈취하는 것은 소유권이 확립된 시장경제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도시 전체가 집단적으로 누려야 할 이익이 특정인들에게 귀속된다면, 사회적 생산력의 성과를 개인이 자신의 것으로 누린다는 점에서 결국 그것은 착취가 된다. (222p)
저자는 책 안에서 내내 서울을 산책하며 관찰하는 시점을 취한다. 종종 정치사회학적 분석을 내는 학자들은 훈계를 하거나 멘토를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와는 거리가 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저자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급진적 견해를 가진 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지금 시스템 안에서 서울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밝힌다.
도시권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꼭 반자본주의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력의 원활한 재생산이 그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비굴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삶 혹은 먹고사는 것 때문에 생겨나는 비굴함을 최소화하는 것은 평등주의적 열망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을 통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281p)
이런 저자이지만 지금 서울을 작동시키는 원리들, 배제와 물신, 안전과 안위만을 바라는 태도는 공공적 도시권 확보를 위한 길과는 멀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원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모였다. 그러나 그들을 도시에 머물게 만드는 것은 높은 삶의 질이다.” 서울의 작동방식을 깨달은 사람들은 서울을 바꾸려 할까, 떠나고 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1998)에서 조의 유명한 대사. "스타벅스가 왜 있는주 알아요? 아무것도 결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커피 한 잔을 사면서 적어도 여섯 가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거에요. 크기는 숏으로 할까 톨로 할까? 연하게 진하게? 디카페인으로 할까? 그러니 사람들은 2.95달러를 내고 커피 한 잔을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누군지를 결정하는 거에요,"(38p)
굿이 코엑스몰보다는 재래시장에서 ‘진짜 사람 냄새가 난다’라는 식의 감상은 냉정하게 말해 착각이거나 복고적 향수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우리가 백화점에서 만나는 점원들도 대부분 자영업자나 파견근로자며, 그 경제적 지위가 재래시장 상인보다 결코 우월하다고만 볼 수도 없다. (46p)
대학 캠퍼스에 새로 생기는 하드웨어들은 이른바 인기 학과나 단과대학에 집중되고 그 안에서도 인문학 같은 비인기 전공 분야는 소외된다. 하드웨어는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면서도 ‘불필요한’ 인력에 대한 투자는 최소화한다. 겸임교수, 강의교수 등 온갖 딱지 가 붙은 이름으로 비용이 저렴한 비정규직 교수 인력을 확대하기도 한다. (118p)
충격과 공포. 원래 기습작전을 가리키는 군사용어다. 슬라보예 지젝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운영원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한 바 있다. 주체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도록 만드는 시스템, 여기에서 두려움의 핵심은 경쟁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예감이다. (122p)
카를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했다던가. 내부적으로는 공동체적 이타심을 강조하지만 외부의 집단에 대해서는 심한 배타적 태도를 취하는 것, 교회를 기업 경영에 비유한다면 모험 정신이나 이노베이션은 오히려 여기에서 나온다. (131p)
백화점 명품관 뒷골목의 폰샵(pawn shop, 전당포)은 베블렌(Thorstein Veblen)이 말하는 ‘금전적 경쟁(pecuniary emulation)’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금전적 경쟁은 베블렌의 저작 <유한계급론>의 중요한 이론적 기둥을 이루는 개념이다. ‘ emulation’이라는 영어단어는 흔히 경쟁으로 번역되지만 ‘흉내 내기’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 모든 경쟁은 남보다 앞서서 이기겠다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욕망으로부터도 기인하지만, 남을 따라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소극적이고 수도적인 욕망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206p)
사실 명품은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위신재다. 전근대의 신분제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갖지 못한 이들은 꿈꿀 수 없던 것, 근대 부르주아사회에서도 경제적 권력을 갖지 못한 이들은 넘볼수 없었던 것, 그랬던 것을 이제 돈만 주면 살 수 있다는 것은 어쨌거나 시장의 민주적 기능인 셈이다.(207p)
배제의 원리 때문에 삶은 더 힘들어진다.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는 마치 전근댓화의 하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이들은 경비원 이상이었다. 그들은 봉사를 의무로 저임금에 고용된 하인들이다’(263p)
대중에게 ‘빵과 서커스’만 주면 된다는 권력자들의 고전적 지혜는 여기서도 작동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광범한 보급은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서커스 기능도 틀림없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네스리나 마이클 하트같은 자율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다중(multitude)의 혁명적 역할에 상당한 기대를 거고 있는 듯하지만, 바로 그 다중이 언제든지 국수주의나 마초적 동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은 분명한 현실이다. (269p)
|